파리에서는 별다방 아·아도, 쌀국수도 '종이'에 담겨져 나온다
[편집자주]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파리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과 전문가를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파리의 10월은 이상기후였습니다. 11월들어 좀 쌀쌀해졌고,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입기 시작했지만, 10월은 아니었습니다. 반팔을 입고 산책을 다닐 정도로 더웠습니다. 기후변화로 유럽이 지난 여름 기록적인 더위를 겪었었다는 점을 실감케 했습니다.
파리의 거리를 걷던 10월의 어느날, 무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향한 한국인의 피가 끓었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별다방에 갔죠. 더듬더듬 프랑스어를 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더니…종이컵에 담겨 나왔습니다. 컵과 뚜껑 모두 종이 재질. 빨대는 아예 없습니다.
다른 별다방 지점에서 시원한 라임 음료를 시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별다방 외에 다른 카페에서 쥬스와 같은 아이스 메뉴를 시켜도 똑같습니다. 일부 버블티 전문점들은 플라스틱컵을 쓰긴 하지만, 말 그대로 '일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들은 묵묵히 이 종이컵에 담긴 시원한 음료들을 마시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는 파리 시민들의 '플라스틱 제로 시티'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느강이나 에펠탑 근처로 피크닉을 갈 때 길거리 음식을 포장한다고 해도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팩 쥬스에 달린 빨대조차도 '종이'입니다.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음식을 시킬 때 뚜껑이 플라스틱인 경우는 있지만 용기 자체는 거의 100% 종이로 돼 있습니다. 한 음식점에서 국물이 담긴 쌀국수를 테이크아웃한 적이 있는데, 용기와 뚜껑 모두 종이였습니다. 한국에서였다면 100% 플라스틱이었을 것입니다. 종이컵에 담긴 차가운 음료를 마신다고 해서, 종이 용기에 담긴 국물 요리를 먹는다고 해서 어떤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거듭되는 생각은 일관됩니다. "안 될 게 뭐있어?"
프랑스 식당과 카페에서 종이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한 것에는 우선 '법'의 영향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2020년 발효된 '낭비방지 순환경제법'(Loi anti-gaspillage pour une economie circulaire, 이하 순환경제법)에 따라 상당수의 플라스틱에 규제를 가했습니다. 이 법은 204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제로'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플라스틱을 이용한 빨대 △플라스틱 일회용 포크 등의 식기 △테이크아웃용 컵의 플라스틱 뚜껑 등이 금지됐습니다.
'법' 만큼 이곳 자영업자들이 의식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요구입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이를 식당과 카페들이 수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내하고 '플라스틱 대신 종이'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각종 용기에서 플라스틱이 사실상 퇴출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와 관련해 파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 가게는 테이크아웃을 해줄 때 용기는 종이, 뚜껑과 소스통은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안 되는 용기에 음식을 담아주면 손님들이 굉장히 싫어해요. 손님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선제적으로 친환경 용기의 사용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부 소스 용기 등을 종이로 바꿀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음식을 담은 후 시간이 지나면 종이 용기의 경우 물렁물렁해지고, 냄새도 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씁니다. 그만큼 환경 문제에 스스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종이' 용기는 과연 '플라스틱' 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종이를 쓰면 나무를 더 베어야 하니까 친환경적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종이에 코팅을 입히면 플라스틱과 똑같이 환경에 좋지 않은 소재가 되는 건 아닐까요? 모두 나올 수 있는 지적입니다.
초점은 '종이'가 아니라 '플라스틱'에 맞춰야 합니다. 현재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썩지도 분해되지도 않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2019년 기준 1인당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44㎏으로 세계 3위였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배달음식의 폭증 등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 올라갔을 게 유력합니다. 6위 프랑스(36㎏)의 과감한 행동에 영감을 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종이 자체가 플라스틱보다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환경부의 LCA(Life Cycle Assessment, 환경 전과정 평가) 실시 결과,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72.9% 적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코팅된 종이 용기와 플라스틱 용기 중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는 것은 종이 쪽입니다. 재활용한 종이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나무'에 대한 걱정도 어느정도 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종이를 플라스틱만큼 많이 쓰자는 말은 아닙니다. 플라스틱을 종이로 바꾸는 것은 전체적인 1회용 용기 사용을 줄여나가는 과정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파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플라스틱이 종이로 변환되고 있는 트렌드를 언급하면서도 "손님들이 유리 등으로 만들어진 용기를 가져와 포장해가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순환경제법 발의에 있어 일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순환경제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Economie Circulaire)의 위고 콘즐만(Hugo Conzelmann) 연구원을 파리 떵플가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었는데요. 그에게 플라스틱과 종이 사용과 관련한 딜레마에 대해 질문을 해봤습니다. 콘즐만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다음처럼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과 싸우고 있습니다. 포장재로 더 많은 종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건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니죠.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든간에 '1회용 포장'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만 플라스틱보다는 종이가 재활용하기 더 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종이로 만든 1회용 포장재의 72%를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경우 30%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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