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유정'] '20세기 소녀'가 '국민 첫사랑'이 되기까지

김샛별 2022. 11.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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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된 국민 여동생…경험에서 나오는 현명함

배우 김유정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플릭스 제공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경력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말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이제는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촬영장에서 그동안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연기관을 펼치는 중이다. '국민 아역배우'에서 이제는 '국민 첫사랑'이 된 배우 김유정이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연출 방우리)의 주연 배우 김유정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날 기자가 실제로 만난 김유정의 이미지는 다소 의외였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해맑은 모습보다는 차분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인터뷰 또한 과하거나 덜한 것 없이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이끌며 똑 부러지는 답변을 내놓는 김유정의 모습은 새삼 그의 연기 경력을 떠올리게 했다. 영리함과 현명함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쌓아 올린 김유정에게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소녀'는 어느 겨울 도착한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1999년의 기억, 17세 소녀 보라(김유정 분)가 절친 연두(노윤서 분)의 첫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첫사랑과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김유정은 단짝 친구의 짝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7세 소녀 나보라 역을 맡아 활약했다.

김유정의 '20세기 소녀' 출연 확정은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다. 앞선 작품을 끝낸 뒤 잠시 휴식기와 여유를 가질 법도 한데 그는 촬영 중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묻자 "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확인한 순간,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김유정은 "처음에는 감독님이 궁금해서 만나고 싶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이 작품이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시나리오 또한 인물별로 매력이 확실한 데다 각기 다른 관계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직접 쓴 작품이자 입봉작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았다"고 밝혔다.

배우 김유정이 '20세기 소녀'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1999년생인 김유정은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일들을 연기해야 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 시대를 공감하며 표현해야 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김유정이 나보라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건 평소 그를 채우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 덕분이었다. 김유정은 "사실 그 시대를 오롯이 공감하진 못했다. 다만 원래부터 90년대 영화를 많이 보고 음악도 80~90년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아날로그 감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메리트로 다가왔다. 덕분에 즐기면서 하다 보니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소품 등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인지라 김유정을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플로피 디스크와 삐삐가 가장 놀랐단다. 그는 "플로피 디스크는 보라 방에만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물건인지 추측조차 불가능했다. 스태프분들이 알려줬을 때서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다. CD플레이어도 삐삐도 신기했다. 난 아이스크림폰 초콜릿폰, MP3 등을 썼었던 세대지 않냐"며 웃음을 보였다.

연기적인 면에서는 '10대의 감성'에 중점을 뒀다. 아직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은 김유정이지만, 10대 때의 감성을 다시 끌어올려 나보라의 말투나 톤을 만들어가야 하는 면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이에 김유정은 '첫사랑'에 집중했다. 그는 "우리 작품의 주제가 첫사랑이니 뭐가 됐든 처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리액션을 할 때 정말 처음인 사람한테서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은 무엇일지를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잘 표현된 부분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도 보여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라라는 인물이 순수하고 귀엽게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고 전했다.

반대로 외적인 면에서는 고민보다는 편안함과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김유정은 "의상, 헤어, 메이크업 모두 최대한 많이 덜어내려고 했다. 마음가짐 자체도 스타일에 대해서는 편하게 생각하고 작품에 들어갔다. 대신 극 중 보라가 입는 옷들을 촬영 전부터 실제로 많이 입고 다녔다. 몸에 안 맞는 옷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가 예쁘게 꾸미고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보라라는 인물이 예쁘게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17세만의 예쁨이 있잖아요. 전 그저 보는 사람이 편하게끔 17세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그 나이만의 순수함과 매력이 나올 거라고 믿었어요. 실제로도 작품의 색감이나 분위기와 잘 맞아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김유정이 '국민 첫사랑'이 된 소감을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국민 아역배우였던 김유정은 '20세기 소녀'를 통해 청춘물의 대명사로 호평받으며 새로운 '국민 첫사랑'으로 떠올랐다. 다만 정작 본인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서는 첫사랑 이미지를 잘 살렸다고 칭찬해주지만, 사실 공개된 지 오래되지 않아 관객들의 반응은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촬영할 때 '첫사랑 이미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뜻이지 않나"면서도 "그렇지만 아직은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MZ세대 대표 아이콘으로서 세기말 첫사랑을 연기해본 소감도 궁금했다. 촬영 기간 나보라로 완벽하게 분했던 김유정은 두 세대의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 그는 "우리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90년대에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엇갈리고 그렇게 오해가 쌓인다. 그러면서 오히려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돼 내면에서 감정적으로 폭이 넓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요즘에는 연락이 엇갈릴 일은 없는 것 같다. 때문에 비교적 감정이 더 솔직하고 바로바로 교류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김유정 하면 '첫사랑' 'MZ세대' 등 주로 풋풋한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이에 못지않게 노련함도 지니고 있는 그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CF로 데뷔한 김유정은 연기 경력만 따지면 '20년 차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작품의 주연으로서도 경력으로서도 극의 중심을 잡고 함께하는 배우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 역할이 됐다.

마침 김유정 또한 이 부분에 대해 혼자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에 '20세기 소녀'를 만났다. 특히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등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유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선배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어느 작품이든 항상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생각이 많았어요. 부담도 물론 됐고요. 물론 오히려 좋았던 부분도 있어요. 제 의견을 보다 더 자유롭게 낼 수 있었고, 편하게 상의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반대로 조심하려고 신경 썼던 부분도 있어요. 경력을 내세우지 않는 점이에요. 제가 경력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닌 데다 전 경력보다는 현재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지나친 관여는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배우 김유정이 '20세기 소녀'를 촬영 중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선배'가 된 김유정이 초반에 배우들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20세기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김유정은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주연배우들을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이번엔 내가 먼저 손을 건네지 않으면 상대 배우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응해줬다. 덕분에 처음부터 굉장히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 '케미'가 작품에 잘 담긴 것 같다"고 밝혔다.

화기애애했던 배우들의 분위기는 몇몇 에피소드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김유정은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또래 친구들이라 좀 더 편했다. 촬영 중에도 항상 밥을 같이 먹었는데, 한 시간 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미리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오곤 했다.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은 어느 날에는 넷이서 직접 차를 몰고 드라이브스루도 했다. 햇살을 받으며 학교 벤치에서 함께 먹는데,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연기라는 건 상대 배우와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잖아요. 물론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엄청 친해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 같이 하나의 작품만을 바라보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합이 맞지 않으면 틀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평소에도 초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김유정의 현명함과 노련함은 마지막 인사에서도 드러났다. '17세기 소녀'를 떠나보내며 17세의 김유정과 17세의 관객들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어떤 일이든 별일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막상 지나고 나면 그다지 큰일이 아닌데, 그 당시에는 누군가의 한마디, 작은 상황 하나하나에 연연하는 시기가 있어요. 그런 시기나 상황들을 절 믿고 조금 더 편안하게 흘려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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