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의 시선] 이태원, 그리고 블랙 미러

이선영 MBC 아나운서 2022. 11. 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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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선영 MBC 아나운서]

* 블랙 미러(Black Mirror): 넷플릭스 SF 시리즈의 제목으로, 사람들이 신체의 일부처럼 들고 있는 스마트폰과 각종 스크린을 '블랙 미러', 검은 거울로 묘사하며 미디어와 기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대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그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연합뉴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일주일이 흘렀다. 세월호 때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그 위로 다시 깊은 생채기가 났다. 뉴스에서는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나와 '집단적 트라우마'가 우려된다며, 그날의 충격을 되새길 수 있는 영상을 멀리하고 뉴스 시청도 자제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매일 같이 참사 소식을 전해야 하는 보도 인력에게는 닿지 않는 조언이다. 그만 보고 싶어도,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피할 수 없는 이 잔혹한 참사를 앵커석에 앉아 보도하며 나는, 혹시 내가 블랙 미러 속 스피커가 아닌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태원에는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다. 최근 경각심이 높아져 가는 마약 범죄에 대해 경찰이 핼러윈 이태원에 특별 단속을 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3년 만의 노 마스크 핼러윈, 10만 명 이상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측됐기 때문에 모처럼 북적이는 10월의 마지막 주말을 기록하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현장을 담은 기자들이 있었다. 참사를 기록하러 간 게 아니었는데, 어깨에 카메라를 진 그들은 그날의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기자들 말고도 많았다. 유튜브에, SNS에 마구잡이로 떠돌아다니는 영상들 속 가슴이 무너지는 절규만큼이나 소름 돋는 장면. 널브러진 사람들 사이로 손을 뻗어 들린 핸드폰이었다. 누군가 생의 경계에서 사투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검은 화면이 나는 쓰러진 사람들의 참혹한 광경만큼이나 견디기 힘들었다. 코앞에 있는 죽어가는 어떤 사람과, 넘치는 생명력으로 살아 숨 쉬는 자신을 완벽히 타자화해야 할 수 있는 행동.

그들 중 일부는 선의의 알리미를 자처했을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블랙 미러'의 주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의 비극을 팔아 관심을, 좋아요를 벌었다. 그럼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고, 다수에게 이 참사를 전시한 우리 보도 인력도 역시 '블랙 미러'일까. 고개를 끄덕이다, 젓는다.

참사 초반 우리는 그 경계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거의 모든 언론이 처음에는 인터넷에 올려진 영상들을 가공 없이 반복 방송했다. 그리고 '건설기계공학', 혹은 '법률 전문가'들을 급한 대로 패널로 불러놓고 그들의 전공과 상관없는 망자들의 사인을 물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묘사했다. 물론,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비극을 일단 알려야 한다는 공익적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각사마다 정리된 보도 지침이 내려지기 전까지 거의 모든 언론은 재난 방송이 아닌, 고어물(Gore,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피를 의미하는 뜻으로, 잔혹함을 강조한 공포 장르의 속칭)을 내보냈다.

상황이 차츰 정리되자 언론사들 스스로 자정(自淨)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현장에서 영상 취재를 한 기자들 전부가 자신들이 찍어온 영상을 내보내지 않았다. MBC의 경우, 참사 광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담긴 인터넷 영상은 인용 시 뿌옇게 처리하는 것을 기본으로, 비명소리를 일부러 지우고, 증언 중에서도 너무 사실적인 것들은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전문가 출연 대담에서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묘사도 곧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정은 여전히 더 기민해야 한다.

더 사실적인 장면으로, 자극적인 보도를 더 오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이 참사로 우리 보도 인력이 알려야 할 진실은 망자들이 얼마나 잔혹한 모습으로 생을 달리했는지가 아니라, 이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가 뒷짐 져온 숙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아야 할 조회 수는 반드시 후자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사실 보도가 원칙이며, 그 가치를 따져 취사 선택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절대 전자가 후자를 앞지를 수 없다. 한정된 뉴스 큐시트 블록에,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최대한 채워 넣어야 한다.

언론은 언제든 '블랙 미러'로 전락할 수 있다. '블랙 미러'냐 아니냐를 정하는 건 정말 종잇장 같은 한 끗 차이기 때문이다. 숨 쉬듯이 블랙 미러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자. 이제 남은 유가족 취재와,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의 모든 비극에 대해 언제나 몸부림 쳐야 한다. 폴리스 라인 안 비집고 뻗쳐 나온 '블랙 미러'가 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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