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생각나" 주저앉아 오열…참사 일주일,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김미루 기자, 김성진 기자 2022. 11. 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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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서 한 조문객이 주저 앉아 희생자 친구의 편지를 읽고 있다. "너희 어머니는 내가 챙겨드리겠다. 영상에 나온 사람이 혹시 네가 맞느냐.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사진=김미루 기자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일주일이 5일도 합동분향소에 조문객들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오전 9시쯤 조문객들이 드문드문 와 개별적으로 조문을 하다가 오전 10시쯤부터 몰려서 여러명이 한꺼번에 분향했다. 오전 10시쯤 최순례씨(77)는 조문을 하다 "아이고" 울음을 터뜨린 뒤 자리에 주저앉았다. 함께 온 아들이 부축했지만 최씨는 비틀거렸다. /사진=김성진 기자.

토요일인 5일 경기 안산에 사는 70대 김모씨 부부의 하루는 오전 6시쯤 시작됐다. 서울에 반드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서울 곳곳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는 이날 밤 10시를 끝으로 운영을 중단한다. 김씨는 "그 전에 꼭 분향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본 뉴스 화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압사사고가 났다고 했다. 영상 속 "살려달라"는 음성이 귀에 맴돌았다. 김씨 부부는 사고 후 며칠이 지나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안 와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면 부부는 거실로 가 TV를 틀고 '혹여나 사람이 더 죽었나' 뉴스를 찾아본다고 한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했다. 김씨는 "그동안 어린 생명들이 죽었던 참사를 떠올리게 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사가 난 지 벌써 일주일을 맞았지만 조문객 발길은 끊길 줄을 몰랐다. 이날은 정부가 정한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이다. 분향소는 지난달 31일 설치돼 그동안 평일 조문객들을 받았다.

이날은 주말을 맞아 먼 곳에서 온 조문객들이 유독 많았다. 56세 김모씨는 이날 강원도 동해시에서 KTX를 타고 조문을 왔다. 가까이 강릉 출신 대학생 한명이 이번 참사로 숨졌다. 김씨는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프다"며 "평소에도 뉴스 보며 눈물을 많이 흘리지만 오늘 직접 조문해보니 생각보다 더 울었다"고 했다.

오전 10시쯤 분향소에서 한 고령 여성이 "아이고" 울음을 터뜨린 뒤 주저앉았다. 아들로 보이는 인물이 옆에서 부축했지만 여성은 이내 비틀거렸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최순례씨(77)였다. '주변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 거예요'라고 묻자 최씨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없어요, 없어요"라며 "우리 손녀딸 생각해서 그려"라고 했다. 최씨의 손녀딸은 올해 23세다.

최씨는 "애기들 꽃 피우지도 못하고 죽으니 어떡하면 좋아, 억울해서"라며 "그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 거야"라고 했다.

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이 놓고 간 편지와 선물이 쌓였다. 외국 젤리와 바나나우유 등 20~30대가 좋아하는 간식이 많다. 오는 11일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빼빼로 상자도 많았다.

열두 살 초등학생 김모군이 남긴 편지도 있었다. 김군은 희생자들 가족을 향해 "너무 슬퍼 마세요"라며 "자녀분들 모두 물 위로 떠 오르는 별이 됐을 거예요"라고 썼다. 이어 "이태원 참사 꼭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태원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도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은 주말을 맞은 가족 단위 조문객이 많았다.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가족 단위 조문객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최정민씨(36)는 초등학생 1·2학년 딸 둘을 데리고 경기도 의왕시에서 분향소를 찾아왔다. 두 딸은 한 명씩 도마뱀 장난감, 판다 인형을 손에 들고 폴짝폴짝 뛰다가 최씨 손 붙들고 분향소에 들어서자 차분해졌다. 최씨는 "참사 후 학교에서 선생님이 '계단에서 밀지 마라' '복도에서 뛰지 마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며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서 이번 참사를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분향소에 왔다"고 했다.

최진호씨(45)도 두 딸 최진예양(18), 최지안양(16)과 분향소를 찾았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만큼 반드시 조문해야겠다고 평일 내내 다짐했다고 한다. 최씨는 "자녀들에게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며 "희생자에 공감하고 마음을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서울 아닌 지역에서 온 조문객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진=김미루 기자
아이들 손 붙들고 이태원 찾은 추모객들…"엄마 울지마"
오후 1시쯤 이태원 참사 현장 앞 인도 30m 구간은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 공간이 있었다. 출구 벽 주변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화와 쪽지가 수북이 쌓였다.

한 30대 여성은 추모 공간 앞 같은 자리에 20분째 서서 옷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여성 옆에는 7세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스마트폰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아이는 여성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엄마 우는 거 아니지? 엄마 울지마"라고 위로했다.

참사 현장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앞에는 추모객 20여명이 서 있었다. 이들은 서로 일면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진으로 봤는데 이렇게 좁은 골목이었는지 몰랐다" "중간에 서서 손 뻗고 도보 방향만 통제했어도 참사를 막았을 것"이라며 서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지난 주말 이후 처음으로 돌아온 토요일인 5일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평일에는 일하느라 못 왔던 직장인 남성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최요한씨(55)는 이날 아들 최시현군(11)과 이태원을 찾았다. 앞서 최씨가 '이태원 가볼까' 제안했더니 최군이 "가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했다. 최씨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팽목항에 못 간 것이 마음에 짐으로 남았다"며 "이번에는 꼭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들과 왔다"고 했다.

박모씨(22)는 이날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오전 8시 버스를 타고 이태원에 왔다. 꽃과 과자를 담은 상자를 추모 공간 선물들 틈에 끼워 넣었다. 베이지색 편지 봉투에는 직접 쓴 손글씨가 있었다. 박씨는 "유가족분들과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이 편지를 바칩니다. 읽고 기운 내시길 바랍니다"라고 글을 썼다.

추모 공간 운영기간은 이날까지지만 이태원역 추모 공간은 한동안 더 운영된다. 용산구청은 추모 공간 일대에 공무원들을 배치해 교통관리 등을 하고 있다. 오래돼 부패한 음식과 시든 조화, 쓰레기 등을 치우는 미화 작업도 한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추모 공간을 언제까지 운영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간인 만큼 구청이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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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루 기자 miroo@mt.co.kr,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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