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기자 쉬린의 죽음은 모든 팔레스타인의 매일매일이다"
이스라엘에 총격 당한 고 쉬린 아부 아클레 동료 마지디 베누라 알자지라 기자
"어제도 3명이 죽었다…한국에선 팔레스타인 자체를 모르는 듯"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저는 팔레스타인인이기에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시상식에 참석하고자)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 요르단에서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의 도하를 거쳐야 했습니다. 정치와 정책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지금 제 상황입니다.”
마지디 베누라 기자는 지난 5월11일 이스라엘군의 총에 동료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를 잃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지구 제닌 난민촌 공습 현장이었다. 그는 1997년 아부 아클레 기자와 알자지라에 입사해 그의 첫 리포팅을 촬영했고 25년 간 동고동락해왔다. 영상 기자인 그는 동료가 총격을 당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영상은 이스라엘군의 책임 회피 주장을 뒤집는 증거로 쓰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현재와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에 대해 마지디 베누라 기자와 이야기하는 자리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렸다. 그는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수여하는 2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오월광주상을 수상해 한국을 찾았다. 고양YMCA와 올리브나무평화한국네트워크,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이 공동주최했다.
간담회에 앞서 주최 측은 베누라 기자가 촬영한 이스라엘군의 아부 아클레 기자 총격 당시 영상을 상영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활동가 모나씨는 영상 재생이 끝난 뒤 메인 목소리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 외쳤다. 베누라 기자는 “제 마음이 어떤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쉬린이 희생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매일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베누라 기자는 총격 당시를 떠올리며 “(쉬린이 총격 당한 뒤) 총알이 계속 쏟아졌다.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그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쉬린에게 같이 가서 구조 작업을 할 것인가, 여기서 계속 찍을 것인가. 저는 결국 찍기로 했다”며 “병원을 찾은 10분 남짓 동안 쉬린이 살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꿈일 뿐이었다”고 했다.
쉬린이 당한 총격은 팔레스타인의 언론인은 물론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겪는 현실을 반영한다. 베누라 기자는 취재 중 부상 당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4번 다쳤다. 2년 전엔 최루탄에 맞아 다쳤고, 손가락과 귀 뒤쪽에 흉터가 남아있다”며 “팔레스타인이라면 언론인이든 의사이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군에) 위협을 당한다”고 했다. 그는 “저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 수도인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다. 그 지역이 다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며 “쉬린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살았는데도 저격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탄압과 차별, 생명의 위협 속에서 취재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베누라 기자는 가자와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통행이 금지돼 이들 지역을 제외한 서안지구 전체를 취재하고 있다. 그는 주요 취재 내용을 묻는 질문에 “매일 총격이 일어나 매일 그 사건을 보도한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던 날에 팔레스타인인 5명이 죽었다. 어제(28일)도 3명이 죽었다.”
1947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현재 이스라엘 정착촌을 둘러싸는 8미터 높이의 분리 벽을 세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위한 별도의 도로를 지정했다. 이스라엘인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한 종류의 신분증만 가지지만, 팔레스타인의 신분증은 4가지로 나뉘어 이에 따라 거주 지역, 이동권 등 기본권이 제한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투표권이 없으며 건축허가권이 없고, 이스라엘이 도입한 '가족통합금지법'에 의해 신분증이 다른 팔레스타인인들끼리도 함께 지낼 수 없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월 이를 '아파르트헤이트 범죄'로 규정하고 2000년 9월~2017년 2월 이스라엘군이 무력 충돌이 아닌 상황에 1793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4868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는 4살 아동을 포함한 44명이 숨졌으며 이 중 33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를 맡은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저희가 처음에 베누라 기자의 한국행 항공권을 끊을 때 텔아이브 공항 출발로 끊었다. 그런데 베누라 기자가 '그렇게 하면 나올 수가 없다'고 전해 취소하고 다시 끊어 드렸다. 이스라엘의 점령한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의 자유조차 없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도하며 이스라엘의 관점을 담은 서방언론을 인용하는 현실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한국언론은 직접 취재하지 않고 서방언론의 기사를 번역해 싣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영미언론을 많이 참고하는데 이스라엘에 매우 편향적이기에 한국의 보도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세력을 이스라엘 주장대로 '테러단체'라 말하는 경우가 많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지 않고 마치 두 나라가 싸우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아부 아클레 기자가 살해당했을 때에도 '팔레스타인 테러범 소행'이라는 이스라엘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한 보도가 태부족인 점도 문제다. 그는 “한국에 온 뒤 한국인의 편견이라기보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음을 느꼈다”고 했다. “일단 지도에도 이스라엘이라는 표기는 있지만 팔레스타인이라고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이 따로 있다, 각각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분쟁 중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하다.”
베누라 기자는 “팔레스타인의 공영언론과 알자지라의 팔레스타인 내 사무소에서 쓰는 기사들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것을 참고하면 된다”며 “알자지라는 팔레스타인 내에 라말라, 가자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사실 확인은 이들 사무소를 통해 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한국 언론의 팔레스타인 현장 취재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도 밝혔다. “한국 기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와서 취재하고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인의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본 것을 그대로 기사로 내면 될 것”이라고 했다.
베누라 기자는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위협 없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꿈꾼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엔 매일 매일 희생자가 나옵니다. 광주의 민주화운동과 같은데, 그것이 지금 매일 매일 일어나는 셈입니다. 제가 받는 상은 저만의 상이 아니라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저희 편에 서주신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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