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장 개입’ 저작권, 굳이 따지면 뮈르달이 먼저였다
이재성의 노벨경제학상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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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선정하면서 그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이론에 말미암은 세계관의 협곡이 이렇게 깊어질 줄을.
노벨상위원회가 군나르 뮈르달(1898~1987)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밝힌 이유는 “화폐와 경기변동 이론의 개척, 그리고 경제와 사회 및 제도적 현상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두 사람 모두 경제학자로서의 커리어를 화폐이론과 경기순환이론 연구로 시작했지만, 순수경제학에 머물지 않고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사상가적 면모를 보였다는 공통점으로 두 사람을 묶었던 것이다. 1969년 첫 수상자를 발표한 이래 1973년까지 노벨경제학상은 순수경제이론학자들만 대상으로 수여해왔던 터였다. 뮈르달과 하이에크는 순수경제학자가 아닌 첫 수상자였다. 노벨경제학상으로선 지평 확대라는 커다란 결심을 했던 셈이다.
“경제는 기대다”
특히 뮈르달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교수에 그치지 않고 현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이상을 실현하려 애썼다. 1933년 스웨덴 사회민주당 의원이 됐고, 1945~1947년에는 상무부 장관으로, 1947~1957년 10년 동안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1930년 펴낸 첫 책 <경제발전 이론에서의 정치적 요소>(The Political Element in the Development of Economic Theory, 1930)는 그의 정치 참여를 예견한 작업이었다.
대학 강의 내용을 모은 이 책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경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그의 주장이 케인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굳이 저작권을 따지면 뮈르달이 먼저다. 그의 책 <화폐경제학>(Monetary Economics, 1932)은 케인스의 <고용, 이자와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보다 4년 먼저 출간됐다. 영어 번역이 늦었을 뿐이다. 경제학자로서 그의 공헌을 기리는 군나르 뮈르달상도 있는데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03년 이 상을 받았다.
뮈르달의 업적 가운데 기억할 만한 것이 “경제는 기대다”라는 정의다. 그는 앨프리드 마셜(1842~1924) 이후 경제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다른 조건이 불변인 한’이라는 정태적 개념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으며, 경제를 끌고 가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expectation)라는 거시적 동학 분석을 제시했다.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인 줄로만 알았던 개념이 실은 뮈르달이 1927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에 있던 내용이었다.
빈곤의 누적인과관계
노벨상위원회가 가장 주요하게 언급하는 뮈르달의 연구는 <미국의 딜레마: 흑인문제와 현대 민주주의>와 <아시아의 드라마>다. <미국의 딜레마…>는 미국의 흑인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 역사·구조적으로 파헤친 역작이라 평가받았다.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들의 차별이 흑인의 소득을 감소시키고, 이는 흑인 가정의 교육과 건강을 악화시켜 다시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을 ‘누적인과관계’(Circular cumulative caus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아시아의 드라마>에서는 이 개념을 국제적으로 확장해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남아시아의 빈곤에 이른바 선진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이에크와 뮈르달의 차이는 결국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의 차이다. 뮈르달은 약자의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하이에크는 딱히 강자의 관점이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반공이라는 신념에 투철했고, 사람보다는 체제(의 유지)에 집착했다. 둘 다 사회주의에 반대했지만, 뮈르달은 사회주의 요소를 적극 차용해 불평등 해소와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옹호했고, 하이에크는 복지정책을 포함한 일체의 정부 개입이 결국 ‘노예에 이르는 길’이라며 결벽적으로 반대했다. 오늘날 스웨덴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를 가른 사상적 기원이다.
두 거인이 남긴 지적 유산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정치이데올로기의 두 축으로서 인류 대부분의 운명을 결정했다. 물론 현실에서의 영향력은 신자유주의가 압도적이다. 경쟁과 효율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가 시장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파산 선고를 받았지만, 국가를 동원한 구제금융으로 되살아났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체제는 여전히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로써 불평등과 자연파괴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1974년의 노벨상위원회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신념을 가졌을 리는 없다. 당시의 좌파는 국가로 건재했던 사회주의였고, 정치 이념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본격 태동하기 전이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우파라는 비난을 받았던 개량주의의 후예들이다.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양극단 사이에 사회민주주의가 있었다. 모든 극단주의는 수사적으로 통쾌하지만, 하이에크 본인이 케인즈주의를 향해 경고했듯이, 결과를 알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평등이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라 해도 폭력을 동반한 강제는 지속하기 어렵고, 경쟁이 아무리 효율적이라 해도 경쟁으로 가득한 세상은 존립하기 어렵다.
인류가 선택한 체제 가운데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믿었던 북유럽 사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총선에서 사민당을 포함한 좌파연합이 극우정당을 포함한 우파연합에 패배했다. 겉으로는 난민 문제를 포함한 극우적 이슈가 요란하지만, 실은 고부담 복지를 싫어하는 신자유주의 성향의 젊은층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바닥을 모른다.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는 기후위기의 재앙 앞에서 점점 더 희망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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