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나라 케냐…한국판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가능하다

한겨레 2022. 11. 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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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케냐 수도 나이로비 외곽 키암부에 있는 파라다이스로스트(Paradise Lost) 커피 농장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안고 커피 열매를 따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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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리카 응공 언덕 기슭에 커피농장을 갖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덴마크 여인 카렌의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영화는 케냐를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홍학떼 등 아프리카의 자연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 1985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분야를 수상했다.

카렌은 스웨덴 사람 블릭센과 결혼한 뒤 케냐로 이주했고, 영국 식민지 케냐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백인 농장주였다. 그는 농장에서 일하는 케냐인들을 위한 주거와 의료, 교육을 위해 힘썼다. 그래서 카렌이 거주하던 나이로비 남서쪽 지역은 지금도 카렌으로 불리며, 그가 거주하던 집은 카렌블릭센 박물관이 돼 있다. 카렌이 케냐를 떠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커피농사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노동력에 의존하고, 커피농사에 종사하는 케냐인들의 소득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기업이 케냐 커피 시장 개혁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최근 심해지는 가뭄을 꼽을 수 있다. 다른 농사와 마찬가지로 커피농사에도 많은 물이 필요하다. 케냐에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날씨’인데, 기온이 내려가는 7~8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봄과 가을 같은 연중 온화한 날씨가 이어진다. 하지만 건기에 비가 내리고, 우기에도 비가 오지 않는 등 최근 몇 년간 기후변동이 심하다. 특히 2022년에는 우기에 강수량이 줄어 농업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빗물에 주로 의존하는 천수답 방식이고 댐 등 관개시설이 부족한데, 기후변화도 커져 생산성이 낮아지고 있다.

다음은 생산구조다. 커피 원두의 산출은 노동, 토지, 자본, 기술에 달렸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 따르면 케냐 농토의 20%에서만 생산성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집계를 보면, 케냐의 소규모 영농 규모는 평균 1.2에이커(약 1470평)여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렵다. 또 기계 동력은 전체의 30%에 불과해 파종, 비료 살포 등이 주로 노동집약적 형태로 이뤄진다. 이처럼 농가 대부분이 소규모 영농 또는 생계형 자급자족 형태로 이뤄져 생산성이 제한받는다.

마지막 요인은 복합적이다. 케냐 농업은 외부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유럽 등 주력 수출시장의 수요 부진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복잡한 유통구조와 판로 개척의 어려움 등을 겪고 있다. 최근 메뚜기로 인한 병충해 피해도 농민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케냐의 대표 농작물 중 하나인 커피의 밸류체인(가치 창출 활동 연결)은 크게 생산, 가공, 유통, 소비 단계로 나뉜다. 케냐의 커피는 60%가 소규모 영농으로 생산되는데, 최근 몇 년간 가뭄과 메뚜기떼 등 병충해로 생산량이 줄었다. 수확 뒤 체리의 껍질을 벗겨내는 펄핑(Pulping) 작업과 건조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과잉 건조, 운송 중 오염, 보관 노하우 부족 등으로 유실이 생긴다. 유통 단계에선 시장정보 부족과 수출인증 취득 문제, 가격변동, 인스턴트커피 시장의 발달 등으로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건조, 가공, 경매 등 복잡한 유통 단계로 농민에게 돌아가는 마진도 적은 편이다. 최종 소비 단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차(Tea)를 선호하는 문화권과 국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한국 사업가가 케냐에 설립한 커넥트커피(Connect Coffee)의 치로모 지점. 커넥트커피 누리집

이런 난관에 직면한 커피농가를 위한 해답은 정녕 없을까? 놀랍게도 현지 한국인들의 손을 통해 새로운 해답이 제시되고 있다. 케냐에는 아직 스타벅스가 진출해 있지 않다. 자바커피(Java Coffee), 아트카페(Art Coffee) 등의 커피숍이 있고 케냐 더블에이(Kenya AA), 스프링밸리(Spring Valley) 커피를 비롯해 다양한 커피제품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사업가가 현지에 설립한 커넥트커피(Connect Coffee)라는 새로운 커피 브랜드와 커피숍이다. 2016년 설립한 이 기업은 2019년 오픈한 시내 5호점에서 여유로운 공간과 음식을 제공해, 커피숍을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워케이션(Workation·일+휴가)이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을 변화시켰다. 아울러 한국산 자동 커피머신을 도입해 커피는 ‘내려서 마시는 것’이라는 현지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면서 기업고객 등 새로운 커피 수요층을 발굴하고 있다. 이런 기계화로 부가가치를 높여 케냐인들의 커피사업 창업을 돕는 커피스쿨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출을 진행하는 등 종합 커피사업 기업으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또 다른 한국인이 운영하는 커피 판매 기업 골드락인터내셔널(Goldrock International)은 커피농장 3곳을 운영하면서 커피공장 투어 등 관광산업과 결합해 커피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민관합동 진출 전략 필요

케냐 정부는 커피뿐 아니라 전반적인 농업 부문을 빠르게 변화시키기 위해 ‘농업 부문 전환 및 성장 전략’(ASTGS, 2019-2029)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은 10년간 추진되는 농업 혁신 프로젝트로 ‘소규모 농민, 목축업 및 어민 소득 증대’ ‘농업 생산량 및 부가가치 증대’ ‘가정용 식품 탄력성 증대’ 등이 핵심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거시적으로 농업생산의 기반이 되는 수자원 관리와 미시적으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계화와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자원 관리가 중요하다. 국가댐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케냐에 15개의 댐이 있는데, 계획 단계이거나 건설 중인 댐까지 합치면 총 24개의 댐을 보유하게 된다. 케냐 정부에서 총 10개의 민관합작투자사업(PPP)을 시행하는데 이 중 7개가 용수 공급, 관개, 댐 건설 관련 사업이다. 특히 2개의 댐 건설을 PPP 방식으로 추진 중인데 수력발전, 관개, 용수 공급 등 1석 3조의 효과를 거둬 이 분야의 사업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생산 단계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스마트농업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고도화된 스마트팜은 아니더라도 비규칙적인 강수량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목 조성과 병충해 관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공 단계에서는 색채 선별기, 이물질 제거, 패키징 등으로 커피 품질을 높여야 하고 기계화와 병행해 사후관리(AS) 딜러망 구축, 농가의 교육훈련도 요구된다.

최근 케냐는 평화로운 대선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식물생태학 박사 출신이자 농업개발부 장관을 한 신임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농업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UN)총회에서 루토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의 중요성을 연설하고, 현대 농업기술 투자는 환경문제 해결의 중요한 수단임을 지구촌에 역설했다. 이에 한국이 케냐의 농업 발전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업과 소비자가 혜택을 보는 ‘윈윈’ 방안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발달한 농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케냐의 농산물 품종이 한국과 다르더라도 관개시설 개선과 농업기계화 등에 한국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의 농기계와 장비, 기술 전수로 농가소득을 개선하고 농업 현대화로 부가가치 제고와 생산성 향상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기계화와 시설 현대화 등을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투자 이전에 공공부문에서 개발협력 사업으로 마중물을 붓는 시범 프로젝트가 필요하며, ‘팀 코리아’(Team Korea) 방식으로 협업해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사관 중심의 공적개발원조(ODA)협의회에서 농가소득 향상 연구 등 시범 프로젝트를 무상원조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 이후 농업기술 전수와 코트라(KOTRA)의 유휴장비 이전 등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사업으로 한국 기업의 장비와 기술 전파 등을 연계할 수 있다. 시범사업으로 성과가 확인되면 PPP 사업이 가능하고, 코트라의 ‘서울국제식품전’ 등 전시회에서 농산물 판로 개척도 지원할 수 있다.

농기계 시장 확대

케냐 투자청에 따르면, 향후 몇 년간 정부 프로젝트에 3천 개 이상의 트랙터가 필요하며, 농민은 매년 최소 1700대 이상 트랙터를 교체해야 한다. 현지 수요가 일정 수량 이상 확보될 경우, 완제품 수출뿐만 아니라 농기계 및 장비 부품을 수출한 뒤 현지에서 조립·생산하거나 수리할 기회도 생길 수 있다. 농기계가 케냐에서 생산된다면 현재의 동아프리카 시장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고리로 아프리카 전체 시장에 무관세 접근이 가능해진다. 2025년까지 유효한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과 현재 협상 중인 케냐-미국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농산물 수출시장도 확대될 여지가 있다.

한국 농기계와 기술, 자본으로 케냐의 농업 생산성이 커지고 농민 소득도 증대돼 케냐 경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먼 훗날 케냐 농업의 역사 속에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의 이름이 100년 전 카렌처럼 아름다운 자취로 남길 기대해본다.

홍용택 KOTRA 케냐 나이로비무역관 차장 yongtakhong@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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