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참사 일주일, 이태원…시민들은 주먹으로 가슴 쳤다
주말 맞아 추모 발길 이어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은 추모객들이 놓고 간 하얀 국화와 알록달록한 메모지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국가공식 애도 기간 마지막 날인 5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주말인 이날 오전부터 시민들은 서울 용산구 녹사평 광장·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와 이태원역 추모공간을 찾았다. 시민들은 분향소와 추모공간에서 하얀 국화를 헌화하거나, 추모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을 지하철역과 도로 등 곳곳에 붙였다.
평일과는 달리 가족 단위로 조문하러 온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돌이 지난 자녀와 함께 녹사평 분향소를 찾은 용산구 주민 김현지(36)씨는 “젊었을 때는 이태원에서 모임도 많이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검은 옷을 입고 초등학교 1‧5학년 자녀 두 명과 함께 추모공간에 헌화한 이아무개(43)씨는 “출퇴근을 이쪽으로 하는데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이) 앞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같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자녀들과 가족이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여동생과 함께 온 이수진(37)씨도 “아버지가 아이들이 가는 길에 인사하고 싶다고 해서 가족이 오게 됐다”며 “참사 이후 우울했다. 항상 지나다니던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이없이 죽는다는 게 참담하고 서글펐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러 온 단체도 있었다. 문학단체 ‘시산맥’ 회원 13명은 등산을 하기 전에 녹사평 분향소와 이태원 추모공간을 찾았다. 시인 박수현(70)씨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며 “대처도 미흡했는데 참사인지 사고인지, 근조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정치를 보며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고 눈물지었다.
참사가 벌어진 시간대에 인근에 있던 시민도, 이태원을 아예 처음 와보는 시민들도 고인들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이태원을 방문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었던 직장인 문아무개(27)씨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10시 넘어서 녹사평역으로 빠져나가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죄송해서 찾아와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태원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대학생 이유나(20)씨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면서 “마음이 아파서 오게 됐다”며 이후 말을 잇지 못했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입동을 앞둔 바람결에 국화 향이 묻어났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러 온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낮 1시께 70여명의 시민은 국화꽃 한 송이씩 들고 차례대로 줄 서서 추모 순서를 기다렸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7살 딸과 추모하러 온 조순영(46)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기성세대 한 사람으로서 희생자들에게 참 미안하다”며 “(경찰·소방 등) 재난 관련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참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걸 실행 못 해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합동분향소에 추모하러 온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정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해서도 분노를 드러냈다. 남편과 함께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정원경(29)씨는 “이번 이태원 참사는 ‘행정참사’라고 생각하는데, 책임을 회피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발언을 듣고 화가 났다”며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주성호(45)씨도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을 보면 엄청나게 비겁하게 느껴진다”며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누구든 무조건 사과하고,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야 마땅한데 참사 주요 책임자들은 전혀 아무런 말도 없다”고 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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