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부재가 빚은 비극···“견딜 수 없어 왔다” 참사 현장의 시민들[이태원 핼러윈 참사]

주영재 기자 2022. 11. 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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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지난 10월 29일 밤 핼러윈 참사 현장과 가까운 이곳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국화 꽃다발 사이에, 지하철역 출구 기둥과 난간에 희생자들의 사진과 추모객들의 메시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쪼그려 앉아 출구 옆 간이탁자에서 꾹꾹 눌러쓴 추모글을 붙이는 이도 있었고, 미리 준비해온 장문의 편지를 바닥에 깔린 검은색 천 위에 붙이는 이도 있었다. 음료수와 소주, 막걸리, 과자, 케이크 등 고인이 좋아했을 음식을 올리는 이도 보인다. 서울 강남구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플로리스트들은 무료로 가져가라며, 국화꽃이 가득 담긴 큰 상자 여러개를 놓고 가기도 했다.

추모글에는 희생자의 영면을 기리는 애도와 참사를 막지 못한 사회 일원으로서의 미안함,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따로 혹은 한데 섞여 있다. “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좋겠어. 제발. 우리 ○○ 하늘에서는 푹 쉬자”, “상상조차 못 할 고통을 겪게 해 죄송합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또래 친구들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25세의 한 추모객이 남긴 글도 눈에 띈다. “2014년 4월 16일 너희들을 떠나보내며 슬픔에 잠긴 우리는 너희 몫까지 열심히 헤엄쳐보겠다고 다짐을 했었어. … 너희들을 뒤로 한 채 미소를 띠며 한발 앞서간 나, 어느 순간 뒤를 봐도 또 다른 너희들이 보이지 않아. 2014년 4월 16일 그날처럼. 미안 두고 가야 해서 미안…. 이제부터 시작이야. 너희들 몫까지 최선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 볼게.”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 11월 3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꽃 등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행정 부재가 빚은 참사
추모객들은 아픈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태원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지난해까지 간호사로 일했던 황경란씨(47)는 지난 11월 1일 남편, 딸과 함께 이태원역을 찾았다. 순천향대학병원은 참사 당일 사상자가 가장 많이 실려왔던 곳이다. 황씨는 “매일 출퇴근하면서 지나가던 곳이라 더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시신들을 거리에 눕혀놓고 CPR(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걸 보고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면서 “병원에선 심정지 환자 한명만 와도 의료진이 10명 정도 붙어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당시엔 그런 상황이 안 돼 1 대 1로 대응하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서울 반포동에서 온 이규진씨(20)는 “희생자들의 아픔이 계속 생각나고, 건너서 아는 분 중에 사고를 당한 분들도 계셔서 추모하러 왔다”면서 “참사 후에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는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외국인 희생자는 26명이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희생자 A씨는 한국계였다. A씨는 지난 9월 입국해 오는 11월 7일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A씨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은 11월 2일 참사 현장을 찾아 울분을 토했다. “우리 아들,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라고 어학당에서 공부하라고 보냈는데 귀국 일주일을 남겨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전 어떻게 합니까. 제가 2~3일 동안 우리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과정에서 너무 가슴을 치고 통곡합니다. 아무런 매뉴얼 없이 말만 계속 바꿔가는 게 한국의 현 실태라고 생각합니다.” 유골을 오스트리아로 옮기기 위해 시체검안서와 화장증명서 등 한글 서류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 등에서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했다. A씨 어머니와 함께 현장을 찾은 친척은 “서울시, 경찰, 외교부가 모두 설명을 잘 해줬지만 문제는 그 모든 사람의 말이 통일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라면서 “외국인 희생자들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안내를 도와줄 분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희생자도 많아 여러 나라 언어로 써진 추모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B씨는 미국인 희생자 스티븐 블레시(20)의 가족을 대신해 영정을 놓고 이태원역 추모 현장 사진을 가족에게 보냈다. 2002년부터 부산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스티븐 누나의 친구라 한국을 찾지 못하는 가족을 위해 추모하는 모습을 찍었다”고 말했다. B씨는 “2015년 핼로윈 축제에 왔을 때도 사고가 난 골목을 지나가는 데 15분이나 걸렸다. 나를 포함해 이곳에서 핼러윈 축제를 수년간 경험한 사람은 모두 그 골목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자발적 행사라 정부 책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태원지구촌축제처럼 주요 도로를 막았다면 혼잡이 덜했을 것이고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과 또 다른 미국인 희생자인 앤 기스케(20)와 함께 한국에 온 이사벨 미치아나(20)는 한국 정부가 이번 참사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그는 “서울불꽃축제에도 갔는데 핼러윈보다 훨씬 붐볐지만, 거긴 준비가 돼 있었다. 지하철역에서는 경찰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고,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지하철에 타지 않도록 했다”면서 “똑같은 일을 해야 했는데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19(실외 마스크 규제)가 막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년보다 더 많이 모이리라는 걸 알았을 텐데 계획이 부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회만 신경 쓴 경찰, 기동대 요청 묵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책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태원에서 30년 넘게 상업에 종사한 정창수씨는 “고등학생 딸이 핼러윈을 구경하고 싶어했는데 (참사 당일인) 토요일은 일이 있어 금요일 밤에 함께 해밀톤호텔 뒤쪽 골목을 찾았다”면서 “그때도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동료 상인 C씨는 “평상시보다 조금 많았다는 장관 말에 이곳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났다. 구청장도 행안부 사람들도 진짜 실수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차량을 막고, 일방통행을 시행했다면 참사를 피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인근 지역이 이전보다 더 혼잡하다고 말했다. C씨는 “매일 오전 11시30분쯤이면 대통령이 식사하러 간다고 녹사평역 삼거리를 막는다”면서 “용산으로 온 건 잘못했다. 여기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참사의 원인은 행정의 부재였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먼저 인파를 통제할 충분한 경찰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경찰 인력 운용계획에 따르면 서울 시내 기동대가 81개 있었지만, 집회 등에 투입되고 이태원에는 한개 부대도 배치되지 않았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대통령실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현장을 통제하다 오후 9시쯤 집회가 끝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수뇌부가 손을 놓고 있던 때 일선의 파출소, 112상황실에서 서울경찰청(서울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는 공문을 기준으로 한 말이다. 증원 요청은 참사 나흘 전인 10월 25일 오전 경찰청 내부 메신저를 통해 서울청 청문감사인권담당관실과 이태원파출소장 간에 이뤄졌다. 먼저 서울청 담당자가 “이번 핼러윈 데이 관련해 대비하고 있는 일이 있느냐”고 이태원파출소에 문의했다. 여기에 파출소장은 “핼러윈 데이 준비 중 교통기동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면서 “전문교통관리 인력이 보강되면 핼러윈 데이 군중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파출소장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용산서 일선 경찰들은 내부적으로 서울청의 경찰기동대 파견을 기대하고 있었다. 용산서가 10월 2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라는 문구가 들어가기도 했다.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의 정현욱 경감은 “작년에는 방역단속 지원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3개 중대가 배치됐기 때문에 올해도 경찰기동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서 “참사 2주 전인 이태원지구촌축제 때도 용산 경비계를 통해 서울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는데 여력이 없다면서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핼러윈 축제 때 상부 지원이 어렵다고 본 용산서 112상황실은 용산서 소속 기동대라도 지원받을 수 있는지 검토했다. 그는 “기동대가 계속(대통령실 인근) 집회에 동원되고 있는데 그날도 집회가 있어서 기동대를 배치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혹시 교통기동대라도 받을 수 있느냐고 요청해 1개 제대 20명 정도를 받기로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받았다. 하지만 실제 배치가 결정된 시간은 우리가 요청한 시간대가 아니라 집회 종료 시(오후 9시 무렵)부터 자정까지였다”고 말했다. 경찰기동대는 이미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이후에야 투입됐다.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11월 2일 조화와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음주·가무 허용 조례, 혼잡도 높였다
용산구청의 행정력도 발휘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음식점도 음주·가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만들어 인파 흐름을 막히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에 지원을 나온 정 경감은 “외부에 공개된 장소에서 통행로를 뚫는 와중에도 춤을 추고 있었다”면서 “현장이 그렇게 혼잡하게 된 건 경찰의 조치가 미흡해서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용산구청은 코로나19로 상권이 위축되자 ‘클럽형 주점을 허용해달라’는 지역 상인들의 요청을 받아 지난 4월 20일부터 ‘객석에서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의 운영에 관한 조례’를 시행했다.

일반음식점 운영자가 클럽형 주점을 운영하려면 구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용산구청에 따르면 지난 6월 3일 첫 업소 지정 후 10월 25일까지 모두 24곳의 업소를 ‘춤 허용업소’로 지정했다. 참사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인근의 주점 9곳 중 허가받은 곳은 1곳에 불과하다. 구청의 관리·감독이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차이는 유흥업소는 무대가 있어서 춤을 출 수 있지만 춤 허용업소는 무대 없이 본인 좌석 옆에서 살짝 춤추는 것만 가능하다는 점”이라면서 “(조례상 연 2차례 이상 지도·점검하도록 돼 있는데) 상반기 제정돼 아직 실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참사 당일 현장에 있던 D씨도 주점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인파가 정체됐다고 말했다. D씨는 “근본 원인은 인파를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주점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동영상을 찍느라 많이 정체된 것도 사실”이라면서 “손님을 모으기 위해 어떤 곳은 화려한 옷을 입고 계속 춤을 추도록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D씨는 “11시쯤 이태원역 삼거리 쪽 길이 뚫리면서 큰 길가로 나와보니 축 늘어진 여성 한분이 구급차에 실리는 걸 보고 보통 일이 아니라고 깨달았지만, 그 전엔 사실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면서 “카톡도 제대로 전송이 안 될 정도로 사람이 모여 있다 보니 오히려 가까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보에 더 어두웠다”고 덧붙였다.

정 경감은 졸지에 감찰 대상이 된 후배 경찰들을 염려했다. 당시 이태원파출소에는 2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를 포함해 10여명이 자원해 지원을 나왔다. “그날 참사가 있기 전 신고 대응을 하는 파출소 직원을 제외하고 모두 나와 지하철에서 인파를 통제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인지했다. ‘상황이 터졌다. 사람이 다치기 시작했구나’라고. 그때부터 현장에서 지원 활동을 했는데 그 이후로 잊히지 않아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이태원파출소는 용산에서 112 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오고, 이태원지구촌축제, 핼러윈 등 이벤트도 많아서 휴무·비번에도 강제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지금 근무하는 직원들은 다 자기들이 자원해왔다. 끈끈한 결속력과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곳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에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희생자 가족이 비난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태원파출소 직원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건 가혹하다.”

미리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시민 사이에서도 현장의 경찰만 탓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상인 C씨는 “토요일 8시 반쯤 귀가하려고 지하철역 4번 출구를 내려가는데 꽉 막힌 속에서 여경 혼자 양팔을 벌려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을 통제하고 있었다”며 “위험하니까 자기가 팔로 막고 있었는데 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D씨도 “돌아가신 분,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사건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큰일이라고 본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비난하기도 하지만 아무 피해를 입지 않고 나온 사람도 그 사람들대로 엄청난 죄책감과 무력감,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상황을 알았다면 도와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 도와준 사람이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상황이어서 현장에 있던 분들 욕은 못 하겠더라. 그분들은 소수의 인원으로 죽을 고생을 했다. 그들을 욕하기보다 트라우마 치료 등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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