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황현도(최원영)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시계가 12시를 넘기고 독백 하나가 남는다. “현우야, 결국 니가 진거네!”
4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금수저’ 13화의 피날레는 황현도(최원영 분)가 장식했다.
드라마 속 최종보스 도신그룹의 회장 황현도 역시 금수저를 이용해 부모를 바꾼 사용자였다.
결국 황현도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물였던 것이다. 정신없이 집에 쳐들어와 금수저를 이용해 밥을 먹는 이승천(육성재 분)을 보면서 그는 황태용과 이승천의 뒤바뀜도 알았을 것이고 자신과 마주치고도 변하지 않는 황태용(이종원 분)을 보면서 태용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도 알았을 것이다.
황현도로선 어차피 친아들도 아닌 황태용이나 이승천이나 별 차이가 없다. 대외적으로 ‘황현도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걸고 자신의 부를 넘겨받아 유지해나갈 존재면 충분하다. 가치있는 것은 돈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회장(손종학 분)도 본인이 직접 죽였을 것이다. 방송국 인수건이든 뭐든 모종의 이유로 나회장 집을 방문했다가 태용과 나회장의 대화를 들었을 것이고. “거짓말은 니 애비 전공이지. 니 아버지 비밀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황현도의 비밀!”이란 발언이 튀어나왔을 때 더 이상 살려둘 수 없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방송국 인수에 내몰린 나회장이 자신의 비밀을 까발릴 것을 우려해 살인멸구를 작심하고 찾았을 수도 있다.
나 회장이 알고 있는 황현도의 비밀, 황현도가 살인을 불사해가며 꼭 지켜야할 비밀은 무얼까? 아무래도 황현도의 독백에 등장하는 인물 ‘현우’와 관련있는 듯 하다.
현우와 현도. ‘현’자를 돌림으로 쓴다면 둘은 배다른 형제, 혹은 사촌 형제일 지도 모른다. 서자, 혹은 그룹 승계 순위서 밀려난 현우는 금수저를 사서 현도로 탈바꿈 하고는 친부모를 만나면 원래로 돌아간다는 규칙이 우려돼 진짜 현도를 처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회장은 둘의 뒤바뀜은 모른 채 황현도가 황현우를 처리한 사실만을 알았을 수 있다. 황현도는 일말의 분란소지도 없애기 위해 금수저는 알렉스 부(이동희 분)의 미술관에 기부했을 것이고.
또 한가지. 금수저를 구매할 당시 황현도는 예술가들이 즐겨 쓰는 헌팅캡을 쓰고 있었다. 황현도가 이철(최대철 분)을 유혹했던 몇 천 만원 상당의 그림도구는 그림을 그리던 황현우 시절 그가 애정했던 애장품일 수 있다.
그리고 이철이 선물한 그 화구를 선뜻 받아들였을 때 황현도는 쾌재를 불렀다. “승천이 아버님이 그러셨죠? 가난은 전염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모르셨을 겁니다. 부는 이렇게 사람을 쉽게 물들인다는 걸. 당신이 못다 이룬 꿈도 결국 돈 때문인 거죠. 이 돈에 당신이 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치졸하고 잔인하냐?”는 서영신(손여은 분)을 향해 표면적으로는 고상한 척 굴었던 이철에게 ‘꿈이란 것도 결국 돈’이란 진실을 알려주었다고 말하지만 내면엔, “저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라고.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란 희열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이철은 황현도로선 볼썽 사납고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자신과 달리 궁핍함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그 모습은 꿈을 포기하고 돈에 매몰돼 인생을 바꾼 그를 향한 비난의 표상같은 존재였을 테니까. 이철을 향한 황현도의 비상식적이고 잔인한 적의는 거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의문은 금수저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규칙이 있는 것인가다. 금수저를 이용할 수 있는 3번의 기회는 한달, 1년, 10년 주기다. 하지만 이승천이 황태용으로 왔다갔다한 10년동안 황현도는 그대로였고 현우란 위인은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런데 황현도가 알렉스 부의 미술관에 나타났을 때부터 괘종시계가 등장한다. 그 괘종시계가 12시를 넘기고서야 금수저 앞에서 황현도는 상기 독백을 뇌까렸다. 마치 ‘인생 바꾸기’ 프로젝트는 이제야 끝이 났다는 듯.
한편 같은 시각 나주희는 헷갈린다. 이승천과 이야기중이었는데 갑자기 황태용이 나타났다. 아마 그 직전 시간 나회장 사망사건에 아버지 황현도가 관여됐음을 알게 된 황태용이 그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승천의 집을 찾아 금수저로 밥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21년 작고한 효암학원의 채현국 이사장은 생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돈은 필요할 뿐이지 좋은 것일 수는 없다. 내가 가지면 남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돈”이라고 말했다.
“그 돈이 없으면 당신 곁엔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란 서영신의 멘트와 부합한다.
아울러 채 이사장은 “돈은 대단한 마약이라서 밥은 실컷 먹으면 맛이 없어지지만 돈은 많을수록 더 매력이 있어 끝없는 마력으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결국 그 마력에서 도피하기 위해 돈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덧붙였다.
채 이사장은 흥국광업을 운영하며 번 막대한 자산을 기탄없이 사회에 환원, 교육사업에 힘을 쏟아 ‘거리의 철학자’ ‘살아있는 천상병’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드라마 속 “주희야 어쩌지? 난 황태용도 아닌데 이승천도 아닌 것 같애”란 이승천의 독백은 돈의 마력에 미치기 직전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 보인다. 완전히 미치면 제2의 황현도가 되는 것이고.
“부모가 누군지,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사는 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지, 누구와 함께 사는 지도 중요한 거야.”고 말한 나주희(정채연 분)가 이승천을 돈의 마력에서 건져올릴 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 위해선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하는 간소한 삶을 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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