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일···민낯 드러난 국가 재난대응시스템
경찰-소방 공조시스템 '총체적 난맥'
1조 5000억 재난시스템 '무용지물'
"참사 막을 재난대응시스템 구축해야"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이태원 압사 참사가 5일로 일주일을 맞았다. 참사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 속에서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난맥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기 위한 국가적 재난대응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난상황 속 리더십 ‘실종’=이태원 압사 참사를 경고한 신고를 최초로 접수한 경찰의 초동대응은 아직까지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남아있다. 경찰은 참사 당시 11번의 112 긴급 신고를 받고도 이태원 참사를 막지 못했다. 현장 지휘관이었던 이임재 전 용산서장과 사고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의 1차 과실도 크지만 지휘부의 안일한 처신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의 최고 수장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인 29일 주말을 맞아 본가가 있는 충북 제천을 찾아 월악산을 등산한 뒤 인근 캠핑장에서 오후 11시 무렵 잠에 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가 오후 10시 15분에 발생한 만큼 윤 청장은 상황발생 이후 45분 동안 보고도 받지 못하고 사고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늑장 보고를 한 일선 현장 지휘관 이 전 서장은 ‘거짓보고’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이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건 오후 11시 5분이었다. 이는 참사 초기 이 전 서장이 10시 20분에 도착했다는 용산서의 상황일지와 시간대가 다르다. 이 전 서장은 초동대응 이 미흡했다는 비판과 함께 진상규명 조사까지 방해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 시내 전체의 치안·안전 상황을 주시하고 상부에 신속히 보고할 의무가 있는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었던 류 총경은 근무지를 1시간 24분 동안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지휘권을 보유하고 재난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행정안전부 역시 리더십 실종 상태였다.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이태원 참사 상황이 최초로 전파된 시각은 사고 발생 후 33분이 지난 오후 10시 48분이었다. 해당 내용이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전파된 시각은 또 30분이 흐른 오후 11시 20분이었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소방청 상황실에서 10시 53분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로 사고 내용을 통보, 국정상황실장이 11시 1분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 사실 보고했다. 대통령이 행안부 장관과 경찰 지휘부보다 사고 사실을 먼저 인지한 것은 국가의 재난안전 지휘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할 구역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직무유기도 큰 문제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박 구청장은 사고 위험성이 높은 이태원이 아닌 자신의 고향이자 자매도시인 경남 의령군 축제를 방문했다. 그는 오후 8시 20분쯤 귀가하며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 퀴논길만 둘러본 뒤 그대로 귀가해버렸다. 박 구청장이 참사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여 가까이 됐다.
◇재난대응체계 ‘총체적 부실’= 소방청이 4일 공개한 소방청-경찰청 공동대응 요청 내역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경찰청, 서울경찰청, 서울 용산경찰서 등 가능한 모든 기관에 경력 총동원을 사고발생 후 무려 15번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오후 10시18분 서울경찰청에 첫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이어 오후 10시56분에도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에, 소방청이 경찰청에 각각 다수 경력 투입과 경찰의 차량 통제 지원을 요구했다. 이어 오후 10시59분에는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 핫라인을 통해 경력 추가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소방당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경찰의 경력 투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오후 11시 이후에는 집중적으로 공동대응을 요구했다. 오후 11시16분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에, 오후 11시21분 소방청이 경찰청에 차량 및 인원 통제 지원을 요청했다. 1분 뒤인 오후 11시22분 소방청은 용산경찰서에도 가용 인원을 총동원해 현장을 통제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난대응의 두 축인 경찰과 소방당국 간의 공조체계가 원활하지 않으면서 희생자를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도 이태원 참사 때 무용지물이었다. 재난통신망은 재난 관련기관들이 재난 현장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다.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음성·사진·영상을 전송하며 의사결정권자의 효율적인 대응 지시와 관계기관 간 유기적 협업을 가능케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처음 논의됐으며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 필요성이 커졌다. 정부는 2018년부터 총 1조5000억 원을 들여 제닌통신망을 구축하기 시작해 지난해 완료했지만 정작 사고가 났을 때는 이를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참사 이후 최초 통화 시간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1분으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19 첫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15분보다 1시간26분 후에 작동했다. 최전선에 있는 용산재난상황실은 다음 날인 30일 오전 0시43분이 돼서야 재난통신망으로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역시 30일 오전 2시38분이 첫 통화였다.
각계각층에서는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기 위한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회장 이형민, 이하 의사회)는 지난 3일 “이번 이태원 참사는 안전의식의 부재와 안일한 대응으로 일어난 안타까운 재난”이라며 “지금은 최선을 다하여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무엇을 바꾸고 준비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이들은 운동경기, 공연, 스포츠 레저시설, 대중집회 등 다중의 인원이 모이는 곳에 의사를 포함한 의료지원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자격증 국가공무원 의무교육 및 일반인 교육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끝으로 의사회는 재난대응에 대한 국가 연구용역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안부는 주최자가 없는 축제에 대한 지자체의 안전관리 의무를 규정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의원 발의안과 연계해 세부 규정으로 '다중밀집 인파사고 안전관리 지침'을 제정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장 등 내부에서의 유사 다중밀집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연장 재난대응 매뉴얼 등을 보완할 방침이다. 또 핸드폰 위치정보, 지능형 폐쇄회로(CC)TV, 드론 등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실시간 다중 밀집도를 분석, 위험예측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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