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시간 만의 ‘기적 생환’ 만든 건 베테랑 광부의 경험이었다
산소용접기로 젖은 나무에 불붙여
베테랑 광부의 지혜와 경험이 만든 ‘기적’
매 순간 “살아나갈 수 있다” 외쳐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 발생 열흘째 노동자 2명이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고립된 지 221시간만에 칠흑같은 지하 갱도에서 직접 걸어서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베테랑 광부의 지혜와 경험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5일 오전 11시30분쯤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만난 A씨(62)의 아들 박근형씨(42)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는 안동병원 앞 한 약국에서 어머니 이모씨(63)의 혈압약을 사 오던 참이다.
박씨는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아버지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셨다”라며 취재진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아버지는 동료 B씨(56)와 지난달 26일 발생한 갱도 사고로 지하 190m 아래에 열흘간 갇혀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221시간이나 된다.
이들이 구출된 지난 4일 밤 11시3분. 기적 같은 순간은 우연이 아니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A씨는 갱도가 무너지는 순간 생존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광부다.
A씨는 B씨와 함께 갱도가 뚫린 곳이 없는지 탐색작업을 벌였다. 별다른 탈출로를 찾지 못하자 A씨는 갱도 내에서 비닐과 나무막대를 주워 비상용 텐트를 쳤다. 갱도 천장에서 지하수가 조금씩 떨어져 옷이 젖으면 저체온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바닥에는 패널을 깔아 몸이 젖지 않게 했다.
A씨의 아들 박씨는 “탈출로를 찾지 못한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신 것이 생존 도구를 찾는 일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산소용접기를 구했고, 불까지 피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A씨는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갱도 내에 나무들이 모두 물에 젖어 있어 불을 피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A씨가 구한 산소용접기는 구세주였다. 강력한 화력으로 젖은 나무에도 불을 붙일 수 있었다.
A씨는 B씨를 끊임없이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계속해 “○○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우리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며 힘을 불어넣어 줬다. B씨는 광부 일을 한 지 1년 남짓 됐지만 사고가 난 광산으로 온 지 4일밖에 안 됐다고 한다.
그런 A씨도 구조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아들이 어느 순간이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A씨는 ‘구조 바로 직전’이라고 했다.
아들 박씨는 “(아버지가) 끝까지 살아서 나가겠다고 먹었던 마음이 구조되기 몇 시간 전부터 ‘이제 안 되겠다. 포기해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며 “구조대의 노력으로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신 것과 다름없다. 정말 구조대원들에게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 광부의 희망이 점점 꺼져가고 있던 4일 밤, 구조대가 그들 눈 앞에 나타났다. 두 광부는 체온 유지를 위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커다란 암벽 덩어리를 깨고 나타난 그들의 동료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3~4일만 늦었어도 생명 위독했을 수도
사고 직전 챙겨 갔던 믹스커피 생존에 결정적
의료진은 두 광부의 구조작업이 3~4일만 늦었다면 생명이 위독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근육이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이 진행되기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병은 근육이 괴사하면서 세포 안에 있는 근육 성분이 혈액으로 방출되면서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방종효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은 “조금만 늦었어도 위독한 상황이었다”며 “두 분이 같이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챙겨간 커피믹스 30봉은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커피믹스에는 설탕과 프림 등이 있어 열량이 상당하다고 의료진은 설명했다.
방 과장은 “(두 분이) 커피믹스를 30봉지 처음에 갖고 계셨는데 구조가 이렇게 늦게 될지 모르고 3일에 걸쳐서 나눠서 식사 대용으로 드셨다고 한다”며 “3일 이후부터는 떨어지는 물로 아마 연명하신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일 내 두 분 모두 퇴원까지 할 수 있을 거로 예상한다”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평소에 상당히 체력이 좋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상호 경대연합외과 원장도 경향신문에 고립된 노동자가 있을 곳에 흐르는 지하수의 성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지하수에 나트륨이나 칼륨이 적당하게 들어 있어서 전해질 불균형만 오지 않으면 최소 2주는 버틸 수 있다”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콩팥이 체내 칼륨을 활용해 전해질 불균형을 막는다. 가족분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커피믹스의 프림에는 카제인나트륨이 포함돼 있다. 카제인나트륨은 우유의 단백질 성분인 카제인과 나트륨을 합성해 만든 물질이다.
경찰, 사고 발생 14시간 지나 신고한 업체 수사
노동당국, 해당 업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조사 중
이번 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한 아연채굴 광산의 제1 수직갱도 지하 46m 지점에서 갑자기 밀려 들어온 펄(진흙 토사)이 갱도 아래로 쏟아지며 발생했다.
이 펄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갱도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로 노동자 2명은 스스로 탈출했고, 3명은 업체 측에 의해 구조됐다. 업체 측은 밤샘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한 뒤 14시간이 지난 지난달 27일에서야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업체 관계자는 “밤샘 구조를 하다 보니 경황이 없었다”며 “갱도는 무전 등 무선 연결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해명했다.
이 업체는 지난 8월에도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노동당국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받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5일 3개 팀, 수사관 18명을 투입해 봉화 광산 사고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경찰은 먼저 지난달 26일 매몰사고 당시 탈출한 5명의 작업자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당시 상황 등 기초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후 광산업체 간부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점이 있다면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상’ 등이 검토될 수 있다”며 “신고 지연으로 인한 인과관계를 따져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 관계자들을 상대로도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또 이 업체에서 지난 8월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광산에서 갱도 바닥이 일부 무너지는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며 “같은 사례의 사고가 있었다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로 안전관리 미흡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군 대령, ‘딸뻘’ 소위 강간미수···“유혹당했다” 2차 가해
- 윤 대통령 공천 개입 의혹, 처벌 가능한가?
- [스경X이슈] ‘흑백요리사’ 출연진, 연이은 사생활 폭로…빚투→여성편력까지
- 윤 “김영선 해줘라”…다른 통화선 명태균 “지 마누라가 ‘오빠, 대통령 자격 있어?’ 그러는
- [단독]“가장 경쟁력 있었다”는 김영선···공관위 관계자 “이런 사람들 의원 되나 생각”
- [단독] ‘응급실 뺑뺑이’ 당한 유족, 정부엔 ‘전화 뺑뺑이’ 당했다
- 윤 대통령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 공천개입 정황 육성…노무현 땐 탄핵소추
- [단독] 윤 대통령 “공관위서 들고 와” 멘트에 윤상현 “나는 들고 간 적 없다” 부인
- [단독]새마을지도자 자녀 100명 ‘소개팅’에 수천만원 예산 편성한 구미시[지자체는 중매 중]
- “선수들 생각, 다르지 않았다”···안세영 손 100% 들어준 문체부, 협회엔 김택규 회장 해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