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는 기다림...모든 희망 꺼져갈 때 기적이 봉화 광산에 찾아왔다

박양수 2022. 11. 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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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이자 광산업체 작업 반장인 박모(62)씨는 안전모를 눌러쓰고 두꺼운 작업복을 갖춘 채 경북 봉화군 한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로 내려갔다.

광산 업계에 20여년 간 종사해온 그에게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갱도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광산업에 종사한 지 1년 정도 된 새내기 보조작업자 박모(56)씨가 그와 함께했다.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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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광부들 추위·배고픔·공포 이겨내고 고립 221시간 만에 극적 구조
챙겨간 커피 믹스와 물 10ℓ 나눠 먹고 모닥불 피워 체온 유지
모두의 희망이 희미해질 무렵 기적처럼 눈 앞에 등장한 두 사람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열흘째인 4일 오후 11시쯤 구조 당국은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생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생환한 고립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 [소방청 제공, 봉화=연합뉴스]
5일 경북 안동병원 응급실 앞에서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다가 구조된 작업반장 박모(62)씨의 아들 박근형(42)씨가 고립 당시 박씨가 입고 있던 작업복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봉화=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열흘째인 4일 오후 11시께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생환한 가운데 5일 새벽 안동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안동=연합뉴스]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열흘째인 4일 오후 11시께 구조 당국은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생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생환한 고립자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지냈던 갱도 내 모습. 추위를 견디기 위한 비닐막과 모닥불이 보인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봉화=연합뉴스]

광부이자 광산업체 작업 반장인 박모(62)씨는 안전모를 눌러쓰고 두꺼운 작업복을 갖춘 채 경북 봉화군 한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로 내려갔다. 광산 업계에 20여년 간 종사해온 그에게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갱도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광산업에 종사한 지 1년 정도 된 새내기 보조작업자 박모(56)씨가 그와 함께했다. 두 사람은 커피 믹스 가루와 절반 정도 채워진 20ℓ짜리 물통을 챙겼다.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이었다. 갱도 내로 수백t의 펄(토사)이 30여분 간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천지 속에 고립된 두 사람은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챙겨간 조명(랜턴)에 의지해 갱도 내부 여기저기를 헤맸지만, 출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급히 대피할 공간을 찾던 두 사람은 사고 당시 작업 장소 인근에 평소 광부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공간으로 몸을 옮겼다.

사방으로 연결된 갱도들이 일종의 '인터체인지' 형태로 엇갈린 이곳에 두 사람은 간이 대피소를 설치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는 평소 동료들이 사용하던 물품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하려고 패널을 깔았고 주변은 천막으로 덮었다. 급한 대로 은신처는 마련했지만 뒤이어 갈증과 허기, 공포가 찾아왔다. 때마침 챙겨간 커피 믹스 가루와 10ℓ 물이 그들에겐 묵숨줄이 됐다. 커피 믹스를 밥처럼 나눠 먹으며 가까스로 열흘을 버틸 수 있었다. 막판에는 그나마 챙겨간 물마저 바닥이 났지만, 이번에는 지하수를 모아 마시면서 희망을 끊을 놓지 않았다.

추위는 모닥불과 서로의 체온으로 막아내며 이겨냈다. 챙겨간 손목시계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 속절 없이 흘러갔다. 구조 대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이따금 들려오는 아득한 발파 소리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랜턴 조명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쓰기 위해 교대로 랜턴을 켜는 방법으로 시간을 벌기도 했다.

두 광부의 가족은 물론이고 모두의 희망이 희미해져 갈 무렵인 4일 오후 11시 3분 두 사람의 눈앞에 마침내 구조 대원들이 기적처럼 등장했다.

커다란 암벽 덩어리를 깨고 한 작업자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달려온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름을 부르거나 "수고했어"라고 외치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뒤따라온 119 특수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은 두 사람은 갱도를 스스로 걸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너질 줄 알았던 광부의 희망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사고 발생 열흘째, 시간으로는 만 22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자력으로 걸어서 탈출할 만큼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현장에 있던 광산업체 부소장은 "인간 승리"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광산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 찼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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