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세월호’ 이어 ‘이태원 참사’도 막지 못한 ‘재난안전법’의 운명은?

변문우 기자 2022. 11. 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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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수술만 여러 번…與野, 축제 주최 상관없이 안전계획 세우는데 공감대
임오경, ‘행안부 장관’ 역할 강조…“장관이 직접 실태 점검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방문, 헌화한 뒤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읽는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이태원 사고와 같이, 주최자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 적용할 인파사고 예방안전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습니다.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핼러윈 축제로 들떴던 지난 10월29일 토요일, 이태원에선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외신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악의 골목길 압사 사고로 11월4일까지 156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187명에 달한다. 시민들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충격에 휩싸였다.

참사의 전조는 사고 전날인 28일부터 이미 나타났다. 전날에도 112 신고 전화는 계속 울렸다. 하지만 핼러윈 축제에 대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사고 예방을 신경 쓰지 않았다. '책임 회피' 논란을 일으킨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의 해명처럼 축제의 '주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9일 핼러윈 축제가 시작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재난안전법이 역대급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는?

국가와 지자체는 재난 등 사고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다. 즉, 재난이나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라의 '의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을 명문화한 것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이다. 해당 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에 철저히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4년 처음 시행됐다.

재난안전법은 큰 국면을 맞을 때마다 탈바꿈을 거듭했다. 첫 개정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단행됐다. 당시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각 부처에 분산된 재난안전 총괄기능을 통합·강화하고, 재난 유형에 상공·해상사고도 포함하는 등 개정이 이뤄졌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전국을 강타했을 때도 이 법은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재난 금융지원의 대상과 방법을 다양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재난안전법을 여러 차례 손봤는데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축제의 주최 유무'가 허점으로 지목된다. 법 조항 제66조에 따르면, 대규모 축제의 주최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는 지자체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주최자가 없는 핼러윈 축제의 경우 경찰 배치 등 안전관리 조치가 미흡했고,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2일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데이 압사 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법 개정으로 '안전관리 대상' 범위 넓힌다

이러한 허점을 보완하고자 여야에선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에선 안철수, 김기현,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 등이 '크라우드 매니지먼트(군중 관리)' 입법 방향으로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행사 등으로 밀집된 사람들의 안전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겠단 계획이다. 또 야당에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자들은 모두 해당 개정안이 연내 처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주최가 불분명할 경우 지자체가 안전 관리 의무에서 벗어난다'는 제66조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대규모로 예상되는 행사의 경우 주최의 유무와 상관없이, 지자체장이 무조건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고 조치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현 의원실 관계자는 "법에 명시된 '지역 축제(대통령령으로 지정)'의 범위가 좁았다. '행사'도 해당되지 않는 등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했다"며 "이 범위를 보다 넓혀, 일정 규모 이상의 축제 행사들에 대해선 모두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의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오경 의원도 "기존 법의 빈틈을 의무로 규정하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기에 안철수 의원은 재난 발생 시 긴급구조 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에 대해서도 심리적 안정과 상담을 지원하는 내용(제65조 수정)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또 전봉민 의원은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군중 밀집도 데이터를 활용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것(제74조 수정)을 주장했다. 해당 데이터를 통해, 이번 이태원처럼 사고 발생이 예상되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위치신호데이터와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해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임오경 의원의 발의안은 행정안전부 장관의 역할과 조치에도 방점을 두고 있다. 임 의원은 행안부 장관이 지자체의 안전관리 조치 이행 실태를 직접 지도 점검해 재난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이번 참사 대응으로 질타 받은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다.

임 의원은 "최종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에게 상황이 전해지기까지 일련의 보고체계가 있고, 그 중간 단계엔 장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직보될 것이라면 장관의 역할은 왜 필요하냐"라며 "그런 의미에서 장관의 책임을 더욱 강하게 개정안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행안부 장관을 질책하는 내용은 야당 발의안에만 담겨 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은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안전법 개정안, 실효성은 얼마나?

법 개정을 통해 '제2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고윤기 변호사는 "축제의 주최자가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에도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한다는 조항이 꼭 필요했던 항목"이라며 "이런 원칙이 서면 다른 조항들도 이에 따라서 정비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 변호사는 전봉민 의원의 발의안에만 있는 '군중 밀집도 정보시스템 구축(제74조 수정)' 조항에 주목했다. 그는 해당 내용이 과거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6년 3월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의 비슷한 조항에 대해 "당사자 사후 통지 없는 통신자료 수집은 헌법 위배"라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판례가 있다. 고 변호사는 "정보주체의 기본권 침해가 없도록 조화롭게 법을 구성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축제'에 대한 안전관리 부분은 있지만, '집회'에 대한 안전관리 내용은 없는 점도 앞으로의 과제다. 집회 해산 및 시위자 '처벌'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로 존재하지만, 해당 법에서도 안전관리와 관련한 내용은 자세히 들어가 있지 않다. 이에 고 변호사는 "본법이 재난과 안전관리에 대한 기본법이라면, 집회 부분도 통합시키는 것도 고려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하며 "같은 지휘체계 아래 재난과 집회 안전관리가 이뤄지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지난 주 소개했던 '중대재해처벌법'의 이태원 참사 적용 여부에도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이번 참사는 중대재해 영역 중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이 법의 적용 대상인 '공중이용시설'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어, 전문가들은 해당 법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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