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개처럼' 끌던 모습에도, 부모는 피눈물 흘리며 눈 감을밖에 [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⑦
지적·뇌병변 중복장애아 부모 지수씨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생생하고, 아픈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저희 애는 중증인 데다 중병까지 있으니 (장애인 활동지원사) 연계만 돼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까다롭게 고르는 게 아니라, ‘중병’ ‘중증장애’ ‘신변처리 안 됨’이라는 설명만 들어가도 연락 자체가 안 와요.”
부산에 사는 박지수(가명·47세)씨는 지적·뇌병변 중복장애를 가진 첫째 아들 정환(가명·14)군과 그 아래 두 자녀를 두고 있다. 0세에 장애 진단을 받은 첫째 아들은 스스로 신변처리(배변·배뇨 조절)가 어려워 흡수용품(기저귀)을 사용해야 한다. 어릴 때는 보행이 가능했지만, 갈수록 몸이 굳어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혼자서는 외출이 어려워 실내에만 머물기 쉬운 중증장애인, '독박 돌봄'에 처하기 마련인 장애인 부모에게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소중한 제도다. 출근·통학 등 이동 지원부터 식사 도움, 위생관리 등 장애인 당사자가 일상을 영위하면서 필요한 돌봄을 제공해 준다. 공공에 의한 돌봄이 제공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사자와 보호자 모두 각자의 삶을 꾸려갈 여유와 힘을 찾게 된다.
그러나 정환군 같은 '최중증' 장애인에게는 활보쌤(활동보조 선생님·활동지원사)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다. 한 번은 지수씨가 1년여 동안 활동지원 기관 7곳에 문의 전화를 아무리 돌려도, 아들을 맡겠다는 활보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지수씨는 매칭(연계) 담당자인 코디네이터에게 '법적 권리인데도 왜 맡겠다는 분이 없냐'고 하소연했다.
"어머님은 천사를 만나셔야 될 것 같아요." 코디의 말에 지수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득해졌다고 한다. '아... 내가 (실제 근로 시간보다) 시간을 좀 더 쳐서 드리겠다고 해도, 일하는 시간도 편하실 때 맞춰드리고 퇴근도 일찍 보내드린다고 해도 안 구해지는 거구나. 우리 아들을 과연 누가 맡겠다고 할까.'
활동지원사를 구하려고 한 5년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지인 소개로 왔다가 한 달만 일하고 떠난 경우, 대놓고 '아들이 중증이니 시간을 더 쳐달라(실제 일한 시간보다 많이 일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비오는 날엔 휠체어를 탄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아시냐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던 경우 등등. 중증장애인 돌봄일수록 전문성과 숙련도가 요구되지만, 애초 일하겠다는 활동지원사를 만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어렵게 구한 활동지원사가 아들을 막 대하는 걸 보고도, 질끈 눈 감고 넘어갔던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저희(부모)가 보고 있는 걸 모르셨는지, 아이를 휠체어에 태우는 과정에서 막 끌더라고요. 남편이 그 장면을 딱 보고는 ‘개 끌 듯 끌더라’라고 속이 팍 상해서 말하더라고요. 그런데도 그때는 저희가 그분께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녔어요. 당장 어린 둘째, 셋째도 키워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해 봤자 못 구할 걸 아니까….”
최저임금 수준 받고 최증증 장애인 돌보라니
결국 지수씨는 친척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만 두고) 활보쌤을 결국엔 못 구해서 친척에게 교육받으시라고 부탁해서, 그분이 지금 아들을 돌봐주고 계시죠."
지수씨도 사실은 왜 활동지원사들이 아들을 맡지 않으려는지 잘 알고 있다.
“저만해도 같은 시간에 더 힘든 일을 하는데, 임금은 똑같이 받으면 봉사 정신이 아닌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근데 활동지원 업무가 봉사가 아니잖아요. 정당한 노동에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함에도 정부에서 이 점을 간과하시니 중증장애인과 가정에서 어려움을 떠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노동 강도를 고려해 ‘최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는 시간당 2,000원의 가산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금액 자체가 크지 않다 보니,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제공 대상 자체도 적어서, 현재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13만여 명 중 3%(4,000명)만 가산급여 대상자다.
올해 활동지원 수가는 시간당 1만4,805원이다. 일견 적지 않은 돈처럼 보이지만, 기관 운영비에 각종 수당을 제하면 활동지원사들은 거의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만을 받게 된다. 돌봄 노동자와 장애인 단체에서 '수가 현실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가산수당이 있다지만, 얼마 안 되고요. 수가 20~25%는 센터 운영비고, 여기서 세금까지 내면 수가의 거의 35%가 까이니까요. 남성분들이나 젊은 여성분들에겐 메리트가 적다 보니 (다른 돌봄 노동 분야처럼) 주로 중년 여성분들이 이 일을 많이 하시죠." 지수씨도 활동지원사들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며 말했다.
부모가 내 아이 활동지원사 안 되나
이에 '자녀가 부모의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가족요양급여를 받는 것처럼, 장애인 활동지원사도 가족이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관련기사▶중증 자폐 도우미 다들 기피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 주세요”: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110866794996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가족'에 의한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화 관련 의견들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급여화) 대찬성이죠. 노인 요양보호사 제도 보면 자기 부모님 해도 인정해 주잖아요. 웃기다고 생각해요. 내가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따도) 다른 애 케어를 해야 하고, 내 아이는 또 다른 지원사에게 맡긴다는 게요. 어차피 나도 경제활동을 할 것 같으면, 내가 가장 잘 아는 내 아이 돌보는 게 좋지 않나요?”(경남의 한 부모)
“저도 가족만큼 아이를 잘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제도를 악용해) 일어날 수 있는 방임의 문제가 있어서 저는 부모의 활동지원 급여화엔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발달장애에 대한 전문성 가진 인력을 양성해서 공공에서 맡아야 하죠. 때로 장애인 당사자가 자립을 하고 싶어도, 그 앞으로 나오는 '장애 연금'으로 생활하는 부모가 (자립을) 반대해서 못 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부모가 하면) 제도 취지에 맞지 않게 집 안에서만 돌봄을 제공하는 정도고, 실질적인 외부 활동은 못 하게 될 수도 있고요.”(부산의 한 부모)
실제로 올해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발달·정신장애인의 경우 가족도 활동지원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독립적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할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며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하에 자기결정권이 심각하게 통제될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지수씨 생각은 이렇다. “바우처 취지를 생각하면 (부모 제한이) 이해는 가요. 전문 인력을 교육해서 장애인 가구에 지원하고, 주 양육자는 휴식을 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도록 하는 구조인 거죠. 이해는 되는데, 문제는 현실에서 (활동지원) 해 줄 사람이 있어야죠... 장기적으로는 본래 취지를 살려야겠지만,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부모에게도 활동지원 인력 기회를 제공해 인력 수급의 어려움과 공백을 메꾸어야 한다고 봐요. 장애인 부모, 친인척, 활동지원사 모두 자격을 갖게 되면 (서비스 공급이 늘어) 서비스 경쟁도 생기고, (공급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요.”
어느 날 센터에서도 '나가달라'고 했다
정환군은 거의 일평생인 12, 13년을 재활센터, 발달재활치료 기관에 다녔다. 작업치료, 물리치료, 감각통합 치료, 언어치료, 섭식 치료 등등.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생후 7개월 때부터 주5일로 치료를 받다보니, ‘병원 직원’이란 소리까지 들었죠. 대학병원 치료실도 다니고 사설 센터도 다니고. 10년 전에도 사설 기관은 비용이 한 타임(40~60분)에 4만5,000원 막 이랬어요.”
돈을 쏟아부으며 아들 재활에 전념했지만,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니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저희 애가 중증이라 힘들기도 하고,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은 많으니까요. 요즘엔 언어 지연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아이들도 많이 센터에 오거든요. 그러면 이제 저희가 밀리는 거예요. 심지어 발달 전문 병원에서도 그랬어요. ‘얘는 이제 (치료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하십시오’ 이러더라고요. 한 시간을 붙잡고 사정했는데도 결국엔 쫓겨났죠.”
다른 부모들처럼, 지수씨도 ‘중증장애인의 설움’을 호소했다. “자폐 성향이 심해서 행동문제가 있거나, 신변처리가 어려운 아이들은 '중증'으로 같이 묶이거든요. 센터든 활동지원사든 이용하기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죠. 기관 입장도 이해는 가요. 인력을 많이 쓸 수 없고, 안전사고 등을 고려하면 중증장애인을 받기 어렵겠죠.그래서 어떤 장애유형이든 중증일수록 더 힘들어요. 중증이면 갈 곳이 없어요.”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관도 서울시와 광주광역시에만 있는 정도다. “서울에도 이제 겨우 막 생긴 상황이잖아요. 지방은 완전히 속수무책이죠.”
"맺힌 게 많아서" 하고 싶은 말이 많던 지수씨
지수씨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전부 4,000자에 달하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보내며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정의 어려움과 현실에 대해 호소했다. “너무 많이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맺힌 게 많아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법과 정책을 만드는 공직자, 그리고 시민들에게도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절절하고 생생한 문자들 중 일부 내용을 추려서 담는다.
정환이 엄마 지수씨가 보낸 문자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꼭 필요한 서비스지만 개편이 꼭 필요합니다. (전문 인력과 그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부모에게도 활동지원 인력으로 일할 기회를 줘서 인력 수급의 어려움과 (돌봄) 공백을 메꾸고, 활동지원서비스에도 경쟁력을 불어넣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지원사 급여가 단순 (근로) 시간으로 책정될 게 아니라 (의료 행위와 같은) 행위수가제 같은 제도가 마련돼서 보다 전문화·세분화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저는 장애 아동인 첫째 출산 후 아래로 두 명의 아이를 더 낳았잖아요. 자녀 양육으로 첫째에 대한 돌봄 공백이 생겼지만,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등급평가 기준에서는 이런 저의 상황(주 보호자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만 6세부터 65세까지 거의 전 연령에 통틀어 제공되는 서비스인데도, 연령에 따른 특수성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문제행동이 심한 발달장애인의 경우엔 문제행동 유발 상황에 대한 이해와 조절 능력 등 전문성이 요구됨에도, 대개는 ‘아이가 문제다’라는 식의 하소연만 많이 하십니다. 부모가 직접 (활동지원사에 대해) 교육을 할 수도 없고 참 어렵네요.”
“놀이·여가·문화예술 등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이 없다 보니 장애 청소년은 언제나 ‘고침’의 대상으로만 남게 됩니다.”
“(누구나 필요하면 받을 수 있어야 할) 발달재활 치료도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차등적으로 기회가 제공되고, 경제적·인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에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현실입니다.”
“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 선천적 장애인보다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장애 정책은 모두를 위한 정책이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시설은 영유아나 노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경우에도 적용하기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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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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