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주일] '위험한 줄 알지만 어쩌겠나'…오늘도 '지옥철'을 탄다
강남·홍대 금요일 밤 인파 몰려…클럽 앞 100m 대기줄도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정성조 기자 = 한 주전 서울 시내 한복판 이태원에서 156명이 압사하는 믿기 힘든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밀도 속에서 무감각하게 살아온 서울 시민들은 그날 이후 일상에 도사린 과밀의 위험을 되새기게 됐다.
그러나 일상의 관성은 무섭다.
만원 지하철 속 "불편하던 과밀, 이제 위험 느껴"
4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버스터미널 역. 언제나 그렇듯 퇴근길 지하철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열차가 도착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이들의 절반밖에 타지 못했다. 겨우 찾은 좁은 틈을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가자 "아이고"라는 짜증섞인 한숨이 튀어나왔다.
지하철 안은 평소의 '지옥철' 그대로였다. 승객으로 꽉 들어차 처음 잡은 자세 그대로 동상처럼 서 있어야 했다. 수은주가 0도 가까이 떨어진 쌀쌀한 날씨였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있으니 등에서 땀이 다 흘러내렸다. 콩나물시루 같은 좁은 공간에서 마스크까지 쓴 탓에 호흡이 불편해졌고 정신도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환승역인 동작역에 다다라 "내릴게요"라고 소리친 뒤 사람들을 밀쳐내고 겨우 빠져나왔다.
이태원 참사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시민들의 인식은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이태원에서도 체구가 작은 여성이 죽었잖아요. 실제로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만원 지하철이 예전보다 무서워져 더 조심하게 됐어요."
아이의 손을 잡고 열차를 기다리던 김유진(38) 씨는 급행열차가 도착했지만 타지 않았다. 아이가 사람이 많은 열차에 탔다가 아이가 다치거나 숨을 못 쉴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지옥철 노선'으로 불리는 신분당선 미금역∼판교역을 이용하는 회사원 공모(29) 씨는 참사 이후 출퇴근이 겁난다고 했다.
그는 "열차에 사람이 꽉 차 있는 상태로 문이 열리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봤던 이태원 사고 현장 영상이 생각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출퇴근 길에 열차 2∼3대를 그냥 보내고 승객이 그나마 적은 열차에 기다려 올라탄다. 출퇴근 시간도 자연스럽게 15∼20분 늦어졌지만 이태원 참사를 보고 속도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참사 이후 '과밀'대한 생각이 크게 바뀐 것 같다"며 "예전에는 '불편하다' 정도로 생각했던 게 참사 이후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참사 난들 바뀌겠나"…강남·홍대 인파 북적거려
생각은 바뀌었지만 실제 현실에선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이도 있다.
이날 퇴근 시간 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서 만난 20대 여성 백모 씨는 "오늘 아침에도 봉천역에서 서울대입구역으로 가는 길에 만원 지하철이 갑자기 멈춰 서며 지지할 곳이 없어 넘어졌다"며 "참사 이후 달라진 게 없구나 싶어서 허탈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김모(29) 씨는 "시민이 참사에서 느끼는 교훈이라면 '사람 몰리는 곳에 가지 말자' 정도일 텐데, 회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없던 지하철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면 위험한데…'라고 생각은 해도 사람이 몰리는 그 지하철에 타야 하니 무력감도 든다"고 토로했다.
승객으로 가득 찬 지하철을 그대로 보낸 50대 남성 강모 씨는 "방금 봤듯이 과밀은 바뀌지 않는다"며 "출퇴근 인파를 보며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지만 지하철을 타야 할 사람들은 타야 하니 당장 바뀌는 것은 없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이태원처럼 젊은층의 '불금 성지'로 여겨진 강남역이나 홍대입구역 주변도 여느 때처럼 인파로 북적였다.
감성주점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고, 일부 인기 클럽 앞엔 입장 대기 줄이 100m가량 늘어졌다.
주점 종업원 최모(24) 씨는 "손님 숫자는 보통의 주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바쁘다"며 "밤이 깊어질수록 더 늘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역 클럽 앞에서 입장 차례를 기다리던 이모(23) 씨는 "(참사 이후) 사람이 많거나 어두운 곳은 피하게 되기는 한다"면서도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클럽에 가자고 해 망설이다 오게 됐다"고 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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