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주일] 하얀 국화 뒤덮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오보람 2022. 11. 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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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과 흐느낌, 기도하는 낮은 소리.

그날 밤 달뜬 청춘의 열기를 끊임없이 쏟아냈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는 그 골목을 향해 무심히 열려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서준(35)씨는 지난달 31일부터 1번 출구 앞에서 추모객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있다.

1번 출구를 나서면 바로 이어지는 해밀톤호텔 옆 그 골목길은 주황색 폴리스라인으로 단단히 막혀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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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으면"…일주일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
112신고 전화 대수롭지 않게 넘긴 공권력에 시민들 분노
이태원역 1번 출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이승연 기자 = 탄식과 흐느낌, 기도하는 낮은 소리.

그날 밤 달뜬 청춘의 열기를 끊임없이 쏟아냈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는 그 골목을 향해 무심히 열려있다.

핼러윈을 앞둔 지난달 29일 밤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믿기 힘든 참극의 현장인 이곳은 이튿날부터 한송이씩 쌓인 국화가 한주만에 수백, 수천이 돼 아예 꽃밭이 됐다.

"희생자 중에 평소 안부를 묻고 지내던 친구도 있어요. 다 똑같은 심정이죠. 슬프고… 안타까워요."

꽃집을 운영하는 김서준(35)씨는 지난달 31일부터 1번 출구 앞에서 추모객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있다. 이제까지 2천800송이를 나눠줬다고 한다.

1번 출구 주변 바닥과 벽은 물론 출구를 표시하는 기둥까지 포스트잇이 빼곡하다.

"네 친구라 행복했어.", "이젠 가슴에 묻고 살려고 해." 일주일전 이곳에서 떠난 이들을 기억하려는 글귀에 걸음을 멈춘 행인들도 눈시울을 붉힌다.

"제가 한 심폐소생술이 아프진 않으셨나요.", "살아있다는 사실이 몹시도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에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

살아남은 이의 자책과 미안함을 담기에 손바닥만한 포스트잇은 충분할 리 없다.

희생자들이 생전에 좋아했을 만한 간식과 술, 담배를 놓고 가는 이도 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1번 출구를 나서면 바로 이어지는 해밀톤호텔 옆 그 골목길은 주황색 폴리스라인으로 단단히 막혀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비극의 현장은 도시의 여느 뒷골목처럼 쓰레기만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멀찍이 골목을 지켜보던 이들은 "이렇게 좁은 곳에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들이 충격을 벗어나기엔 일주일은 너무 짧다.

이태원동에 사는 주부 백모(62) 씨는 사고 다음 날부터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백씨는 4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2022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게 된 것인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다 꿈 같고, 꿈이었으면 좋겠다"며 흐느꼈다.

주민 송모(31) 씨는 "사고 이후 사망자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고 오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 번째 조문을 온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슬픔은 일주일이 흐르면서 서서히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경찰이 살려달라는 급박한 112 신고 전화를 받고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뒤늦게 보고받은 지휘부도 허둥댄 사실이 속속 알려지면서다.

직장인 김모(43) 씨는 "150명 넘는 국민이 생사를 오가는 동안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김모(23) 씨도 "사람들이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실제로 일이 터지기 전에는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며 "이번 일은 '전에도 별일 없었으니 이번에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윗사람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슬픔만 남은 곳 [연합뉴스 자료사진]

용산구청은 우선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는 5일까지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을 유지할 예정이다.

경찰은 유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그날 이태원역 물품 보관함에 희생자가 맡겨두고 찾아가지 못한 물품이 있는지 확인했다. 주인을 영영 찾지 못할 그 물품은 분실물이 아닌 안타까운 유품으로 남게 됐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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