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신고에 20년 전 도면…비상수칙 지킨 건 매몰 광부들뿐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붕괴로 지하 190m 갱도에 갇혔던 광부 2명이 지난 4일 밤 11시3분 구조됐다. 사고가 발생한지 221시간 만이었다. 반드시 살아서 나가겠다는 광부들의 굳은 의지, 이들의 생환을 염원했던 가족과 국민의 간절함이 어우러져 빚어낸 기적이었다. 하지만 사고발생부터 구조까지 9일 동안의 상황은 은폐, 무능, 판단 착오의 연속이었다. 엄정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노후 갱도…안전사고 빈발
이번 사고는 안전에 대한 무감각과 부실의 누적이 빚어낸 인재였다.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금호광업소에서 제1수직갱도(수갱)가 붕괴된 건 지난달 26일 저녁 6시쯤이다. 제1수갱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80년 이상된 노후 갱도로, 자연 풍화로 내부 암석이 부서지고 수시로 흙이 흘러내리는 상황이었다.
이 광산에서 아연을 채굴해온 성안엔엠피코리아(대표이사 김태환)에 대해 산업통산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는 지난해 12월 “제1수갱 인근 폐갱도 지표관통부는 침하 및 붕괴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며 “일체의 갱내 충전 작업을 중지하고 인원 및 차량의 접근을 통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수갱에선 지난 8월29일 갱도 내 사고로 작업하던 광부 2명이 매몰돼 1명이 숨졌다. 이번에 붕괴사고가 난 그 수직갱도다.
성안엔엠피코리아가 산자부의 안전명령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근 광물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오르자 광산업체들은 안전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채굴량 확대에 사활을 걸어온 추세다. 산자부와 경찰의 엄정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왜 119신고 없이 자체 구조했나…커지는 은폐 의혹
붕괴사고 발생 직후 초기대응도 부실 투성이였다. 사고 당시 지하 190m 갱도 안에서는 광부 7명이 땅을 파고 바닥에 레일을 설치하는 굴진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뒤 작업자 2명은 2시간 만에 자력으로 탈출했고, 3명은 5시간 만에 구조됐다. 그러나 업체는 119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다가, 결국 조장 박아무개(62)씨와 보조작업자 박아무개(56)씨 등 광부 2명을 구조하는 데 실패했다.
업체가 119에 신고한 것은 다음날 아침 8시34분으로, 사고가 나고 14시간30분이 지난 뒤였다. 업체는 “처음에는 자체적으로 구조가 가능하다고 봤다. 밤샘 구조를 하다 보니 신고할 경황이 없었다”고 늑장신고를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 이미 같은 갱도에서 인명사고를 낸 회사가 사고 재발로 처벌이 무거워지는 것을 피하려고 사건 은폐를 기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하다.
20년 전 도면 보고 이틀간 엉뚱한 곳 구멍 뚫어
뒤늦게 시작된 당국의 구조 작업도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작업은 사고가 난 제1수갱에 인접한 제2수갱에서 땅을 파고 접근해 제1수갱에 갇혀있는 2명을 구조하는 작업과, 구조 이전에 이들에게 식수와 의료품 등을 공급하기 위해 제1수갱에 수직으로 구멍을 뚫는 시추 작업을 동시에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시추 작업에 돌입한지 이틀째인 31일, 매몰 광부들의 대피 추정 지점까지 시추공 2개를 뚫었지만, 광부들은커녕 빈 공간도 찾지 못했다. 시추작업에 활용한 업체 쪽의 현장 도면이 내부 구조가 변경되기 전인 20여년 전 만들어진 도면이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엉뚱한 곳에 구멍을 뚫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일 진행한 실측 결과 도면과 지금의 갱도 구조에는 25~30m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측 도면을 이용해 시추 작업이 재개됐고 시추공의 수도 12개로 늘렸다. 그리고 3일 새벽 처음으로 대피 추정장소까지 지름 76㎜의 구멍을 뚫는 데 성공했다. 이틀이면 가능한 작업에 닷새의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비상 수칙 지킨 건 매몰된 베테랑 광부들 뿐
광산 붕괴사고가 발생하자 고립된 광부 2명은 애초 작업지점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공간으로 대피했다.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대피해서 공간을 확보하고 대기하라는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이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물에 젖은 바닥에 나무 판자를 깔아 공간을 띄운 뒤 천막처럼 비닐을 둘러치고 마른 나무를 찾아 모닥불을 피웠다. 모두 갱도 안에서 찾은 것들이었다. 음식이 없었지만, 갱도에 들어갈 때 가져간 커피믹스와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며 버텼다.
방장석 중앙119구조본부 충청·강원 특수구조대 구조팀장은 “토사가 밀려와도 경험과 매뉴얼을 토대로 침착하게 대피해서 안전하게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두 분은 서로 어깨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구조대의) 발파 소리를 들었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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