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독재 비판하다 파면… 자유파 법학자 쉬장룬 전 칭화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4회>
“수십 년 쌓은 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 적중한 쉬장룬 교수의 정세 예측
“수십 년간 쌓은 재산을, 많든 적든,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법이 정하는 재산 관계는 입법을 통해 선포한 바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실권을 가진 인물에 밉보이면 기업이 파산하고 집안이 파산하고 사람이 망하는 일은 없는가? 최근 몇 년간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확실해져서 아래든, 위든 모두가 공황(恐慌) 상태다.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 부류는 개혁개방의 큰 물결에서 돈을 모아 성공한 인사들이다. 부자들의 대규모 이민 현상은 이에 대한 대응책이다.”
2018년 7월 말 칭화(淸華)대학 법학원의 저명한 법학자 쉬장룬(許章潤, 1962-) 교수는 “우리 앞의 우려와 기대”라는 시론을 발표했다. 인민대표대회가 헌법에 명기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삭제하고 시진핑 종신 집권의 길을 연 지 넉 달 된 시점이었다. 위의 인용문은 이 시론의 앞머리에 나온다. 쉬 교수는 “헌정 민주”의 핵심에 경제적 자유가 있음을 강조한다.
중국 헌법 총강 제12조는 “사회주의의 공공 재산은 신성하고 침범할 수 없다”이고, 제13조는 “공민의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침범받지 않는다”이다. 사회주의의 공공 재산이 공민의 사유재산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헌법적 근거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사회주의 중국에서 한 지식인이 공개적으로 사유재산권 보장을 강조하기란 쉽지 않다.
쉬 교수는 정치적 탄압의 위험을 무릅쓰고 재산권을 위협하는 시진핑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1950-60년대 중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사유재산권을 상실한 인간은 모든 기본권을 다 빼앗겼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쉬 교수는 분명 이후 전개될 중국 정치의 강경화를 내다보고 있었다. 시진핑 정권은 방역 독재로 공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부자들은 서둘러 중국을 뜨기 위해 이민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통치력 칭송하는 ‘중국 전문가’들
“중국 전문가” 중엔 중국공산당의 통치력을 극구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 추진 과정에서 중공 중앙은 단 한 번의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시진핑 정권 출범 이전 중국 밖의 “중국 전문가” 사이에선 중공 중앙의 영도자들이 면밀한 토론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합리적 집단지도체제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었다.
흔히 그 근거로 1978년 불과 156달러 정도였던 중국의 1인당 GDP가 2022년 1만1800달러로 급증했다는 사실을 든다. 주먹구구로 100배 성장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44년에 걸친 75.6배의 성장이다. 같은 기간 전 세계 1인당 평균 GDP는 2022달러(1978)에서 1만2263달러(2022)로 6배 증가했는데, 중국은 그보다 12.6배 증가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8억 인구를 빈곤의 나락에서 건지고, 그 결과 전 세계 빈곤층의 75%를 줄인, 세계사에 드문 탈빈(脫貧)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중공 중앙의 지도력을 특별히 칭송할 필요는 없다. 중국경제가 44년에 걸쳐서 75.6배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78년 무렵 중국경제가 파산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지극히 낮았기 때문에 천문학적 성장이 가능했다.
가령 한국을 돌아보면, 6.25전쟁을 치르고 휴전협정을 맺은 1953년 1인당 GDP는 67달러였는데 1997년엔 1만2398달러로 44년 동안 185배 급증했다.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엔 158달러였고, 2004년엔 1만6496달러로 104배나 증가했다. 반면 1977년엔 1056달러였고, 2021년엔 3만4758달러로 32.9배 증가했다. 역시 대단한 성장률이지만, 출발점이 이미 상당히 높아졌기에 그전보다 성장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1978년 중국 1인당 GDP는 한국의 1/9 정도였는데, 2020년대 한국의 1/3 이상으로 성장했다고 보면, 그 과정이 보다 쉽게 이해된다. 그 4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같은 시기 중국은 저개발 후진국의 굴레를 벗고 중진국의 “샤오캉(小康) 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드는 중국...반시장 정책이 지속 성장 가로막아
물론 중국은 14억 5천만 인구의 대륙 국가이기에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한국은 개도국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은 최초의 나라다. 그만큼 선진국 진입의 길은 좁고 험하다. 과연 중국이 앞으로도 초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해서 개도국의 한계를 벗어나 한국처럼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할 수 있을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 정권이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시장경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중국은 곧 중간-소득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총서기의 반시장 정책이 중국경제의 지속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특유의 “명령 및 통제”를 통해서 경제를 망쳤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후에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다. 무엇보다 미국 주도 세계 경제와의 공조 체제를 이룬 결과였다. 미·중 무역 전쟁 이후 경제적 공생 관계에 금이 가자 중국은 다시금 중국식 현대화를 외치며 이념 공세와 정치 탄압의 고삐를 바싹 당기고 있다.
지난 제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미국 모델과는 전혀 다른 “중국 특색의 현대화”를 통해 향후 30년에 걸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편으론 교육과 과학의 혁신을 통해 나라를 일으킨다는 이른바 “교과흥국(敎科興國)”의 비전을 제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민간 기업과 경제적 부유층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예고하고 있다.
시진핑 정권은 이미 민간 기업에 공익사업을 맡기고 기부금을 내라 압박하기 시작했다. 법정 세금을 완납한 기업에 별도의 세금 폭탄을 부가하고 있는 셈이다. “공동부유(共同富裕)”란 결국 기업에서 강제로 거금을 갹출해서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사회주의적 재분배의 발상이다.
가중되는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위기 탓인가? 시진핑 정권의 경제정책은 점점 더 경화(硬化)되고 있다. 압박에 못 이긴 부자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는 조짐을 보이자 당국은 출국을 막기 위해 여권 갱신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비자 발급에 필요한 출생이나 결혼 문서 발급까지 지연하기도 한다. 과연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쉬장룬 교수의 시진핑 정권 비판 “여덟 가지 우려가 현실화”
다시 2018년 시론 “우리 앞의 우려와 기대”를 살펴 보자. 이 글에서 쉬장룬 교수는 “4항 기본노선”, “여덟 가지 우려”와 “여덟 가지 기대”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4항 기본노선”은 1) 기본 치안 유지, 3) 사유재산권과 재부(財富) 추구권 보장, 2) 시민 생활의 자유 용인, 4) 정치 임기제의 실행이다.
“여덟 가지 우려”는 1) 개인의 재산권 박탈, 2) 경제 건설 대신 권위주의 정치의 부활, 3) 계급투쟁 고양, 4) 쇄국정책의 강화, 5) 민생 파탄의 대외 원조 강화, 6) 지식인 탄압, 7) 군비경쟁 강화 및 전쟁 발발 가능성, 8) 개혁개방의 폐기와 전체주의적 사회 통제의 강화이다.
“여덟 가지 기대”는 1) 일대일로 사업 같은 비실용적 해외투자 폐기, 2) 외교적 사치 축소, 3) 당 간부의 비밀 특권 폐지, 4) 특권 계급 특별 대우 폐지, 5) 정부 관원 재산 공개, 6) 시진핑 인격숭배 폐지, 7) 국가주석 임기제 부활, 8) 1989년 64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및 재평가 등 전반적 국가 개혁의 청사진이다.
요컨대 쉬 교수는 시진핑 정권의 복고적 권위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표현의 자유 등 중국 공민의 기본 인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2021년 7월 24일, 쉬 교수는 그보다 3년 앞서 자신이 지적했던 여덟 가지 우려가 모두 현실이 됐으며, 여덟 가지 기대는 요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고 썼다.
이 글이 인터넷을 타고 널리 퍼져나가자 2019년 3월 칭화대학은 쉬 교수의 직무를 전면 중단시키고 조사에 착수했다. 쉬 교수는 더는 강의도 할 수 없고, 연구도 할 수 없게 됐다. 2019년 4월 쉬 교수에게 출국 금지령이 떨어졌다. 쉬 교수는 굽히지 않고 2020년 2월 중공 정부의 방역 독재를 비판하는 문어체의 격문 “분노의 인민은 다시 두려울 게 없다”를 발표했다.
곧 그의 위챗 계정이 삭제되고,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2020년 7월 4일 쉬 교수는 자택에서 세 명의 공안 요원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중국 공안은 쉬 교수에 매춘 혐의를 걸었지만, 비판적 지식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판에 박힌 수법이다. 이 사건이 해외 유수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제적 압박이 들어가자 중공 정부는 쉬 교수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쉬 교수는 8월 20년간 강의해온 칭화대학에서 해고되면서 34년의 교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2020년 8월 13일 쉬 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 페어뱅크 중국학 센터에서 방문학자 초청장을 받았다. 칭화대학에서 해고 통지가 보낸 후 며칠 안 지난 시점이었다. 쉬 교수는 지금도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상소와 항의, 중국 지성사의 오랜 전통 이어져
전근대 중국의 사대부 지식인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더 좋은 제도와 법제를 제안하는 오랜 상소(上疏)와 항의(抗議)의 전통이 이어갔다. 사대부 지식인들은 상소문 집필을 통해서 정부의 부패와 오류를 규탄하고, 문제점을 파헤치고,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멀리 선진 시대까지 소급되는 상소와 항의의 전통을 살펴보면, 전근대 사대부들은 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보다 더 큰 사상적 자유와 표현의 권리를 누렸다.
물론 사상·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으나 오랜 전통과 관행이 실질적으로 전통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상소문을 써서 황제에게 진상했고, 강직한 유자(儒子)의 훌륭한 상소문들은 지성계에서 널리 읽혔다. 중화 제국이 2천 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오랜 전통은 바로 오늘날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국의 지식인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1950-60년대 마오쩌둥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비판한 철학자 량수밍(梁漱溟, 1893-1988)이 대표적이다. 신유가 철학과 유식(唯識) 불교까지 섭렵한 량수밍은 청년기 농촌 재건 운동에 헌신했던 실천가였다. 건국 초기 그는 마오쩌둥에게 정부의 문제점에 관해 직언했고 마오쩌둥도 처음엔 그를 쟁우(諍友)라 칭했다. 이후 그의 비판이 심해지자 마오쩌둥은 직접 그를 비판해서 파면했다. 2018년 1월 18일, 쉬장룬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량수밍에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량수밍 선생은 창생(蒼生, 민중)을 일으키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그와 같은 진정한 유자(儒子)는 유가 학설을 실천에 옮긴다. 몸소 역행함으로써. 그들은 일종의 종교적인 구세(救世)의 열정을 보인다. 오늘날도 신유가(新儒家)의 학자들이 나와서 어디 가나 나도 유자라 말하고 있지만, 말하고 나면 곧바로 가라오케에 노래하러 간다. 량수밍 선생은 가정, 국가, 천하를 관통하는 이 유가 사상을 통해서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한 거대한 비전, 안목이 없이 시끄럽게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문제다.”
2020년 5월 쉬 교수는 뉴욕의 보덴 출판사(Boden Books)를 통해서 2018년의 기록을 담은 <<무술육장(戊戌六章)>>을 발표했다. 2021년 8월 쉬 교수는 같은 출판사에서 코비드 19 방역의 광풍이 전 세계를 휩쓸던 2020 경자년에 집필한 열 편의 서간문을 모아서 <<경자십차(庚子十箚)>>를 출판했다. 이제 쉬 교수의 유려한 고문체 문장 속에 담긴 통렬한 시대 비판에 귀 기울여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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