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때 죽거나 다친 이들보다 그 이후 자살 시도한 이들이 더 많아"
[편집자주] '80년 5월'은 현재 진행형이다. 40여년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 모를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한 피해자들도 많다. 최근 이들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5·18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정신적 손해 배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검한다.
(광주=뉴스1) 박준배 이수민 기자 = "더 이상 동지들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를 이끄는 황일봉 회장(65)은 4일 '동지'들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5·18민주유공자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하다고 했다. 정신적 손해 배상도 필요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열흘간의 항쟁 기간에 죽거나 다친 사람보다 그 이후 자살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유공자가 더 많다"며 "정신적 손해 배상을 더는 미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5·18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은 4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채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려 온 이광영씨는 지난해 11월23일, 5·18 광주학살 최고 책임자인 전두환이 사망한 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A4 한 장짜리 유서에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의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바, 오로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은 내가 지고 떠나감이다'라고 적었다.
황 회장은 "유공자들 사이에선 '자살 시도를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국가폭력 희생자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1970년대 전남고등학교에 재학 중 유신반대 활동을 하다가 제적됐고 당시 사찰계(정보과) 형사들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이후 은사였던 문병란 시인이 황 회장을 양아들로 거둬줬다. 문병란 시인은 당시 광주에서 1호 반체제 인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1호 반체제 인사이다 보니 제가 선생님 보호한다고 붙어 다니고 그랬는데, 자연스럽게 양아들이 된 거죠."
80년 5·18 당시 황 회장은 동구 금남로 광주YWCA 건물 3층에 있던 양서협동조합에서 총무로 일했다.
양서협동조합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교육장이었다. 사회과학서적을 유통해 토론과 교육을 하고 시민들의 민주 의식을 높였다. 노동과 농촌문제도 공부했다.
80년 5월19일이었다. 전남도청 부근에 있던 시민과 학생들은 계엄군이 몰려오자 광주YWCA가 있던 골목길로 피신했다.
시민들과 학생들을 추적하던 계엄군은 YWCA 건물로 쳐들어왔다. 3층까지 들어온 군인들은 황일봉 회장을 보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학생처럼 보이니까 그냥 이유 없이 무지하게 구타하고 발로 차는 거예요. 계단을 굴러 1층까지 내려왔는데 정신이 없었죠."
그때 건너편 무등고시학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되느냐"고 야유했다. 그러자 계엄군은 달려가서 학생들을 토끼몰이식으로 때렸다.
죽도록 폭행당하던 황 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조아라 광주YWCA 회장의 도움으로 연행만은 면했다.
"조아라 회장님이 계엄군 대위에게 '우리 직원이다. 끌고 가지 말라'고 말리고 사정해서 연행은 안 됐어요. 온몸이 부어서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후에 광주 소식을 외부에 전달하는 일을 했어요."
5·18 이후 은사인 문병란 시인의 도움으로 전남대를 졸업한 황 회장은 1991년 지방선거에서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광주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엔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광주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재선했다.
이후 정치권을 떠나 5·18 단체에서 활동했다.
지난 2월 공법단체 부상자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후 곧장 피해자들의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을 추진했다.
"80년 5월 이후 42년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에 밀려 여전히 직접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와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실태조사를 하고 국가 폭력에 대한 손해 배상이 절실했죠."
황 회장은 5·18 유공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중 55.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특히 당시 사건으로 부상을 입어 후천적 신체장애를 얻게 된 피해자로 구성된 '부상자회' 회원들의 트라우마는 더 심각했다.
"80년 이후로 10여 년간 보상은커녕 폭도로 몰렸어요. 1990년 광주시로부터 보상을 받았지만 그때도 '일시적 보상금'에 불과했죠. 유공자들은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결과로 지금까지도 경제적 빈곤과 치유 불가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5·18피해자들은 술과 약에 의지해 국가폭력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사회적 편견, 왜곡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지 못했다.
황 회장은 "국가폭력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50여 명의 동지들과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에 대해 여당과 야당, 사법부가 관심을 가질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단체는 회원들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위해 총 6개의 법무법인과 접촉, 소송 대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접수를 받고 약 1800명이 신청했다.
광주시도 총 2009명의 5·18 피해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단체는 소장과 광주시 연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회원 개인이 할 수 없는 형사 보상금 청구에 대한 행정 지원과 명예 회복 법안 개정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5·18 피해자들은 소송을 통해 △현실에 맞는 위자료 책정 △연좌제로 피해받은 가족을 포함한 손해배상 △소송비 국가 부담 △당시 보상금에 이자율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황 회장은 "국가폭력과 탄압으로 고통받는 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이 연좌제로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가 조속한 배상을 해야 한다"며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가치를 잃기에, 가치를 지키고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반드시 배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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