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밀집 군중 난류’에 선 채로 숨 멎었다

손고운 기자 2022. 11. 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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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군중밀집 전문가 키스 스틸 교수 등 응급의학·재난안전·군중행동 전문가들이 본 압사 이유
gkstill.com 갈무리

2022년 10월29일 밤 10시15분께, 서울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내려오는 인파와 올라오는 인파가 마주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밀집하면서 일부는 도미노처럼 넘어져 군중에 깔렸고 일부는 선 채로 질식·압사했다. 도심 한복판 골목에서, 어떻게 성인 수십 명이 선 채로 압박당해 질식에 이르는 참사가 일어났을까.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한 공간으로

‘상주 시민 운동장 압사 사고의 임상적 고찰’(2007년)이라는 논문을 쓰는 등 그동안 압사 사고를 연구해온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1월1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당시 영상을 보면 초밀집 군중 속에 사람이 끼어 있는데, 이 정도로 과도한 압력이 생기면 선 상태에서도 흉곽운동을 못하게 된다”며 “우리가 평소에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슴 주위 공간이 있어야 들이쉬고 내쉬는 흉곽운동을 할 수 있다. 가슴이 눌리면 숨을 쉬지 못하는데, 이때 정말 잘 참는 사람도 4∼5분, 좀 짧은 사람은 1∼2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호흡곤란은 곧 심정지로 이어진다. 심정지가 발생하면 피가 뇌로 가지 못해 ‘저산소성 허혈성 뇌 손상’이 오고, 이 상태로 10여 분 지나면 임상적 사망에 돌입한다. 즉, 건강한 성인 남성도 2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장인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골든타임을 보통 (심정지 이후) 4분으로 이야기하는 이유가, 4분 이후부터 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일부 세포가 죽을 것이냐, 많은 세포가 죽을 것이냐에 따라 후유증에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군중 초밀집 상태에선 팔다리가 눌리면서 타박상·찰과상, 심하면 골절과 복강 내부 장기 손상까지도 생길 수 있다.

군중밀집 안전 분야 연구자인 키스 스틸 영국 서퍽대학 초빙교수는 이번 참사가 특정 공간에 인구밀도가 급증하면서 ‘산소 부족, 흉부 압박, 질식’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군중밀집 참사’라고 말한다. 스틸 교수는 11월2일 <한겨레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한 공간에 들어가도록 허용한 것이 문제였다”며 “군중밀집과 관련해선, 일단 수용 가능한 선 아래로 인구밀도를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틸 교수에 따르면 1㎡ 면적에 서 있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은 5명이다. 1㎡에 1∼2명이 있으면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준이고, 3명이 있으면 붐비는 수준이 된다. 4명 이상이 되면 서로 어깨가 부딪치고, 6명을 넘어서면 사고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곳에서는 제곱미터(㎡)당 10명 이상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스틸 교수는 “사람들이 군중 속에 갇히면 (호흡곤란 때문에)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서로를 밀치거나 넘어지는 행동은 (호흡곤란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골목 출입구 지점에서 안전요원이나 경찰이 군중 밀도를 관찰하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흐름을 통제해야 했다”며 “해당 지역의 지리적 위험과 군중의 움직임(Dynamics)을 사전에 예측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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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움직임이 만드는 ‘군중 난류’

밀집한 상황뿐 아니라 ‘군중 난류’(크라우드 터뷸런스)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군중행동을 연구하는 메흐디 무사이드 박사는 2022년 10월3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계획된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느 거리로 갈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른다”는 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가 2011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 ‘간단한 규칙이 보행자 행동과 군중 재난을 결정하는 방법’을 보면, 통상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는 보행 방향’으로 가려 하면서도, ‘목적지까지의 직접적 경로’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는 것을 싫어해 절충안을 찾는 ‘의도적 행동’을 한다. 또 장애물이 보이면 잠시 정지해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보행 속도를 조절한다. 이때 밀집도가 극도로 높아져 서로 충돌하는 작용이 많아지면, 보행자의 ‘의도적 움직임’보다 ‘의도치 않은 움직임’이 많아져 제어할 수 없는 ‘군중 난류’에 이른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특정 공간에 사람이 많이 들어차기도 했지만, 밀고 밀리는 힘이 작용해 압축돼 사망에 이르는 것”이라며 특히 “여러 방향에서 밀고 밀치는 힘이 작용하면 가운데 있는 사람은 꼼짝 못하게 찌그러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군중 속에 갇혔을 때 질식을 피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군중안전 전문가 폴 워트하이머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우선순위는 발을 땅에 딛고 팔이 옆으로 끼이지 않도록 해 가슴을 보호하고 산소를 절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팔을 가슴 앞쪽에 두면 숨 쉴 공간을 0.5~1㎝ 확보해 호흡을 이어갈 수 있다. 워트하이머는 또 “자신을 단단히 (땅에) 고정할 필요가 있지만, (군중이 움직일 땐) 밀기보다는 함께 움직일 필요가 있다. 흐름에 따라가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돕는 행동이 상황을 덜 나쁘게 만든다

또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에너지와 산소 낭비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머리를 위로 들고 있어야 한다. 끝으로 누군가를 돕는 행동이 중요하다. 군중행동 연구자인 마틴 에이머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 교수는 “(누군가를 돕는 건) 그들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기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누군가 걸려 넘어지면 도와줘야 한다. 군중 충돌은 전쟁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 외에도 군중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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