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기술을 바꿔야 한다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ㅣ 히토 슈타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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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가 열렸다(‘데이터의 바다’, 2022년 4월29~9월18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술계에서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작가로 평가받는 슈타이얼의 전시장은 미술 애호가들로 붐볐다. 프리즈 행사 기간에 대거 입국한 국외 미술관계자들에게도 좋은 볼거리가 됐다. 동시대 최고 미디어 작가의 작업은 세계 최초의 비디오아티스트로 널리 알려진 백남준의 작업과 대비되면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슈타이얼은 예술, 기술, 정치, 철학 등에 걸친 저술을 병행하는 예술가 겸 사상가다. 초기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에세이 작품에서 시작해 인터넷과 게임,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 등으로 확장된 그의 작업은 사실상 첨단 디지털기술 영역 전반을 다룬다. 작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구축된 새로운 네트워크 세계가 일상을 점유하면서 현실 세계 자체를 재구성한다고 본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인간처럼 기계도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면서, 인간의 주체성과 정체성은 기계 알고리즘에 영향받는다. 또한 그런 기술의 배후에 자본과 권력이 있다는 인식이다.
기술의 배후 권력에 대한 인식
그는 오늘날 구글지도와 위성사진, 드론 영상 등이 제공하는 수직적 시점이 근대 원근법에서 인간 주체의 시점을 대체하는, 사실상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브러더의 편재하는 시선이라고 본다. 슈타이얼의 작업에서 모션캡처 수트를 입은 노동자들의 춤동작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활용되고, 0.04초 단위로 미래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은 식물을 자라게 하면서 현실과 가상은 연결돼 있다. 또한 옛소련 시기 군수회사가 보유한 시뮬레이션, 가상현실 등의 기술은 소련 해체 이후 게임이나 부동산 설계 등의 용도로 쓰이고, 인명구조용 로봇이 끊임없이 가격당하면서 균형과 복원력 증강을 위한 학습을 한다. 그의 작품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의 기술을 구사하면서 현란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사실상 내용은 이런 기술에 대한 비판으로 과충전돼 있다.
기술개발 역사는 기술에 대한 비판의 역사이기도 하다. 라디오를 비롯한 통신기술은 레이다 기술과 함께 크게 발달했고, 컴퓨터의 전신인 튜링머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암호해독기로 개발되는 등 오늘날 전자통신 기술은 사실상 폭력적인 군사기술이기도 했다. ‘로봇’이란 용어를 처음 쓴 카렐 차페크는 인간에 대한 로봇의 봉기를, 오웰은 스크린을 통한 빅브러더의 감시사회를 예견했다. 1960년대 백남준이 시작한 비디오아트의 단골 주제는 오락프로그램 중심으로 편성된 텔레비전(TV)이 바보를 양산한다는 비판이었다.
기술 비판은 지난 반세기 이상 군사기술, 감시사회, 우민화, 로봇 지배 등 한정된 레퍼토리를 반복해왔다. 말하자면 게임이 유행하자 사행성과 폭력성에 대한 우려와 비판, 스마트폰이 유행하자 피상적인 자료검색이 깊이 있는 사고능력을 대신한다는 비판, 플랫폼 기업과 정부의 개인 데이터 수집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비판이었다. 또한 폐회로텔레비전(CCTV)의 편재는 감시사회 비판,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에 대한 우려 등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도 동일한 우려와 비판을 일관되게 되풀이했다.
진부한 기술 비판을 넘어
슈타이얼의 작업은 우리의 일상과 심지어 의식을 주조하는 오늘날 디지털기술에까지 기술 이해를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그의 기술 비판은 기존의 진부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백남준은 1984년 서울과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전 지구적 규모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오웰이 소설에서 예견한 감시사회 대신 TV 화면이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상황을 우려했지만, 기술로 전 지구가 실시간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돌이켜보면 TV는 오락 기능을 제공한 것 못지않게, 전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 기능을 수행했다. 게임 기술은 오늘날 메타버스를 통해 디지털 다중세계가 등장하는 모태가 됐다. 스마트폰은 검색엔진과 유튜브 등을 통해 대부분의 지식에 실시간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한편 감시사회는 범죄를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기능하며, 군사기술은 전쟁 수행 못지않게 전쟁 억지력으로도 기능한다. 일관된 우려와 비판에도 이들 기술이 여전히 쓰이는 것은 폐해 못지않게 큰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기술을 익히던 1960~1970년대는 기술 발전에 따른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강했지만, 오늘날 기술이 초래한 기후위기와 인류세 논의는 인류에 절멸적인 위협으로 여겨진다. 19세기 초반 사진기의 발명이 미술을 재현 기능에서 해방한 것처럼 기술 발전은 예술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그러나 기술철학자 육후이는 오늘날 직면한 기술의 위협은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예술이 기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백남준이 기술을 권력의 도구가 아닌 소통 도구로 활용한 것처럼, 이제 예술은 기술이 인류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기술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기술에 대한 판에 박힌 비판의 답습이 아니라 기술 선용을 위한 긍정적인 방향 제시로 이뤄져야 한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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