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가족', 배우들의 '낯섦'만 반갑다 [김나연의 사선]

[스타뉴스 김나연 기자] [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김나연 기자의 사적인 시선.

삶의 밑바닥, 어느 한 군데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에서도 꽃이 피기 마련. 아슬아슬한 여정 속 한 줄기의 빛을 선사하는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배우들의 열연을 동력으로, 그들의 '낯섦'이 반가움을 안긴다.

'고속도로 가족'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모두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휴게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고속도로 가족'이라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한다. 시속 100km의 차들이 지나가는 차도 옆을 지나 담을 넘어 휴게소에 도착한 이들은 텐트로 집을 짓고, 화장실에서 물을 마시고 씻으며 생활한다.

가장인 기우(정일우 분)는 지갑을 잃어버려 기름값이 없다는 핑계로 2만 원씩 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이런 상황에서도 행복해 보이는 네 가족의 미소에 비정상적인 모습이 언뜻 정상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기우와 그의 가족이 우연히 영선(라미란 분)과 얽히게 되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영선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인물. 그는 우연히 휴게소에서 만난 기우의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여 2만 원이 아닌 7만 원을 건넸다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리고 있는 기우와 가족들을 목격하고 뭔가 잘못됐음을 느껴 경찰에 신고한다.

이 일로 기우의 아내 지숙과 아이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영선은 이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이후 예상할 수 있는 듯 보였던 영화의 전개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명확한 해피엔딩처럼 보이기도, 행복한 순간은 마치 신기루인 듯, 삭막한 현실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고속도로 가족'은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상처나 아픔 없는 사람도 없다고 했던가. '고속도로 가족' 속 인물들도 모두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계기로 움직이고 또 행동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풀릴 수록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에 공감보다는 의문이 들며 받아들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기생하며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컵라면 한 끼 먹이는 것도 벅차고, 임신 중인 아내 지숙은 산부인과 한 번을 가지 못한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딸에게는 "비참한 곳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구걸에는 동참시킨다.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이런 삶 속에서 '가족'의 완전체만 바라는 기우에 대한 이해보다는 탄식이 먼저 흘러나온다. 아이를 잃은 아픔을 안고, 지숙과 그의 아이들에게 조건 없는 품을 내주는 영선의 호의 또한 그렇다.

가족의 의미와 새로운 가족의 형태,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이렇듯 '고속도로 가족'이 그리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 속 인물들의 부족한 개연성, 마지막쯤에야 등장하는 개인사 등이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셈이다. 관객들에게 캐릭터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시켰다면 서로를 포용하고 끌어안는 과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고속도로 가족'은 배우들의 열연을 동력으로 충실하게 달려 나가는 작품이다. 특히 지금껏 본 적 없는 배우들의 낯선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코미디 퀸'으로 불리는 배우 라미란은 코믹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깊이 있는 인물로 변신했다. 김슬기 또한 많지 않은 대사에도 단단함과 섬세함 그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가장 큰 변신은 역시 정일우다. 데뷔 17년 차 '변화'를 위해 '고속도로 가족'을 선택했다는 정일우는 뛰고, 구르고, 얼굴에 진흙까지 바르며 강렬하고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끝에서 끝까지 극단에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성공적으로 탑승한 정일우다.

"저 배우의 뒷면, 낯선 얼굴 보여주고 싶다"고 밝힌 이상문 감독의 뜻만은 완벽하게 통한것 같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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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