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무책임한 위정자들이 우리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한겨레 2022. 11. 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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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
백성을 보살피지 못한 죄(是予之罪)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0일 오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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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기록을 보면, 옛날에 나라의 홍수를 막기 위해 물길을 잘 다스리는 것으로 이름 높았던 우(禹)임금은 “하늘 아래 물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면 그게 다 자기가 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빠졌다고 여겼다”고 했고, 농사짓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후직(后稷)은 “하늘 아래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다 자기가 농사짓는 법을 제대로 못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굶주린다고 여겼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饑者, 由己饑之也)고 했다.

우리 역사에도 책임감 높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록이 많다. <삼국사기>에 보면 유리 이사금이 민간을 순행하다가 한 할머니가 굶주리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잘것없는 몸으로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백성들을 잘 보살피지 못하여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이다.”(予以眇身居上, 不能養民, 使老幼至於此極, 是予之罪也)

유리 이사금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옷을 벗어 이 헐벗은 할머니에게 덮어주고 밥을 주어 먹게 하였다. 그리고 담당 관청에 명령을 내려 곳곳의 홀아비, 홀어미, 부모 없는 아이, 자식 없는 늙은이와 늙고 병들어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문하고 양식을 나누어주어 부양하도록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책임자들의 안하무인식 태도

왕조 시대에도 정치 지도자들은 높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임금과 후직이나 유리 이사금과 같은 높은 책임의식을 지닌 정치 지도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사전에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참사가 이 땅에서 벌어졌다.

지난달 29일 밤 10시15분쯤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에서 156명이 숨지고, 190여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핼러윈 축제에 참가하고자 이태원으로 몰려든 10~20대 젊은이들이었다.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겼다. 지면을 빌려,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150명 넘는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는데, 자신의 직을 걸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죄하는 책임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고위 관료들의 책임의식 부재에 절망감을 느낀다.

오히려 이들의 태도는 적반하장에 가깝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 다음날인 30일 이번 참사에 대해 “경찰과 소방관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사전에 참사를 막았어야 하는 주무 장관이 ‘미리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어떻게 참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이 장관의 이 같은 태도는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처음부터 당국이 경찰과 소방관을 동원해 이태원 골목의 질서를 잡았더라면 참사를 사전에 막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장관은 또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풀리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라면서 참사를 사전에 예측할 방법도 애초에 없었다는 투로 말했다. 참사의 책임을 피해자와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리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입 밖에 내놓기에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잘 아시다시피 (참사 당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병력들이 분산됐던 그런 측면들이 있었다”고도 발언했다. 미국 <시엔엔>(CNN) 같은 외신들조차 “국민 안전과 재난 대응을 책임지는 공직자가 하기에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라거나, “이건(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다 (…)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된다”고 말해 성난 시민들을 향해 기름을 부었다. 이날 이태원에 왔던 피해자, 그리고 시민들은 그저 축제를 축제답게 즐기려 했던 평범한 이들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안전은 지켜질 수 있을까?

과거에도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가 하루 10만명 이상 몰려든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 같은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대한 경찰력을 동원해서 폴리스라인을 쳐가며 위험구간을 통제하고, 안전 통행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10월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이미 경찰과 지자체가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해놓고도, 이에 대한 소방이나 경찰 등 관리 인력의 현장 배치가 미흡했던 것 아니었냐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다. 서울시 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주요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서울시 쪽은 “서울시에 핼러윈 축제 참여 인파 관리를 담당하는 소관부서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안전 관리는 경찰 담당”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앞에서 맹자가 예로 들었던 우임금과 후직과 같은 책임의식이 지금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없다면,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의 재발 방지를 장담할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은 의식 수준이 그 해당 공직을 감당할 수준에 한참 미달임이 이미 드러난 셈이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태만을 뉘우치기는커녕 자리 보전에만 연연해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미루는 이들을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무책임한 책임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 요소이다.

철학연구자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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