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말하지 말라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2. 11.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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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 2022년의 이태원, 2017년의 런던 그렌펠 타워

● 선진 메트로폴리스 런던에서 일어난 일
● 화재 위험 높은 알루미늄 재질 외장재
● ‘실내 대기하라’던 英 소방 당국
● 너무 높은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역설
● ‘선진국 콤플렉스’와 ‘후진국 멸시’

11월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곳곳에 꽃과 추모 글귀를 적은 종이가 가득하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151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이런 대규모 사고는 선진국이라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다."(*편집자 주: 11월 4일 기준 희생자는 156명이다.)

10월 30일 'KBS 뉴스특보'에 출연한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이 한 말이다. 전날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는 소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지만,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가령 이경원 용인세브란스 응급의학과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시에서 가요프로그램 녹화 직전 11명이 사망하고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는 그 사고에 대해 논문을 쓴 압사 사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경원의 설명에 따르면 압사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사고의 한 유형일 뿐이다. 거기서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서 죽는' 일은 언제 어디서건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라면 벌어질 수 있고 또 벌어져 왔다.

영국에서 비상구의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게 한 1883년 빅토리아홀 아동 압사 사고부터 살펴보자. 공짜 장난감을 받기 위해 몰려온 5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넘어지고 서로 밟고 밟히는 참극이 벌어져, 183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끔찍한 사고였다.

그 후에 모든 나라들이 이 같은 일에 대비했을까. 아무 문제도 벌어지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1942년 미국의 코코넛 그루브(Coconut Grove)라는 무도회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놀란 군중이 탈출하기 위해 몰리면서 491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1989년 영국 힐즈버러 스타디움(Hillsborough stadium)에서는 95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낸 사고가 발생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는 규모의 차이가 있다 뿐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필자는 두 전문가 중 누가 더 옳은지 단정 지을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러 사례를 놓고 볼 때, 압사 사고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다는 이경원의 설명이 더욱 합리적으로 보인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장에서 군중이 지나치게 쏠리고, 그 중 누군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분위기가 과열되는 등 작은 이상 현상이 벌어지면, 그것이 압사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렌펠 타워 리모델링이 낳은 결과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후진국형 참사'인지와는 별개로, 또 한 가지 던져볼만한 질문이 있다. 세상에는 '후진국형 재난'과 '선진국형 재난'이 따로 존재하는가. 어떤 재난은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후진국에서 많이 벌어지고, 반대로 다른 재난은 후진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하며 선진국에서 자주 발생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모든 나라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재난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재난은 발생한 나라가 선진국이더라도 '후진국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난 발생국이 지니고 있는 가장 취약하고 허술하며 무방비한 곳이 사정없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재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선진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모든 재난은 '후진국형 재난'일 수밖에 없다.

2017년 6월 14일, 영국 런던의 그렌펠 타워. 오전 12시 54분 999(한국의 119와 같은 신고 번호)에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24층으로 이루어진 고층 임대아파트인 그렌펠 타워의 4층 16호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였다. 1시 25분에는 14층 주민이 화재 신고를 했고, 1시 30분에는 22층 주민에 의한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화재가 발생했지만 충분히 빨리 신고가 접수됐다. 아파트의 거주민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렌펠 타워 화재는 도합 7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현장에서 70명이 숨졌고 이후 병원에서 2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74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주거용 건물 화재 사건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불이 났지만 초기에 발견했고, 신고도 제대로 접수됐으며, 거주민들에게 화재 관련 지시 사항도 올바로 전달됐다. 그런데 왜 7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 혹은 '후진국형 재난'으로 번지고 만 것일까.

주거용 고층 건물의 화재 발생 시 가능한 대응 방안을 생각해 보자. 고층인데다 출입구가 잘 확보되지 않는 경우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래서 영국은 기본적으로 '실내 대피 정책(stay put policy)을 취한다. 불이 나면 거주민들은 현관과 창문을 닫고 집 안에서 대기하도록 안내를 받는다. 내장재, 외장재 등에서 가연성 소재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각 호실과 복도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갖춘 건물의 경우 충분히 선택 가능한 합리적 방안이다. 실제로 2010년에도 그렌펠 타워의 로비에서 불이 났지만 금방 진압됐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렌펠 타워는 저소득층이 사는 임대 아파트였다.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리모델링이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화재의 위험성이 높은 알루미늄 재질의 외장재가 선택됐다. 그 외장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1973년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화재 사건 발생 건물에서 쓰였던 동일한 재질의 외장재였다. 하지만 그렌펠 타워의 리모델링은 비용 절감이 우선이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999 상황실과 소방 당국은 그렌펠 타워의 외장재 변경 및 화재 진행 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4층 16호, 14층, 기타 여러 곳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999의 대답은 동일했다. '연기가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문단속을 잘 하고 집 안에 대기하세요. 소방차가 출동해서 곧 불을 끌 겁니다.'

애석하게도 불길은 빠르게 타올랐다. 오전 1시 27분이 되자 외장재를 타고 불은 건물 옥상에 도달했으며, 2시부터는 옆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방 당국이 '실내 대기'가 아닌 '탈출'을 지시한 것은 새벽 2시 47분의 일이었다. 많은 주민이 탈출 시점을 놓치고 실내에서 매연과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제각각의 방향으로 설정된 합리성

‘메뉴얼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다' '합리적 대응이 필요하다' 등등. 큰 재난을 겪고 나면 우리 사회에 흔히 떠도는 이야기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때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렌펠 타워의 사례를 보면, 안타깝게도 그렇다. 화재 신고를 접수받아 주민들에게 실내 대기를 지시한 소방 당국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정보와 상황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보가 완전히 공유되고 신속하며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한, 제각각의 방향으로 설정된 합리성은 오히려 더 큰 비극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영국인들은 수도 런던의 한복판에서 24층의 고층 임대 아파트가 화마에 휩싸여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애꿎은 목숨을 앗아가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렌펠 참사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시민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서 벌어진 일이다. 소방 당국에서 실내 대피를 지시하건 말건 주민들이 서둘러 건물에서 탈출했다면, 적어도 72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참사로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말하자면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소방 당국의 지시를 잘 따랐다. 그 결과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진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시작했다. 그 심장인 런던은 세계 최초의 현대적 메트로폴리스다. 대도시를 운영‧관리하며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경험에 있어서 영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다는 소리다. 그런 영국에서도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초대형 재난이 벌어졌다. 원인은 저소득층 임대 아파트의 비용 절감, 그리고 소방 당국의 오판이었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저소득층에게 도심의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바람직한 선진국형 주거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화재 발생 후 소방관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갖춰야 할 선진국형 시민의식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맞물리고 나니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졌다. 어떤 사고가 선진국형인지 후진국형인지, 특히 피해자의 수를 근거로 묻고 따지는 논의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례다.

입지전적 성장 스토리에 스며든 의식

한국 드라마‧음악‧영화 등이 해외에서 사랑받고, 한국산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누비면서, 최근 수년 간 우리 사회에는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식의 담론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이 나라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입지전적인 성장 스토리는 '선진국'을 향한 동경심과 궤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뿐 아니라 심지어 스포츠의 영역에서조차 우리는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우리는 세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세계의 벽은 높았다는 말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선진국 콤플렉스'였다.

‘선진국 콤플렉스'는 '후진국 멸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이다. 한국은, 한국인은,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가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으며, 그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한 스스로를 후진국이라고 모멸하는 일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대형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등장하는 '후진국형 재난'이라는 말은 그런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재난은 발생한다. 모든 사회는 각자의 실패 지점, 안전 의식의 맹점, 구조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 전까지는 아무 문제 아니었던 것 같았어도, 사고가 터지고 난 후에야 잘못돼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벌어진 참사를 두고 후진국형이니 하는 식의 비난의 말을 얹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다.

모든 참사는 후진국형이다. 다만 그 사고를 이해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과정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진국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태원 핼러윈 압사는 우리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대형 참사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의 길이 나뉠지도 모르겠다. 사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신동아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상처 입은 분들의 쾌유를 빌며,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께도 위로를 드립니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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