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충전완료한 ?K배터리.. ‘제2의 반도체 신화’ 가능할까

세종=양철민 기자 2022. 11.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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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30년 배터리 최강국 목표 제시
'배터리 얼라이언스' 통해 광물수급 만전
업체 난립 속 향후 '치킨게임' 발발 불가피
진입장벽 낮고 中은 LFP 등 보급형 배터리에서 강세
기술우위만으로 높은 점유율 장담할 수 없어
中견제 목적의 美 인플레감축법이 기회 될수도
[서울경제]

정부가 ‘2030년 배터리 세계 최강국’을 목표로 한 ‘배터리 산업 혁신전략’을 1일 공개했습니다. 이번 배터리 전략이 정부의 여타 산업 육성정책과 다른 점은 별다른 ‘장밋빛 전망’ 없이 K배터리 산업의 ‘약한고리’를 단단히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습니다. 그만큼 보여주기 위한 정책이 아닌, 실효적인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배터리 산업 구조 상, 정부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문이 많다는 점에서 그 한계도 명확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사실상 ‘주요광물 확보’에 맞춰져 있습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니켈, 망간, 코발트 등 핵심 광물 공급망은 대부분 중국업체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실제 배터리 4대 광물의 과반(리튬 68%, 코발트 84%, 니켈 76%, 망간 90%)은 중국에서 제련 중입니다.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 격화로 이들 광물 수급이 쉽지 않을 경우 K배터리는 곧바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호주, 칠레, 캐나다 등과 협업해 이들 광물을 직접 들여와 제련할 경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중국만큼 이들 광물을 값싸게 제련하는 곳은 사실상 없습니다. 중국은 대규모 설비를 갖춘만큼 광물제련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데다 무엇보다 환경규제 등 선진국대비 규제수준이 낮습니다.

정부가 광물 확보와 제련까지 총괄하는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년간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광물 확보와 제련 프로젝트에 3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 또한 이 같은 문제 때문입니다. 이번 정부 대책에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여타 대책은 다소 효과가 제한적일 전망입니다. 배터리 ‘순환체계’ 구축으로 명명된 배터리 재활용 방안은 환경오염 이슈 때문에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 지 미지수입니다. 배터리에 함유된 광물을 화학공정으로 다시 분리해 추출하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다수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배터리 광물 추출에 따륵 이익 보다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차량용 노후 배터리에서 광물을 별도 추출하는 대신, 신재생에너지에서 발생된 전력을 예비용으로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노후 배터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정부가 배터리 핵심 기술에 2030년까지 누적 1조원을 지원키로 한 것 또한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이른바 K배터리 3사는 R&D에 2030년까지 19조50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라 정부 투자액과 차이가 큽니다. 다만 이들 기업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진행중인 배터리 업계 시장점유율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향후 설비 확장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부의 R&D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나라를 배터리 R&D 핵심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결국 국내기업의 활약에 따라 실현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K배터리 3총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가진 한계가 명확해 실현 가능성도 높지 않을 전망입니다.

우선 국내에는 현대기아차를 제외하고는 대형 전기차 업체가 없습니다. 반면 테슬라의 최대 배터리 공급처였던 일본 파나소닉은 도요타 등 자국 업체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몸집을 꾸준히 키우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그룹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16년 설립된 노스볼트는 유럽연합(EU) 내 고객군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CATL이나 BYD 등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자국 시장을 등에 업은데다, 자국 정부의 ‘묻지마 지원’으로 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반면 한국기업 중 글로벌 전기차 업체는 현대기아차 외에는 찾기 힘들며 내수시장도 작아 해외 진출이 필수입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최근 몇년간 각 기업의 난립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수요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무엇보다 자동차 업계는 완성차 업계가 무조건 ‘갑’인 시장입니다. 배터리 공장 또한 이들 완성차 업체의 요구사항을 맞추는 한편 물류 비용 절약 등을 위해 완성차 업체가 원하는 곳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K배터리 업체 성장에 따른 과실 대부분이 외국에 돌아갈 수 있는 셈입니다.

시장 흐름이 빠르게 변하는 것도 변수입니다. 테슬라 대표인 일론머스크는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에 눈길을 돌리며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갖고 있는 NCM 배터리의 점유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LFP 배터리는 중국이 1등 경쟁력을 자랑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 등이 강점을 갖고 있는 ‘파우치형’ 배터리 또한 원가 부담이 낮고 안정성이 높은 원통형 배터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배터리 효율 및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국내 기업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는 상용화 시점이 계속 미뤄지고 있으며, 상용화 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 때문에 시장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기차 배터리는 포스트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D램 시장은 두차례의 ‘치킨게임’ 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독과점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아직 1차 치킨게임조차 발발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시장경제가 형성된 이후 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독과점 없이는 특정 기업이 높은 이익률을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도체 시장 역사를 살펴보면 배터리 시장의 미래도 어느정도 예측 가능합니다. D램 시장 1차 치킨게임은 2007년경 대만 업체들이 D램 생산량을 늘리며 2년만에 관련제품 가격이 10분의 1수준까지 떨어지며 발발했습니다. 한때 세계 2위의 D램 생산업체이자 차량용 반도체 업체의 절대강자인 인피니온의 자회사이기도 했던 키몬다가 당시 파산을 선언합니다.

D램 시장의 2차 치킨게임은 대만과 일본 업체들의 잇딴 생산라인 증설로 2010년께 발발합니다. 1차 치킨게임 당시 일본 정부의 지원과 채권단의 자금 지원 등으로 살아남았던 엘피다는 2012년 D램 가격 급락과 ‘엔고’라는 파고에 쓰러집니다. 중국 CATL이 자국 보조금을 기반으로 배터리 물량공세에 나설 경우 비슷한 사례가 반도체 업계에서도 재연될 수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아직 ‘치킨게임’이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향후 발발할 치킨게임에서 K배터리 업체는 반도체 치킨게임 당시 삼성전자처럼 ‘이익’보다 ‘생존’을 위한 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LG에너지솔루션)해 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SK 또한 정유화학부문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SK이노베이션 산하에 있던 배터리 사업부문(SK온)을 육성했습니다. 향후 치킨게임이 발발할 경우 이들 기업은 매우 낮은 영업이익률은 물론 영업손실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안심하기 힘듭니다. 향후 배터리 업체의 영업이익률이 반도체 업계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내재화를 이유로 관련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는 ‘나노’ 단위로 기술승부를 벌이고 있는 반도체 업계 대비 업체간 기술격차가 비교적 작은데다 누적 설비 투자액이 수백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업계 대비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특히 광물 공급망을 확보한 중국 기업이 LFP 배터리와 같은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할 경우 한국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 합니다. 무엇보다 K배터리는 초격차 수준의 기술력 보다는 높은 수율로 안정적 제품을 값싸게 만들며 시장 점유율을 늘려왔다는 점에서, 압도적 기술 우위를 자랑하는 K반도체 대비 약한고리가 다수로 분석됩니다.

설혹 K배터리가 초격차 수준의 기술격차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1980년대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서의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패배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마쓰시타의 VHS는 기술력 등이 소니의 베타맥스 대비 낮다고 평가받았지만, 범용성과 높은 가격 경쟁력 등으로 결국 시장의 승자가 됐습니다. 향후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현재 주유소 수준만큼 늘고 충전 속도가 빨라진다면, 에너지 밀도가 높은 고가의 한국산 배터리 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아도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가 대세가 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중국 배터리 산업에 대한 견제 내용을 담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K배터리에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선 언급한 많은 ‘약한고리’에도 불구하고 K배터리의 가파른 성장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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