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12개국 “北 도발 강력 규탄”…美 “안보리 책임 다하라”vs중러 “美 위협 탓”
유엔 사무총장 별도 성명 “北, 안보리 결의 의무 이행하라”
한미일 등 12개 서방국 장외성명 “무분별한 탄도미사일 규탄”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최근 전례없는 고강도 미사일 도발을 논의하기 위해 4일(뉴욕 현지시간) 개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이사국과 중국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안보리는 지난달 일본 열도를 넘긴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던 공개회의와 마찬가지로 추가 제재에 관한 공개 논의나 성명 채택 없이 서방 국가들의 자체 장외성명을 발표하면서 종료됐다. 북한의 도발에 따른 가장 강력한 외교적 압박수단인 안보리가 ‘종이호랑이’라는 비판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미의 실질적인 압박 카드를 고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올해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이 총 59발이라며 “책임있는 국가의 행동이 아니다”라며 “일부러 긴장을 높이고 이웃 나라들에 두려움을 일으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와 규탄 성명 채택을 막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두 나라가 안보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북한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는 무기를 (러시아에) 팔았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에 대한 완충지역 역할을 한다고 해서, 안보리의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바버라 우드워드 영국대사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지출한 수백만 달러는 북한 전체 주민을 4주간 먹여 살릴 돈”이라며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른 서방국들 역시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규탄하면서 최근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영해 근처에 떨어진 것과 관련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따른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 측 주장을 옹호하며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장쥔 중국대사는 “북한의 최근 발사 행위는 미국 등 관련국들의 말과 행동과 직접 관련돼 있다”며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재개와 미국의 한반도 주변 전략무기 배치 등을 거론했다.
이어 “미국 등은 군사훈련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국방력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며 “우리는 미국에 일방적인 긴장과 대립 행위 중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리는 무조건 (대북) 압박을 강조하기보다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한반도 긴장 고조의 이유로 미국을 지목했다. 그는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활용해 북한에 일방적인 군축을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미국의 억지수단을 배치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평양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이 북한 주변에서 벌인 근시안적인 대립적 군사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비상임이사국으로 이번 회의에 참여한 황준국 주유엔한국대사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이 안보리 제재 결의 위반이며,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국제 비확산체제 자체에도 심각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황 대사는 “안보리의 침묵은 북한의 무모한 행동이 심화하는 결과만 부르고 있다”며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추가 제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미 군사훈련 때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북한은 군사훈련을 하지 않았던 올해 상반기에도 ICBM을 발사했다”고 반박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공개회의를 앞두고 별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지난 이틀간의 다양한 미사일 발사를 강하게 규탄한다”며 “어떠한 추가 도발 행위도 즉각 멈출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관련 안보리 결의들에 따른 국제 의무를 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며 “한반도 긴장 상황을 깊이 우려하며, 대립적인 수사(레토릭)가 늘어나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화 재개를 위한 즉각적인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함께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평화 달성을 위해 대화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주문했다.
한미일 등 서방 12개국은 안보리 공개회의 후 별도의 회견을 통해 장외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고 안보리 차원의 단합된 대응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에서 불과 57km 떨어진 곳까지 영향을 준 무분별한 탄도미사일 발사도 강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대화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며 “불법 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CVID를 요구했다.
지난달 5일과 마찬가지로 미국 등 서방국가와 중러가 대립하면서 안보리가 추가 대북 제재를 논의하거나 공동으로 규탄 성명을 채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날 공개회의는 이를 의식한 듯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안보리의 단합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는 수순에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안보리 무용론’에는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정부는 전례없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추가 독자 대북 제재를 검토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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