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같지만 알고보면 ‘깐부’…달라진 한-중 경제 관계
달라진 대중무역 흑자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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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관계 역사에서 올해는 뚜렷한 변곡점을 찍는 시기로 기록될 것 같다. 한국 쪽의 일방적 무역수지 흑자 흐름이 끊기고 월별로는 적자를 기록하는 쌍방향 예가 드물지 않아진 게 올해 들어서다. 1992년 한-중 수교 뒤 한국 쪽이 1994년 8월(1400만달러 적자)을 빼고는 올해 4월까지 월별 기준 줄곧 무역 흑자를 거뒀던 일방향 기조는 사라졌다.
대중국 무역 적자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 5월(11억달러 적자)이나 6월(12억달러 적자)만 해도 정부나 무역업계 모두 중국 정부의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 여파에 따른 반짝 현상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중국은 올해 3월부터 석달가량 상하이·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도시를 전면 또는 부분 봉쇄하는 강력한 코로나 억제책을 실시한 바 있다.
달라진 대중 무역수지 기조
대중 무역 적자 흐름은 8월까지 내리 넉달 이어지다가 9월 흑자로 반전된 지 한달 만에 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잠정 집계된 10월 대중 무역 적자 12억5천만달러 기록은 이달 전체 수출이 2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5.7%)를 기록한 사실과 함께 눈길을 잡아끈 대목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10월까지 대중 무역수지는 흑자, 적자 기록 각각 5개월씩으로 동률을 이뤘다. 1~10월 누적으로는 흑자를 기록 중이나 규모는 26억4천만달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흐름대로라면 연간 기준 적자를 낼 수도 있다. 지난 한해 대중 무역 흑자 규모가 240억달러에 이르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멀리 돌아보면 올해 이전부터 대중 무역수지 기조 변화의 낌새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한국이 대중국 교역에서 흑자를 가장 많이 거둔 꼭짓점의 해는 9년 전인 2013년이었다. 이때 대중 무역 흑자는 628억달러였다. 한국의 전체 무역 흑자가 440억달러였던 시절이다. 그 뒤 대중 무역수지는 약간씩 오르내리는 속에서 대체로는 내림세였고 2019년(290억달러)부터 200억달러대로 줄었다. 중국이 점차 산업 고도화를 이루면서 세계 수출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을 벌이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정환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선임연구위원(중국조사 담당)은 한-중 경제 통상 관계가 ‘분업 기반 협력’의 시기를 거쳐 ‘경쟁적 통합시장’ 단계로 바뀌어온 것으로 분석하고 그 결정적인 고비로 2014년 7월 타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꼽는다. 한국이 대중국 교역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거둔 시점과 얼추 비슷한 때다. 대략 이 시기부터 두 나라 경제 관계는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활동(개발-생산-소비)의 일부로 전환돼 상호 교역 장벽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정 위원은 풀이한다. 이런 분석은 이달 중 발간을 앞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총서 <한중수교 30년, 평가와 전망>(21세기북스)에 실릴 예정이다.
한-중 경제 관계의 변화는 미-중 패권경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글로벌 통상 질서의 격변과 맞물려 국내 경제 전반에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전략으로 읽혀 중국 쪽의 반발을 사고 있는 4개국 반도체 협의체(이른바 ‘칩4’) 결성 움직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5월 출범)에 한국은 참여 쪽으로 일찌감치 가닥을 잡은 터다. 수출과 수입 모두 중국에 크게 기대고 있는 한국 경제엔 적지 않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가 분리(디커플링)되고 있다거나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식의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한-중 경제 관계가 경쟁 심화를 넘어 이처럼 디커플링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강준영 외국어대 교수는 “산업 간 무역뿐 아니라 산업 내 무역도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며 “산업 간 경쟁이 심해진다고 해서 산업 내 협력이 배제되는 건 아니며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고 한-중 간에는 실제로 그런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휴대폰, 배터리 제조 산업에서 두 나라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완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협력·의존의 공급망 관계로 더 긴밀하게 얽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교 이후 한-중 사이의 교역품 종류가 시기별로 달라지고 고도화됐을 뿐 교역의 비중에선 별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이 대중국 교역(수출+수입)에서 흑자를 가장 많이 거둔 2013년 한국의 전체 교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21.3%(1459억+831억달러/5596억+5156억달러)였다. 이 비중은 지난해 23.9%, 올해(1~9월) 22.1%로 거의 그대로다.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에 따라 국제 정세가 요동쳤던 시기에도 양국 간 경제 통상 관계는 균열 없이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경쟁·협력에 ‘공정성’ 전제돼야
한국무역협회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중 경합은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고, 교역·공급망 측면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두 나라 경제 간에 서로 엮이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국 교역에서 수출과 수입 1위 품목이 모두 반도체라는 사실이나 중간재 교역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서 두 나라 사이의 경제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고 분석한다. 기술 수준이 높고 부가가치가 큰 부품·중간재 중심으로 교역의 내부 구조가 바뀌었을 뿐 양국 간 관계 맺음의 긴밀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산업 간 경쟁 격화와 산업 내 협력 강화는 한-중 관계의 현재 실상을 묘사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상을 암시하는 것이며, 반도체 협의체 결성, 인·태경제프레임워크,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따위를 둘러싼 대외 협상에서 지렛대로 삼을 명분의 실마리이기도 하다.
정환우 위원은 “한국과 중국 모두 연구·개발과 첨단 제조업 육성, 디지털 전환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경쟁 격화가 곧 협력 필요성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양국의 산업 육성 전략으로 추진되는 핵심기술 확보 경쟁은 동시에 서로에게 더 큰 시장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처럼 막대한 규모를 가진 국가의 산업 육성은 한국과 같은 중간 시장 규모의 나라에 기회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서 전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규범과 협력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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