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산업디자인 관심은 큰데”…모방이 먼저

KBS 2022. 11. 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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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잇따른 무력 도발로 자신들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유엔 등의 강력한 제재 속에 고립돼 있고요.

그래서 자력갱생을 내세우지만 경제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 이렇다 보니, 내수 활성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는 평가인데요.

이를 위해 산업디자인 분야 발전과 개발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다양화, 고급화해서 주민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창의력을 활용한 개발보다 모방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상품전시회에는 명품 소릴 듣는 해외 유명 브랜드 모양을 한 상품들이 등장했는데, 짝퉁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식, 우리 힘, 우리 손으로 만들고 있다는 북한의 산업디자인 현주소,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리포트]

북한 최대 국영 백화점인 평양 제1백화점.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상품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진열대는 각종 신발과 의류, 가전제품과 식품들로 가득합니다.

[김은숙/운하대성식료공장 부원 : "우리는 이번에 50여 가지의 새 제품을 개발했고 이미 생산하던 제품과 합해서 140여 가지의 제품을 출품했습니다."]

연말 경제 결산을 앞두고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자력갱생’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파악되는데요.

그런데, 자체 기술과 역량으로 만들었다는 제품들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상품들이 있습니다.

유명 명품 브랜드와 똑같은 로고를 달거나, 특정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무늬의 가방이 포착된 겁니다.

향수병의 모양과 운동화에 들어간 줄무늬 역시 유명 브랜드와 꼭 닮은 모습.

해외 브랜드의 디자인을 그대로 본 딴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전문가들은 북한의 디자인 모방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최희선/디자인 박사/‘북한에도 디자인이 있을까’ 저자 : "1990년도에 나온 인민소비품 도안집이 있어요. 그걸 봤을 때 제가 너무 놀랐던 게 90년대에도 샤넬 백도 있고 구찌가방도 있고 버버리모양의 가방도 있었어요. 그게 무슨 얘기냐면 중앙에서 어떤 모범적인 디자인을 이렇게 지방에 배포하는 시스템이 지금도 사실 유지되고 있거든요."]

주민들에게 들어가는 외부 정보는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 당국.

창작활동을 하는 디자이너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대신 이들에겐 ‘모범 도안’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자료가 제공되는데,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모방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최희선/디자인 박사/『북한에도 디자인이 있을까』 저자 : "저희처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새로 나온 브랜드들 새로 나온 디자인들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에서 내려준 정보의 레퍼런스들을 가지고 연습을 해서 전국 단위로 확산된 게 아마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배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북한의 산업 디자이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배려로 해외 자료를 봤다고 언급합니다.

[리금향/기계공업성 산업미술창작사 창작가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우리 창작가들에게 세계 여러 나라 도안들을 내려 보내주시고 참고자료들도 많이 내려 보내 주셨습니다."]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에도 해외 스포츠 브랜드를 보며 회의하는 모습이 종종 나오고, 가공식품의 경우 일찌감치 한국과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제품들을 참고해왔습니다.

북한에서 즉석국수라 불리는 라면, 우리와 비슷한 포장을 한 제품도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줄곧 소비품의 품질 개선을 강조해 왔는데요.

그 방법 중 하나가 해외 브랜드의 디자인 모방이라는 평갑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기존에 나온 좀 세련된 제품들을 카피하고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단계 자신들의 어떤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을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 위원장은 이토록 디자인 개발에 집중하는 걸까요?

여기엔 경제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 체제를 독려하는 정책 기조가 깔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경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겠다, 라고 하는 게 김정은 체제 정책이거든요. 그걸 통해서 경제를 우선적으로 살려야 되는 것 들이고 그게 이제 내수시장을 살리는 길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명품화를 통해 가지고 그 다음에 소비자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라고 볼 수가 있는 거죠."]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2년부터 해마다 국가산업미술전시회를 개최해 우수한 디자인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데, 소비품을 접하는 주민들의 반응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리명애/평양시민 : "이번에 전시된 도안들이 참 마음에 듭니다. 이 고추장만 봐도 상표가 멋있어서 그런지 정말 별 맛일 것 같아서 이렇게 많이 사갑니다."]

더 나아가 산업 분야별로 디자인 개발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의복류나 일상용품, 식료품은 물론 경공업, 기계, 운송,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산업디자인이 적용되고 있는데, 지난 10년간의 변화도 눈에 띱니다.

[최희선/디자인 박사/『북한에도 디자인이 있을까』 저자 : "예전에는 원색을 위주로 사용을 했다면 지금은 파스텔톤의 가볍지만 좀 화려해 볼 수 있는 색깔위주로.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서 장식성도 없애고 직선적인 형태가 많았다면 지금은 곡선적인 형태. 좀 형태도 조금 더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형태도 많이 볼 수 있고요."]

디자인의 다양화와 함께 기술력 향상도 주목됩니다.

[최희선/디자인 박사 '북한에도 디자인이 있을까' 저자 : "제가 생각했을 땐 가장 발전될 수 있었던 분야는 포장부분이에요. 은박이나 수지에다가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이 굉장히 예전에 비해서 수준이 높아졌어요. 미감을 발전시킨 부분도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인쇄기기와 인쇄기술의 디지털화 이게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도 자체 브랜드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기준 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 출원했거나 등록을 대기 중인 상표는 105건이나 되는데요.

북한을 대표하는 유명 국제상표 대부분이 김정은 위원장을 거쳐 갔다는 건 흥미롭지만 한계이기도 합니다.

[최성우/중앙산업미술지도국 부원 : "전시된 도안들은 모두가 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창작 방향과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지적인 지도로 창작완성 시켜주신 도안들입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제안해 만들었다는 상표들인데요.

북한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멘다는 가방 브랜드 소나무.

["몸소 그 이름도 달아주시고 도안에 솔잎과 솔방울을 그려 넣어도 특색 있는 상표가 될 수 있다고..."]

또 다른 학용품 브랜드인 민들레와 두루미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이름을 짓고 도안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만들어낸 도안만 800여 종이 넘을 만큼 산업디자인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

더 큰 목적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오랫동안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들을 좀 했었고 그 다음에 북한도 경쟁력을 가지고 수출 상품을 만들어야 되는 입장에서 본다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 요소들이 점점 강화되는 측면도 있고요. 이미 글로벌화 세계화가 진행 상황 속에서 북한의 제품을 가지고 생존해야 되는 것들이죠."]

내수 경제의 활성화, 수출 경쟁력까지 염두에 두고 모방과 창작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북한.

자력갱생과 국산화를 통한 경제 발전 노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산업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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