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6조 유동성 대책에도 수요 없어…연말이 문제
기사내용 요약
한은, 6조원 RP 매입에도…증권사 수요 0건
은행 자금조달에…RP 1일물 기준금리 보다 낮아져
RP 1일물 금리 4일 2.88%에 마감…4일만에 2%대로
단기 자금 시장 숨통 트여…연말 조달 경쟁 커질 우려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 우려가 커지자 한국은행이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실시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아직 매입 요청 건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의 주요 자금조달 창구인 RP 1일물 시장에 은행권이 자금을 공급하고 있는 데 따른 영향이다.
한은 등 정책 창구를 통한 자금 조달 수요가 낮다는 것은 단기자금 시장의 경색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일단 "급한 불은 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관건은 연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증권사 등이 요청할 경우 RP 매입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전날까지 공개시장운용에서 RP매입을 요청한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앞서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은행 18곳, 증권사 6곳, 한국증권금융 등 한국은행 RP 매매 대상기관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내년 1월 말까지 3개월 간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의결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한은은 지난 2020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겪자 한은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하기 위해 응찰액 전액을 지원해 주는 무제한 RP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한 바 있다. 당시에는 고정금리 모집 입찰로 응찰금액 전액을 낙찰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RP매입은 복수금리 경쟁입찰(최저금리 이상)로 예정된 금액 이내로 낙찰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은은 이번 조치로 단기물 RP를 매입해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최근 악화된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원활한 자금 순환을 도모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축을 완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매입 만기는 91일물 이내로 주로 14일물 등 단기물을 활용하고, 입찰 최저 금리는 준거금리에 10~20bp(1bp=0.01%포인트)를 더한 수준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단기 유동성이 급박한 경우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필요시 RP매입 기간을 늘리는 등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유동성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은이 시중 자금경색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증권사에 RP 매입 입찰을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증권사들의 수요가 없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한은의 추가 대책 발표 이후 RP 1일물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자, 증권사 입장에서는 구지 한은에게 더 비싼 금리를 주고 RP 14일물을 사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은이 매입하는 RP 금리는 입찰 최저금리를 준거금리로 해 10~20bp를 더한 수준으로 결정하는 만큼 조달 비용만 더 늘어날 수 있다. 한은으로서는 돈 한푼 쓰지 않고 정책 효과를 톡톡히 거둔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만기가 최대한 짧은 것을 선호하는 데 RP 1일물 금리가 기준금리 보다 낮은 2.9%에서 형성되면서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며 "한은에 구지 더 높은 금리로 자금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 데다, 한은도 최소한 기준금리 보다는 낮게 줄수 없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 안되면 우리가 강제로라도 자금을 순환시키겠다는 백스톱(안전장치)을 걸어 두니 마지노선이 버티고 있으니 시장이 숨통이 좀 트인 것 같다"며 "돈 한 푼 안들이고 정책 효과를 얻은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은 추가 대책이 나오기 전인 지난달 21일 RP1일물은 3.26%에 거래됐다. 이후 27일 한은의 6조원 규모의 RP 유동성 공급 대책이 나온 당일 3.07%로 내려가더니 대책 발표 4일 만인 이달 2일 2.93%로 기준금리 보다 낮은 3%대 아래로 내려갔다. 3일엔 2.92%까지 내려가더니 4일엔 2.88%까지 하락했다.
다만, CP 금리(91개월물)은 대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자금시장의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다. CP91일물은 지난달 21일 4.25%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4일 4.88%에 마감하는 등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융 당국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완화와 한은이 금융권에 자금을 공급할 때 담보로 받는 적격담보 대상 증권에 은행채를 포함시킨 조치로 은행을 통한 단기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점도 영향을 줬다. 은행 입장에서도 은행채가 적격담보증권에 포함되면서 은행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돈을 융통할 수 있다. 그동안 은행은 채권시장 자금을 공룡처럼 빨아들여 자금 경색의 진원지로 꼽혀 왔다.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은행채 등을 한은에 담보로 맡기고, 기존 담보로 제공했던 국채 등을 회수하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증권사들의 은행 역할을 하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자금을 지원 받으려는 수요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은 지난달 26일부터 터 증권사와의 RP거래, 증권 담보대출 등의 방식으로 증권사에 대한 3조원 가량의 자금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를 통해 중소형 증권사에 공급된 자금은 현재 9300억원 수준이다.
한은 RP 매입, 한국증권금융 등 정책 창구를 통한 자금 조달 수요가 크지 않다는 점은 증권사의 단기 자금 시장이 숨통을 트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말을 앞두고 북클로징(결산) 등으로 시장 전반에 자금 조달 경쟁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연말의 경우 자금 사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은에 자금 지원 요청이 들어오지 올 수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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