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살았다'하고 빠져나왔는데…이런 저도 생존자인가요"

조민정 2022. 11.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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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난 줄도 모르고 놀았다' 자책…고위험 PTSD 진단받아
온라인 상담·회복기에 공감 이어져…"다른 분들도 꼭 상담받았으면"
슬픔 드리운 이태원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에서 친구들을 잃은 외국인이 슬퍼하고 있다. 2022.11.4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걷다가 사람들 사이의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서 발이 안 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이 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빠져나와서 '아 살았다. 이제 놀 수 있는 건가' 했어요. 이런 저도 참사 생존자인가요."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생존자의 글이 화제가 됐다.

'가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와 '사람이 실려 나갈 때 세상모르고 놀았다. 나는 정말 너무 징그러운 인간인 것 같다'는 자책,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담은 글에 많은 사람이 위로와 공감을 보냈다.

지난 4일 서울 홍대에서 이 글을 쓴 이태원 참사 생존자 A(32) 씨를 만났다.

A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날 질문은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자문을 거쳤으며 인터뷰는 사고 당시의 상황보다는 사고 이후의 경험에 집중해 진행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남겨진 메시지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역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희생자를 위해 남겨진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2.11.3 hkmpooh@yna.co.kr

A씨는 사고 당일인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길거리에서 분장을 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던 중 앞뒤로 압박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엔 친구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길의 흐름이 바뀌었고, 그 사이 누군가 난간으로 끌어올려 줘 구출됐다. 친구를 다시 만나 '살았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오후 10시 40분.

그때까지도 뉴스나 안내가 없었기에 잠깐 위험하긴 했지만 지나갔으니 됐다는 생각이었다. 20여 분 후엔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람을 봤지만 '싸움이 났나 보다' 했을 뿐이었다. 몇 초 사이 실신한 사람이 몇 명씩 쏟아지는 걸 보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오후 11시 30분쯤이었다.

귀가할 때까지도 상황을 알 수 없던 그는 다음 날 점차 뉴스를 보면서 상황을 인지하게 됐다.

구출 후에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분과 도와달라고 소리치던 친구의 모습도 그제야 떠올랐다. 심폐소생술(CPR)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무서운 마음에 피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도 그때부터였다.

처음엔 현실 같지가 않았고, 그 다음엔 당시 상황이 더욱 상세하게 떠올랐고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한없이 우울해졌다가 이내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지인의 권유를 받고 고민하다 사고 다음날 오후 늦게 심리학회에 상담 전화를 걸었다. '저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곳에 있는 전문의료진'이라는 첫 마디에 울음이 터졌다.

자신이 생존자인지를 궁금해했던 그는 이어진 검사에서 고위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아무래도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라는 그의 말에 상담사는 "아니에요.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했을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 말에 혼란스럽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함께 사고 현장에 있었던 친구는 사고 다음 날 오전을 이후로 연락이 닿질 않았다. 큰 충격에 고립을 택한 듯했다.

그는 친구가 다시 세상에 나올 때 자신의 마음과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글을 적었고 어딘가에 있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이들을 위해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청소년 시절 겪은 큰 사건으로 이미 트라우마를 겪어보기도 했기에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도, 묻어두기만 하면 상처가 곪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저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비교적 빨리 조금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됐어요. 혼란스럽거나 자책감이 드는 분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서 상담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어요."

엄청난 인파가 몰린 이번 사고의 특성상 사고 직후 응급실 등을 찾았거나 119의 도움을 받지 않은 A씨와 같은 사례는 생존자나 목격자로 공식 분류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의료·심리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생존자 스스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처음에 전화를 거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 이후로는 잘 갖춰진 시스템에 의해 세심하게 케어를 받을 수 있었다. 언제든 가까이에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크게 의지가 된다"라며 심리상담을 적극 추천했다.

그러면서 SNS 등을 통해 문자로 신청하면 상담사가 전화를 주는 방식으로 상담이 이뤄지면 더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또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슬퍼하는 시민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2.11.4 ondol@yna.co.kr

사고 며칠 후 그는 용기를 내 이태원을 다시 찾았다. 1번 출구 주위를 가득 메운 국화 사이에 편지를 붙이고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약속하며 두 번의 절을 올렸다. 국화 사이에 있던 사진 속에는 그 절을 받기에는 너무 앳된 얼굴들이 있었다.

'다시는 이태원에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는 A씨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적막한 상가를 본 뒤 문을 연 근처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 맥주도 한잔했다. 그리고는 "내년 핼러윈에도 다시 이태원에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태원에 모인 사람들이나 상인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 죄인처럼 숨어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의 기억 속에 이곳 상인들은 끼어있는 사람을 구하고, 큰 사고가 났다는 걸 인지한 순간 가게를 내팽개치고 뛰쳐나가 통제를 도왔던 용감한 이들이었다.

A씨는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고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외신 기자회견에서 농담을 한 한덕수 국무총리, 희생자가 아닌 분향소를 먼저 찾은 윤석열 대통령 등을 언급하며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런 말과 행동이 더욱 상처를 크게 만든다"고 했다.

chom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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