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 매입 공고…“모순에 보여주기식”
[앵커]
서울시가 반지하 대책의 하나로, 반지하 주택을 사들여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계획은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사들이겠다는 반지하 주택에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현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세대가 살고 있는 연립 주택의 반지하. 정재심 씨의 집입니다.
계절이 바뀌며 침수 피해 걱정은 덜었지만, 곰팡이가 필까 옷장문을 열어둬야 하는 등 불편은 가시지 않습니다.
[정재심/반지하 거주자 : "힘들죠. 지상으로 올라간다는 게. 물이 차서 안 된다고 부동산에서는 팔 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마침 서울주택도시공사, SH가 낡은 반지하 300세대를 우선 매입하겠다는 공고를 보고 살펴봤지만 조건을 보고 이내 낙담했습니다.
공고대로라면 건물 전체를 매입하겠다는 건데, 이를 위해선 모든 세대의 집주인에게 매각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 씨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정재심/반지하 거주자 : "지상층 사는 사람들하고 지하층 사는 사람들하고는 마음이 안 맞을 거예요. 공공에서 (세대별로) 사주면 좋을 텐데, 공고 자체가 희망고문에 비현실적이죠."]
기준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매입 공고를 보면 1992년 이후 지어진 집 가운데 '지하층이 3분의 2이상 묻힌' 집을 우선 매입하겠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3분의 2 이상 묻힌 집은 1984년 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 "탁상행정에 보여 주기식 정책 아닌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집을 국가가 찾아가야 하는데, 팔고 싶은 사람 팔라는 것이거든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가' 고민이 없습니다."]
SH 공사는 집주인이 1명인 다가구주택에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고 해명합니다.
[SH 관계자/음성변조 : "이번에는 (집주인이 1명인) 다가구주택 위주로 동별로 매입하는 게 저희들이 나을 것 같아서요."]
설계부터 꼼꼼하지 못했던 겁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SH는 건축 연도 기준을 없애고, 주인이 여럿인 다세대, 연립 주택은 건물 전체가 아니라 세대의 50%만 매입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기준을 바꿨습니다.
또 세대별로 매입하는 방안도 서울시, 국토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계현우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영상편집:한찬의/그래픽:김지혜
계현우 기자 (ky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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