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세 개의 북한이 만드는 '멋진(?) 신세계'
먼저, 혹시 오해하실 분이 있을까봐 제목에 대해 미리 설명하고자 한다. 『멋진 신세계』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로, 1932년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이다. 대한민국이 상대해야 할 '세 개의 북한'이 예고하는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제목을 차용했다. 이는 반어적인 표현이며, 앞으로의 세계가 진짜로 멋지다는 뜻이 아니다.
뒷날, 역사가들은 2022년을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세계사적으로도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인데다, 대한민국은 세 개의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북한은 우리가 아는 군사분계선 이북의 그 북한이다. 두번째 북한은 서해바다 건너에서 점점 북한의 특징을 닮아가는 나라, 중국을 말한다. 세번째 북한은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통해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북쪽의 북한, 즉, 러시아를 지칭한다. 한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만큼만 돼도 한반도의 골칫거리가 사라지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열릴 거라는 염원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러시아와 중국은 오히려 북한과 같은 나라로 변화하는 선을 넘었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와 1인독재를 강화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군사력을 이용해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지난 수십년간 대체로 평화로운 세계를 유지해 온 규범과 질서를 무너뜨린다. 이들의 이러한 활동은 대한민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과거 공산진영에 함께 있었던 북한 중국 러시아의 사이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에 잘 해주면 그들이 북한을 설득해 도발을 멈추고 중국 러시아 수준으로 개혁·개방하도록 설득할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시절도 있었다.
북한 닮아가는 중국 - 1인 권력자 우상화
매주 만나면서 중국을 이끌어갈 새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면면을 보면 시진핑 3기 체제의 속성을 예상할 수 있다.
상무위원에 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시자쥔'(習家軍, 습가군, 시씨 집안의 사병들이라는 뜻)으로 분류된다. 시진핑과 개인적인 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시진핑이 지방 책임자일 때 그 밑에서 일했다든지, 시진핑 아버지 동료의 비서였다든지 하는 식이다. 반면, 상무위원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시진핑 직계로 분류되지 않는 인사들, 과거 시진핑의 경쟁자들과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리잔수는 시진핑계이지만 나이가 많아서 나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야당도 없는 나라에서 최고 권력기구의 구성이 이렇게 되면 최고권력자의 오판과 독단을 막을 수 없게 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하던 올해 2월의 크렘린이 딱 이런 짝이었다.
다음은 중국공산당신문망이 시진핑 3기 집권을 맞아 게재한 논평의 한 대목이다. "당의 핵심, 인민의 수령, 군의 총사령관인 시진핑 총서기는 '수천만 명(의 적)이 있어도 나는 가겠다'는 용감한 정신과 '나는 자아를 갖지 않고 인민을 위해 살겠다'는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사상가와 전략가의 넓은 마음과 철저한 역사유물론자의 고상한 태도는 온 나라의 인민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어떤가. 북한의 냄새가 물씬 나지 않는가. 덩샤오핑은 신격화된 1인 독재자의 오판때문에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목격한 뒤 특정인의 권력 독점과 우상화가 어려운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그걸 시진핑이 뒤집어 마오쩌둥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오의 권력 독점과 우상화는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북한을 통치하는 모델이 되었다.)
중국은 이미 각급 학교에서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화한 데 이어, 최근 3연임 확정 뒤에는 장쯔이 전쯔단 (견자단) 등 유명 배우들을 내세워 시진핑에 대한 충성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시진핑 3기의 중국에선 민간의 활력과 창의를 당의 지도가 대체해 갈 것이다. 시장 위에 국가, 즉 공산당이 있음을 확실히 하는 국가운영이 이뤄질 것이고, 개인은 그로 인한 자유의 축소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북한 닮아가는 중국- 감시와 통제 강화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계속된다는 건 방역을 명분으로 한 주민 통제와 감시가 계속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열과 통제가 강화된다는 면에서 북한과 비슷하지만, AI와 빅데이터 등 고도의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북한과 차별화된다. 시진핑 공산당은 ‘공동부유’ 명목으로 거대 IT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도감독 하에 있는 국영기업이 텐센트 등 거대 IT기업에 합작투자, 지분참여 등의 형식으로 파이프를 꽂는다. 개인의 통신내역, 위치정보, 거래내역 등 모든 정보를 쥔 IT플랫폼을 공산당이 장악하는 디스토피아로 꾸준히 이행해가는 중이다.
지난 9월 중국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국영 배터리 제조회사에서, 화장실내 흡연자들을 감시카메라로 색출해 해고 또는 수당을 삭감한 것이다. 이 사건 자체는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었지만 비슷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중국 내에서 '기술을 이용한 감시'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기사] 흡연자 색출하려…중국 화장실 감시카메라 논란 (김지성 SBS 베이징특파원)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03126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중국 국민들이 공산당 독재에 큰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보다 잘 살게 해 줬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확고한 지도하에 중국의 경제력이 이만큼 성장하고 국제적인 위상이 강화되었으니, 권력 분점으로 인한 갈등과 혼란을 겪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중국 사람들에게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의 북한화
그래서인지, 푸틴의 러시아를 북한에 빗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를 쓴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9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푸틴의 러시아를 북한에 비유해 비판했다.
그는 푸틴이 서방을 상대하면서 북한의 플레이북을 따라하고 있다고 봤다. 두 불량배가 벼랑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차를 모는 '치킨게임'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은 출발할 때 아예 핸들을 뽑아버림으로써 '나는 방향을 틀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고 보여주는 것인데, 푸틴이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가 딱 그짝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을 끊은 것은 그러한 미치광이 전략의 일환이지만, 결국 푸틴의 최대 패착이 될 거라고 프리드먼은 지적했다. 에너지 공급자로서의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함으로써, 유럽은 이제 다시는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는 가장 큰 무기 가운데 하나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가스 비축 상황이 당초 우려만큼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 가스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콜라보
핵 가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면 남한에서는 1) 북한을 잘 달래서 위험을 낮추자, 미군 전략자산 전개나 합동훈련도 하지말자는 일명 평화주의자의 목소리가 커지거나 2)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자체 핵무장 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어느 쪽이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기 좋다. 중국이 대만 무력통일에 정말로 나설 경우, 북한은 핵탄두 미사일 위협으로 미군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거나 적어도 한국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그 '아름다운 미래'가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전혀 아름답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북한과 러시아의 콜라보
국제외교무대에서 러시아를 공개 지지하는 나라는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된다. 심지어 중국도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대놓고 지지하지 않는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고 나선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점령지역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자치공화국을 북한이 독립공화국으로 인정한 것도 그 일환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 인프라 복구 인력을 제공하면 국제 제재 위반이 되지만 도네츠크나 루한스크 공화국에 제공하고 그 대가를 자원, 식량, 위안화 등으로 받으면 제재를 피할 수 있다고, 북한문제 전문 사이트 38노스(38 North)는 분석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콜라보
'북중러'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북중러가 위협하는 질서는 인류가 20세기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교훈 삼아 나름대로 합의한 것이었다. 강대국이라고 해서 옆나라 영토를 힘으로 뺏으려 해서는 안되며,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걸로 선제공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말이다. 그런 합의 위에서 세계는 무역을 증진시키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증진시켜왔다. 물론 그 과정에 부작용이 없지 않았고 미국과 유럽의 잘못도 없었다 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은 그들이 정립한 규범과 질서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양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2022년은 그랬던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다. 가운데에서 줄타기하며 양쪽에서 실리를 취하고 싶은 우리의 희망과는 관계 없이, 미국-유럽 중심의 세계와 중국-러시아-북한의 세계 사이에는 점점 더 깊은 골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걸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나라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트럼프 같은 인물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어 혹여 미군이 철수라도 할 경우 중국의 힘과 공급망 안에 편입되어 다시 사드 보복 같은 일을 당하며 소국으로 살아갈 나라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 각국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는 진영의 일원으로 세계를 누비며 살아갈 나라인가. 그 답에 따라 우리가 갈 길도 달라진다.
(구성·편집 : 이현식 D콘텐츠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 옥지수, 박수민)
[ https://www.youtube.com/watch?v=BCIP5uI1rSA ]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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