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는 아니라고 했지만 다를 바 없었다
국세청이 제2의 세무조사로 불리는 '신고내용 확인'에 힘을 주고 있다.
'신고내용 확인'은 이름 그대로 납세자가 신고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행정업무다. 국세청이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해명자료를 요구하고 해명되지 않는 부분은 수정신고를 통해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도록 만든다.
그 절차나 진행결과가 세무조사 못지 않아, 신고내용 확인 안내장을 받은 납세자가 느끼는 압박이 상당하다.
신고내용 확인은 '펑크'로 표현될 정도로 세수입이 크게 부족했던 2015년 연간 2만5500건이나 실시됐지만 세수입이 회복되면서 점차 건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상황이 어려워진 2020년에는 4400건까지 축소 운영됐다. 영업제한이나 매출감소피해를 본 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해 일시적으로 신고내용 확인 면제를 해준 영향도 컸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고 있다. 2021년에 5400건으로 다시 늘어난 신고내용 확인건수는 올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국세청은 지난 7월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신고내용 확인업무와 관련해 '경제회복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상화 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세무조사 줄이면서 신고확인은 많이 하는 이유
사실 성실신고의 필요성을 확인시키면서 세금을 추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무조사다. 하지만 국세청은 세무조사는 계속해서 축소하고 있다.
2000년대 연간 2만건의 세무조사를 하던 국세청은 2010년대에는 1만7000건 정도로 세무조사 건수를 줄였고, 2020년 이후에는 1만4000건까지 세무조사를 축소했다. 올해 세무조사 목표치 역시 1만4000건이다.
경제상황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세청 조사권한의 남용을 막고 이를 제한하는 규제가 크게 늘어난 영향도 크다.
실제로 세무조사는 그 대상과 절차를 법에서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최근 세무조사 관련 법령이 촘촘해 지면서 이미 진행한 세무조사도 위법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원 판례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세무조사결과 전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하지만 신고내용 확인은 법령이 아닌 행정규칙, 즉 국세청 사무처리규정에서 그 방법 등을 정하고 있다. 국세청의 의지만 있다면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은 규칙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공개적이고 제한이 많은 세무조사 보다는 대외적으로 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납세자를 압박할 수 있는 신고내용 확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보다 무서운 신고내용 확인
신고내용 확인만으로도 충분히 세무조사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신고내용 확인의 활용도를 높인다.
신고내용 확인은 오류 등의 문제가 있는 특정 신고항목에 대해 납세에게 해명자료를 요구하고, 해명이 되지 않는 경우 신고를 다시 하라고(수정신고) 요구하는 절차다.
국세기본법에서 정의하는 세무조사 역시 세무공무원이 질문하거나 장부·서류 등을 검사·조사 및 제출하도록 명하는 활동을 말하므로, 내용상 신고내용 확인과 세무조사는 별반 다를 바 없다.
세무조사와 달리 '특정 항목'에 대해 제한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도록 하고 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확인된다.
지난달 수임고객의 신고내용 확인 안내장을 받은 서울의 한 세무사는 "일부 필요경비 항목에 오류가 있고 안내하면서 해명자료로는 모든 계정별 원장을 제출하라고 요구한다"며 "모든 자료를 요구하는 세무조사와 사실상 다를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국세청이 신고내용 확인 과정에서 '세무조사가 아니라는 점'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마치 제 발 저린 모습처럼 더욱 눈에 띈다. 실제 국세청이 세무대리인에게 발송하는 신고내용 확인 안내장에는 "신고내용 확인은 세무조사와는 다르다는 점을 수임납세자에게 잘 설명하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수정신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신고내용 확인의 위력은 납세자가 해명자료를 제출한 이후에 더 크게 발휘된다.
신고내용 확인 안내를 받아 해명자료를 제출하더라도 국세청이 해명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수정해서 다시 신고할 것을 요구받는다. 수정신고 안내다. 더 나아가 국세청에서 안내 받은 대로 수정신고를 한 이후에도 상황은 종료됐다고 장담할 수 없다.
수정신고 이후에 다시 국세청이 문제점을 발견하는 경우 추가로 세무조사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사무처리규정을 보면 신고내용 확인 담당조사관은 해명자료나 수정신고서를 검토한 후 세무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세무조사대상 선정 등에 활용하도록 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이나 세무서 조사과장에게 통보할 수 있다.
납세자는 신고내용을 확인 안내를 받아 국세청이 요구하는대로 해명하고, 수정신고도 해서 세금을 더 냈지만, 다시 세무조사를 받아 또 다른 추가적인 세금을 추징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세무조사 효력을 내는 신고내용 확인을 통해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복조사(재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프리랜서 세무대리를 전문으로 하는 강남의 한 세무사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중복조사를 할 수 없도록 하고있는데, 국세청이 법령규정이 아닌 신고내용 확인을 통해 사실상의 중복조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lsw@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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