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이던 아동전집, 아이들이 확 빠져들게 만든 이것 [초보엄마 잡학사전]

권한울 2022. 11.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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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엄마 잡학사전 ◆


전집을 빌려 읽으니 책 고르는 데 쓰던 에너지를 책 읽어주는 데 쓸 수 있게 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출산과 동시에 엄마의 공부는 끝이 없다. 아이 발달에 따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물론 계절에 따라, 나이에 따라 옷과 각종 교구 등을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목을 가누고 앉고 기고 걷기까지 1년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만큼 아이의 ‘폭풍 성장’에 맞춰 준비해야 할 것이 수십 가지다.

책도 그 중 하나다. 옹알이를 시작하던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고 의태어·의성어를 말하기 시작하면 부모는 대게 전집을 알아본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초점책, 돌 무렵에는 돌잡이 수학,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생활·인성동화,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한글·전래·인물·사회·과학 등 다양한 동화를 읽히라는 조언이 마치 교과서처럼 전해진다.

베이비페어나 유아교육전 전집 판매 부스를 가면 아이 발달 과정에 맞춰 어떤 전집을 사면 좋은지 설명하는 판매원들이 목소리가 가득하다. 나 역시 유아교육전에서 첫 전집을 샀다. 50만원이 넘는 큰 돈이었지만 아이 발달에 꼭 필요하다는 설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로도 생활동화, 전래동화, 과학동화 등 다양한 전집을 사들였고 어느새 책장에는 책들이 숨 막힐 정도로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고 가격이 비싸다보니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전집을 고르고 사는 데만 열중했지 정작 구입 후 읽어주는 것은 소홀해졌다. 아이들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을 병풍 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꺼내보는 일이 줄었고, 새로운 책이 아니라 그런지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전집 대여권을 선물해줬다. 중고 거래로 전집을 구입한 적은 있지만 빌려본 적은 없었다. 50권 안팎의 전집을 빌린다는 생각도 못 해봤다. 하지만 모빌, 젖병소독기, 유모차, 아기띠 등 유아용품도 다 빌려쓰는 시대에 전집이라고 안될 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편리했다. 홈페이지에서 클릭 한 번 하니 50권 가량의 전집 한 질이 집앞으로 배달됐다. 아이들은 새 전집을 기다렸고, 전집이 도착하는 날 책장에 정리하기도 전에 서너 권씩 그 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대여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아이들은 반납 전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했다. 다음엔 어떤 전집이 올까, 아이들은 기대했다.

나는 밤낮으로 고민 또 고민하며 전집을 고를 필요가 없어졌다. 거금을 들일 필요도 없고, 아이들이 안 읽는데도 아깝다는 이유로 처분도 못하고 낑낑댈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이 재밌게 볼 만한 책을 골라 주문하기만 하면 돼 부담이 덜했다. 책 고르는 데 썼던 에너지는 책 읽어주는 데 쓸 수 있게 됐다.

그 후로 책장 한 칸을 비웠다. 대여 전집을 위한 자리다. 어제 디즈니 골든명작 65권이 집에 왔다. 영화로 봤던 라따뚜이, 카, 라푼젤, 알라딘 등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엄마! 이것도 있어!”라고 외치며 읽어달라고 성화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새 책을 좋아했다. 수년 째 책장에 꽂혀 있는 문학 시리즈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도 새 책, 재밌는 책을 좋아한다. ‘발달 과정에 맞는 전집’은 초보 부모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든 빌리든, 단권이든 전집이든 상관 없다. 아이들이 즐겁게 볼만한 책을 읽어주자. 책을 애지중지 모셔놓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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