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당일 경찰, 마약단속팀 계획보다 3배 투입한 이유
이태원 참사 하루 전, 용산경찰서는 마약 단속을 위한 수사관만 3배 이상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의 교통 통제, 질서 유지보다 마약 단속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경찰은 마약 단속에 배치된 수사관들이 참사 구조 활동에는 ‘순찰 도중 목격’해 ‘자체 판단’으로 투입됐다고 밝혔다.
〈시사IN〉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 용산경찰서(용산서)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 추진 개요’에 따르면, 용산서는 10월28일부터 10월30일까지 이태원 유흥업소 밀집 지역 마약 단속을 계획했다. 용산서 강력 4개팀, 형사 1개팀, 생활질서계 수사관들이 마약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
용산서는 마약 단속 수사관들을 금요일인 10월28일에 가장 많이 배치했다. 강력 등 5개팀 24명이었다. 참사 당일인 10월29일은 강력 등 3개팀 15명, 핼러윈 기간 마지막 날인 10월30일에는 강력 등 2개팀 10명이었다. 용산서는 이 계획을 10월12일 수립했다.
참사 하루 전인 10월28일, 서울경찰청은 ‘핼러윈 데이 대비 마약류범죄 예방·단속을 위한 특별형사활동 계획’을 용산서에 하달했다. 경찰이 천준호 의원실에 제출한 문건 목록을 보면, 발신명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고 수신자는 서울 전 지역 경찰서 형사과장과 수사심사관 등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이 ‘특별형사활동 계획 명령’을 일선 서에 일괄적으로 내렸다는 뜻이다.
‘서울경찰청 마약 단속 특별형사활동 계획’ 개요에 따르면, 서울청은 10월28일부터 10월31일까지 4일간,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이태원과 홍대 클럽 등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마약 단속을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청은 서울청 소속 마약수사대 3개팀, 강력범죄수사대 3개팀을 동원했다. 인근 경찰서인 서울 성북ㆍ동대문ㆍ동작ㆍ강북ㆍ광진ㆍ금천경찰서에서는 각각 강력 1개팀씩 지원받기로 했다. 증원한 경찰력은 이태원 관할서인 용산서와 홍대 관할서인 마포경찰서에 배치했다.
서울청 마약수사대, 용산서·동작서·강북서·광진서 등 총 10개팀 참사 당일 이태원 투입
용산서가 처음 수립한 10월12일자 마약 단속 계획과 10월28일 서울청 명령 하달 이후의 계획을 비교하면, 참사 당일 용산서의 이태원 일대 마약 단속 수사관만 3배 이상 늘었다. 용산서 강력 5개팀, 서울청 마약수사대 2개팀, 동작서ㆍ강북서ㆍ광진서 각 1개팀 등 총 10개 팀 50명이 배치됐다. 당초 계획에서는 52명이었으나 당일 팀별 근무 여건에 따라 실제 배치 인원은 50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날 특별 마약 단속이 추진된 홍대에 배치된 수사관은 37명이었다. 마포서 4개팀, 금천서 1개팀, 서울청 소속 강력범죄수사대 2개팀이었다. 10월28일 금요일 이태원과 홍대에 배치된 수사관은 26명으로 동일했다. 10월30일도 15명으로 같았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배치된 전체 경찰력에 비춰봐도, 이날 경찰은 안전과 질서 유지보다 마약 단속에 집중한 것으로 확인된다. 참사 당일 배치된 경찰 인력은 총 137명이다. 형사과 50명, 외사과 2명, 여성청소년과 4명, 교통기동대 20명, 교통과 6명, 생활안전과 9명, 112상황실 4명, 이태원파출소 32명, 관광경찰대 10명이다. 이태원에 투입된 전체 경찰관 중 약 40%가 10월28일 서울경찰청장 명령으로 마약 단속 수사에 배치된 셈이다.
형사과, 여성청소년과, 외사과를 모두 포함해 마약 단속 및 범죄 예방을 위해 배치된 경찰관은 80여명이다. 질서 유지와 교통 통제를 위해 배치된 경찰관은 50여명인데, 교통기동대 20명의 경우 용산 대통령실 인근집회·시위가 마친 뒤 오후 10시께 이태원으로 배치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참사 직전까지 이태원에선 30여명에 불과한 경찰관이 10만명 넘는 인파를 맡고 있었던 셈이다. 참사 직후 경찰의 도로와 인도 통제가 늦어 소방과 구급차가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구조 활동도 지연됐다.
용산서가 애초 10월12일자 마약 단속 수사관 ‘15명’ 배치 계획에서 실제로 10월28일 ‘50명’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최근 정부와 여당의 기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5일 전인 10월24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에서 “전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라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틀 뒤인 10월26일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국무조정실장이 주관하는 ‘마약류대책협의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마약류대책협의회를 구성해 향후 1년 마약범죄 특별수사팀 운영 등 범정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 밀반입과 유통에 엄정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대통령실과 총리실, 여당의 주문에 따라 핼러윈 기간 마약 단속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이태원에서 마약류 관련 범죄 단속 실적은 ‘0’건이었다. 경찰이 계획대로 단속을 벌인 것은 10월28일 하루뿐이다. 이태원 참사로 10월29일과 30일은 단속이 취소됐다. 경찰은 마약 단속 활동에 투입한 수사관들이 참사 당일 구조 활동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구조 활동 투입 여부에 대한 천준호 의원실 질의에 경찰은 “용산서 강력팀 등(5개팀), 마약수사대(2개팀) 및 지원 경찰서(3개팀) 등 총 10개팀 50명이 용산서 형사과장 지휘에 따라, 운집 인파 관리를 위해 형사 기동 차량을 인파 운집 지점으로 이동했다. 사이렌 취명(사이렌 따위를 불어 울림)과 함께 분산 유도 방송 등을 조치했다. 해밀턴 호텔 주변의 인파 분산 유도 및 구조 활동에 동참해 구조로를 확보했다. 심폐소생술 실시, 시신 및 환자 후송 지원, 교통 정리 및 질서 유지 등 구조 및 구호 활동을 실시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구체적인 구조 활동 투입 시간은 밝히지 않았다. 천준호 의원실이 추가로 정확한 시간을 경찰에 묻자 “(이태원 참사 당일인 10월29일 오후) 11시 이전”이라고만 답했다. 반면 임호선 의원실의 “참사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면 누구의 지시로, 몇 시에 투입됐는지”에 대한 질의에는 “오후 10시40분께 미군 7명과 합동 순찰 도중 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자체 판단으로 CPR 등 현장 구조 활동을 실시했다”고 답했다.
참사 발생 시각은 오후 10시15분이다. 35분 동안 마약 단속을 위해 현장에 배치된 수사관들에게 상황 전파가 이뤄지지 않았고, 순찰 도중 목격해 자체 판단으로 구조 활동에 투입한 셈이다. 참사 당일 용산서가 출입기자단에 보낸 공지를 보면, 오후 10시6분 “(오후)10시반부터 이태원 일대 마약 단속이 시작된다”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오후 10시55분에는 “마약 단속을 못 나갔다. 현장 인파 문제 해결 후 나간다”라고 재공지했다. 단속이 취소됐다는 공지가 올라온 건 오후 11시33분이었다.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의 부실대응 의혹을 조사 중인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11월4일 이재임 전 용산경찰서장이 참사 당일 오후 11시5분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앞서 용산서 112 상황보고 기록 등에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발생 직후인 오후 10시17∼2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고 적혀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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