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세게 넘었다”…성큼 다가온 ‘핵무장 북한’, 한국 맞설 수 있나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2. 11. 5. 06:01 수정 2022. 11. 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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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믿기 힘든 사실이 있다. 10여년 전인 김정일 체제에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미사일로 직접 위협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미국을 노린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 등을 위성 발사라고 주장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다르다. 최소한의 체면도 가면도 벗어던졌다. 한미 연합훈련도 아랑곳없다. 하루에 미사일 20여발을 쏘고, 저수지에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며,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탄도미사일을 쏜다.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화염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정상발사에는 실패했지만, 3일에는 미 본토 타격용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추정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한미가 3일 오후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 연장을 결정하자 몇 시간만에 대남 위협 성명을 내고 같은날 밤 탄도미사일 3발을 쐈다. 매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북한의 속내는 뭘까. 

◆수싸움에 연연치 않는 북한의 초강경 행보

과거 북한은 위기가 고조되면 하나의 전략적 목표에 집중, ‘맞춤형 도발’을 감행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한·미에 명확히 전달했다.

최근에는 추세가 바뀌었다. 단거리 전술지대지유도무기에서부터 ICBM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쏘고 있다. 장사정포 사격과 공군 전투기 훈련까지 더해지면, 북한이 보유한 장거리 타격수단이 모두 동원되는 초강경 도발 행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이같은 기조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핵보유국의 핵전략은 크게 응징억제와 거부억제로 구분된다. 응징억제가 공격받으면 훨씬 큰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전략적 개념이라면, 거부억제는 상대 공격을 무력화하는 전술적 차원의 것이다. 

북한은 ICBM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앞세워 응징보복을 꾀하면서, KN-23 등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거부억제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2일 진행된 단거리 미사일 20여발 발사와 3일 화성-17형 발사는 이같은 기조를 잘 드러낸다. 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을 함께 사용하는 독특한 핵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거부억제 전력인 단거리탄도미사일은 실전운용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미 연합군의 요격시도를 회피할 능력과 높은 정밀도를 갖췄다. 전술핵을 탑재하면 유사시 한반도 남부의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 

응징억제 전력은 화성-15형이 시험발사에 성공했지만, 화성-17형은 확실하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워싱턴 불바다’ 위협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북한 핵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야 한다. 미국 미사일방어(MD)를 돌파하려면 다탄두가 필수다. 이를 위해선 화성-15형보다 더 큰 ICBM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화성-17형 시험발사를 지속하는 이유다.   

다만 북한이 화성-17형 시험발사를 지속하면서 기술적 진전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화성-17형의 정상비행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화성-17형이 완성되면, 북한은 응징억제와 거부억제 전력을 모두 확보한다. 단거리 전술유도무기에서 ICBM까지 ‘미사일 백화점’을 만든 북한은 서울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모든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의 핵전력 구조를 갖추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핵보유국의 핵전략을 벤치마킹했다. 

올해 초 북한이 화성-17형 시험발사를 하면서 내세웠던 정찰위성 개발은 위성 로켓과 미사일을 함께 만드는 1960년대 중국의 핵개발 전략 ‘양탄일성’(兩彈一星)과 흡사하다. 핵무기의 다종화, 경량화, 소형화는 미국과 러시아 등이 사용했던 전략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장사정포 부대의 포병 사격 훈련에 쓰인 야포를 살펴보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열차 발사 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한미 연합군 공격을 회피한 뒤 반격하는 전력을 갖추는 기존 핵보유국의 개념이다. 이를 통해 중국, 러시아와 비슷한 핵전력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국지도발이든 전면전이든 핵을 앞세워 한미의 군사행동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예전처럼 수싸움을 벌일 필요도, 대화에 나설 필요도 크지 않다. 

대신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위한 초강경 군사 행보로 한반도 정세를 뒤집으려는 유혹을 더 느끼게 된다. 

이는 한반도 정세를 움직이는 평양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이따금 미국에 ICBM이나 SLBM으로 핵 보복 위협을 실시하는 것에 더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추가해 상시적인 도발 국면을 만들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내부적인 필요성도 강하다. 코로나19 봉쇄와 국제사회의 제재는 북한 경제의 회생을 어렵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군사강국의 존엄’ 뿐이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이같은 기조의 결과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ICBM에 탑재되는 핵탄두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신형 미사일 재고가 얼마나 남았느냐는 것이다. 3일 밤 황해북도 곡산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미사일은 사용한 지 수십년이 지난 구형 스커드 계열로 추정된다.

북한 핵전략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전술핵과 증폭핵분열탄을 탑재할 신형 미사일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2017년 이후 5년만에 구형 스커드 계열 미사일을 쐈다는 점에서 미사일 재고량에 대한 의문은 지속될 전망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위원은 “신형 미사일이 여전히 부족하며, 현재까지 실전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한미동맹 강화” 외치지만, 北 의중 모르면 무용지물

북한 위협에 한미의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양측은 확장억제 실효성 제고를 위해 정보공유, 협의절차, 공동기획과 실행 등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미군 전략자산 전개를 상시 배치 수준으로 높일 수 있도록 전개 강도와 빈도를 높인다. 확장억제수단연습(DCS TTX)도 매년 열린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로 북한 핵위협에 맞설 실효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이 유사시 어떠한 핵전략을 앞세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육군 제53보병사단 장병들과 소방관 등이 8월 29일 부산 연제구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보조경기장에서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의 일환으로 화생방 테러를 가정한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응징억제와 거부억제 전력을 모두 갖춰가는 북한은 ICBM으로 미 본토 공격을 감행하거나, 단거리 및 준중거리 탄도미사일로 한국과 일본을 위협해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도 있다. 잠수함에 SLBM을 실어 태평양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 핵전략 옵션이 다양하다. 

북한이 어떤 옵션을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북핵 해결과 군사적 대응책은 크게 달라진다. 비핵화 및 남북 교류협력 대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 연합 방위태세 변화, 한국군의 전력 및 부대 구조 개편 등 수많은 외교 안보 정책의 변화를 수반한다.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고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어떤 핵전략을 사용할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확장억제력이 제공되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렇지 않다면 확장억제력은 무용지물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제기될 때마다 한미일 안보협력과 확장억제력 강화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전략과 실행 시나리오에 대해 치밀한 고민과 검토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장관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함께 방문해 B-1B 폭격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북한 핵전략을 더 깊이 고민해서 북한이 유사시 사용할 옵션을 확인하고, 그에 대응하는 한국 고유의 핵 억제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국 확장억제력 운용 계획 수립 과정에서 우리의 의견을 제시,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북한이 취하는 핵전략이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형태인 만큼, 북한과 같은 언어를 쓰고 사고방식도 유사한 한국은 북한의 핵전략과 의도를 꿰뚫어 보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핵 운용경험은 미국이 훨씬 많지만, 강대국 간 핵전쟁 교리에 익숙한 미국은 북한식 핵전략과 옵션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북한의 특성을 잘 아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미동맹과 확장억제력은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도 시너지가 생긴다. 

서로 다른 체제와 구조를 지닌 미국과 북한은 사고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핵 억제 개념을 만들고 대비한다면, 이같은 위기도 방지할 수 있다.

북한이 핵보유를 위해 걸어왔던 과거와 현재의 행보를 다시 살피고, 미래의 방향성을 전망하는 것이 필수인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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