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 “실패해도 돼” 영원무역, ‘직원 관리법’ 다르다
-<상>편에 이어
-회사가 자신을 믿어 준다고 느낀 순간은 어느 때인가.
박미라 : “2007년 중국 출장 때의 일이다. 회장님과 둘이서 원단 분류하는 일만 6시간 했다.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려 얼마 정도이고 이것으로 어느 정도 만들 수 있다고 정리해 놓았더니 며칠 뒤 회사의 재고 관리를 맡겼고 시스템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스스로 그만큼의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회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일하는 모습만 보고 나조차 몰랐던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더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나를 끌어줬다. 실패해도 된다고 격려하면서 믿어 줬다는 것이 기뻤다.”
강성은 : “매 순간 느낀다. 상호 신뢰가 없으면 일하기 힘들다. 서로 시간 낭비도 많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하게 된다. 영원무역에서 일을 하면서 ‘일이 스무스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회사가 나를 전적으로 믿어 주기 때문에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고 이렇게 낸 성과는 매출로 연결되는 것 같다.”
오혜준 : “면접 때부터 느꼈다. 합격·불합격을 따지는 것보다 앞으로 잘해 나갈 수 있을지를 더 중점적으로 본다고 느꼈다. 그런 부분에서 처음부터 신뢰가 생겼고 입사 후 회사 생활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성과 낼 기회를 많이 줬다. 담당한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또 다른 기회를 계속 얻었다.”
-구체적인 일화가 있나.
박미라 :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에 들어와 물류 시스템을 정비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인데 2008년 구축한 원자재 관리 시스템인 ‘글로스톰(GLOSTOM)’이다. 그걸 해낼 수 있도록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믿어 줬고 그 일을 해냈다.
회사에서 1억원을 투자하는 프로젝트였고 개발 단계에서부터 완성까지 9개월 이상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회장님께서 주신 가이드 외에 어떠한 개입도 없었다. 중간중간 확인하고 지적하거나 혼을 냈으면 기가 죽어 제대로 못 했을 텐데 끝까지 기다려 줬다. 이제는 글로스톰으로 몇초 만에 원부자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글로스톰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영원아웃도어에서 스마트폼(빅데이터 처리 시스템)까지 만들었다. 데이터가 워낙 방대해 재고 파악에도 한참이 걸렸는데 이 부분을 개선해 5세대 이동통신(5G) 속도로 검색 결과를 나오게 만들었다. 그때도 7~8개월이 걸렸는데 아무 말도 없이 기다려 줬다. 스마트폼 도입 이후 야근하는 직원도 줄었고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 밖에 무선 주파수(RFID) 기술 도입, B2C(고객과 기업 간 거래) 서비스 개선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
이흥남 :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의 원단 정보와 사이즈 등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다녔다. 바이어가 물어보면 컴퓨터를 열고 찾아보지 않아도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회사를 굉장히 오래 다녔지만 한 번도 풀어진 적이 없고 항상 신입 사원 마인드로 최선을 다한다.”
박미라 :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어느 순간에도 완벽하려고 노력했다. 업무상 실수가 반복되면 ‘누가 실수했어’로 시작한 물음표가 ‘쟤 어디 (학교) 나왔어’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세 번씩 확인했다. 띄어쓰기 하나조차 틀리지 않는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입사 때 만든 습관은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강성은 : “항상 ‘왜’라는 질문을 생각했다. 팀원들에게도 질문을 하니까 팀원들이 먼저 질문거리에 대한 답을 생각해 문제를 가져온다. 나는 질문이 많으니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방법이 없을지 생각해 보고 대안을 많이 제시하려고 했다.”
오혜준 : “성실하려고 했다. 일하는 게 싫지 않아 한편으로는 일이 재밌다는 것이 일의 강도가 낮은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묵묵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업무가 왔을 때 바로바로 능력을 판단해 버리는 회사라면 일을 거절하는 게 더 현명한데 이 회사는 바로 판단하는 회사가 아니라 기다려 주고 인정해 주는 회사여서 어려운 일도 맡아서 했다.”
-같은 길을 걷는 후배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있나.
이흥남 : “좋은 롤모델이 되려고 한다. 리더십이 중요하다. 인위적으로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리더십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선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미라 : “임원이 된 것 자체가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선례 아니겠나. 33년 회사를 다니면서 단 한 순간도 ‘노(no)’라는 말을 한 적 없다. 내가 해내지 못하면 ‘어차피 고졸이니까’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니 학력은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닌 장점이 됐다.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좀 더 행복하게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강성은 : “후배 양성에 신경 쓰고 있다.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지만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리더로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사람 간 신뢰를 만들려고 한다. 인생을 놓고 보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다. 서로 신뢰가 생기면 업무적으로 기대가 커도 후배들이 이해해 준다. 후배가 없으면 이 일을 이끌어 갈 수 없기 때문에 존중과 공감을 먼저 하려고 한다.”
-핸디캡을 가지고 취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박미라 :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으로 비유하고 싶다. 좋은 종이에 이미 구도가 잡혀 있거나 밑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을 받은 사람들은 백지 스케치북을 받은 사람보다 수월하게 그림을 그려 낸다. 하지만 질 나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감이 제대로 스미지 않을 때는 도구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주체적으로 연필을 써 보고 목탄도 써 보면 오히려 차별화를 만들 수 있다. 시도가 중요하다.
의무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다른 부분을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그러면 고졸이라는 핸디캡은 이미 묻히고 그 재능만 빛나게 된다.”
이흥남 : “마흔까지는 ‘어디 출신’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학력에 상관없이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 영원무역도 바이어는 다 외국에 있다. 학력은 상관없다. 더 중요한 것은 ‘도전 의식’이다.”
강성은 :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지금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이고 내가 이 순간에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노력하면 된다. 다만 스스로 프레임에 갇혀 미리 주저할 필요는 없다.”
오혜준 :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충분한 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한다. 특별히 학력에 대한 핸디캡 때문에 더 노력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본인이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액티브하게 행동하면 된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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