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상] “날 진심으로 대했다”…‘고졸 임원’이 말한 영원무역 문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30%대에 머물렀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20%대였다. 80%는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졸업한 후 취업해 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것도 여성이라면 더욱더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원무역은 이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기업이다. 노스페이스와 룰루레몬 등 글로벌 스포츠 웨어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1위 기업’으로도 유명한 이 회사와 관계사에는 현재 12명의 고졸·전문대졸 임원이 있다. 비율은 22.64%다. 이 중 10명은 여성이다. 참고로 300대 기업(2021년 12월 매출 기준) 가운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임원 학력을 공시한 기업 202곳의 평균 고졸·전문대졸 임원 비율은 1.63%에 불과하다.
이흥남 영원무역 수출영업관리본부 부사장, 박미라 영원아웃도어 영업·물류팀 전무, 강성은 영원무역 수출영업관리본부 상무, 오혜준 영원무역홀딩스 인적자원팀 이사 등이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주인공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었던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오직 ‘실력’과 ‘직업 정신’으로 살아남아 임원이 됐다. 영원무역은 능력·성과·발전 가능성 등을 보며 이들을 품었다.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사장은 어려서 공장에 가면 이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친밀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자산이다. 성 사장은 4인의 여성 임원에 대해 “그분들은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갖고 불철주야로 열심히 일해 눈에 띄는 성과를 성취했다”며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인정받고 임원에까지 올랐다”고 설명했다. 수십년간 그들에게 많이 배웠다고도 했다. 성 사장은 “20년간 가까이에서 보면서 같이 일했고 나 스스로도 이분들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성 사장에게 삶과 일로서 직업 의식과 의지를 가르쳐 준 4인에게 30년간의 여정과 영원무역의 기업 문화를 들어봤다. 이들의 말속에는 리더십, 경영학 교과서에서는 찾기 힘든 진실한 힘이 배어 있었다.
-영원무역,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박미라 전무(이하 박미라) : “처음부터 영원무역을 다닐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기업 인사팀에서 학교에 와 생활기록부를 보고 성적순으로 학생을 데리고 갔다. 당시 전교 2등이라 은행에 먼저 인턴으로 채용됐다. 그런데 막상 다녀 보니 너무 힘들었다. 여직원들은 커피 심부름만 했고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았다. 영원무역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날 생각이 달라졌다. ‘미스 박’이라는 게 없었다. 나를 항상 ‘박미라 씨’라고 불렀고 다들 각자 커피를 타서 마시고 있었다. 선입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 공장에 들어왔는데 직원들이 있는 공간도 깔끔하고 투자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원무역은 다르겠다고 생각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강성은 상무(이하 강성은) : “회사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다. 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짧고 불편한 치마’의 유니폼을 입지 않는 것이 신선했다. 보이시하게 입는 편이고 치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당시 한국의 대부분 기업에서는 여직원들에게 조끼·블라우스·치마와 같은 유니폼을 강요했는데 영원무역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좋은 회사라고 생각이 들었고 입사하게 됐다.”
-회사에서 차별을 느낀 적은 없나.
이흥남 부사장(이하 이흥남) : “성기학 회장님이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필드에서 배운 게 더 중요하다.’ 영원무역에서는 학력·성별이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능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학력 타파 임원 기용을 자연스럽게 하고 앞서가는 게 영원무역의 장점이고 굉장히 자부심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일류 대기업보다 일찍 선진적인 문화가 자리 잡은 것 같다. 회사의 경영 방향이나 시스템이 1980년대부터 달랐다. 다른 회사는 같은 ‘대졸’이라고 해도 그 시절에 중요한 업무는 다 남직원이 했고 여직원들은 보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영원무역에서는 공평하게 업무를 배분했다. 여직원들도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등 10년을 앞서갔다.”
박미라 : “차별은 한순간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졸이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조차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
성래은 사장(성기학 회장의 차녀)은 오래 일한 테크니션분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등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항상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노력한다. 지금도 사장님은 ‘우리 전무님’, ‘우리 상무님’이라고 부른다. 친근하고 수평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회장님 역시 성과를 내는 직원이 눈에 띄면 학력에 상관없이 지원해 준다. 영원무역에서 학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도 ‘회장님이 날 믿어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보상도 공정하다. 고졸이라고 승진 시험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고졸 직원들도 근무 연한이 차면 똑같이 승진 시험을 본다. 급여 평가를 할 때도 고졸이라 덜 주지 않는다. 업무 성과를 보고 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정하게 같이 보상받는 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다.”
강성은 : “전혀 없다. 입사부터 차별 없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바이어를 맡기게 하는 등 오히려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믿어 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학력에 따른 차별은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가 산증인이다. 고졸 직원을 무시하고 대졸만 우대했다면 나를 포함해 이미 많은 분들이 나갔을 것이다. 차별이 없었기에 임원까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개인 간 신뢰가 좋은 문화를 만든 것 같다.
오혜준 이사(이하 오혜준) : “중요하다. 과장 승진 때 1년 누락된 적이 있는데 성기학 회장님이 직접 불러 ‘앞으로 기회가 있고 충분히 기대하고 있다’고 위로의 말을 해줬다. 평사원까지 챙기는 것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성래은 사장님도 직원을 그렇게 대한다. 영우회(사우회) 회장에 당선돼 직원 전체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메일을 보고 사장님이 메일을 잘 쓴다는 칭찬을 직접 해주고 함께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해보자고 하며 친근하게 대해 줬다. 회사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
강성은 : “누군가 믿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부분에서 영원무역이라는 회사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이 잘 맞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 나를 믿어 주는 상사가 있는 것 자체로 동기 부여가 된다. 성래은 사장님이 나를 전적으로 믿어 주기에 나 역시 후배들에게 같은 경험을 주려고 하고 그들을 신뢰한다. 그런 것들이 선순환돼 지금의 회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흥남 :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회장님이 사람 중심, 실력 중심으로 경영했기에 고졸 학력에도 부사장이 됐다. 회사에서 학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ESG 경영을 한 셈이다.
오혜준 : “맞다. ESG 분위기를 고려해 채용하겠다고 기획하고 접근하지 않았다. 고졸·전문대졸 채용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의식해 ESG 경영을 해야겠다거나 사회적 요구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해 온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영원무역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존에는 의식해서 특정 분야 채용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아예 이런 채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더 나은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하>편에 계속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