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안내대로 입국했는데 고발"…국가 손해배상 판결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2022. 11. 5.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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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재부 소속 공무원, 정부 상대 손배소송
법원 "2주간 부당한 시설격리 각 300만 원씩 배상하라"
질병청, 입국시 지정병원의 음성확인서 요구 방침 정했지만 안내 안해
"모든 국민에 대한 강제처분은 '적법절차의 원칙' 따라야"
인천공항 1터미널 코로나19 입국자 검사센터 모습. 황진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세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정부가 국민들을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통제하는 과정에서 적법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면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정부의 공권력 남용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판결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어서 관련 줄소송도 전망된다.

법원 "2주간 부당한 시설격리 각 300만 원씩 배상하라"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211민사단독 서영효 부장판사는 전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 A씨 부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방역조치상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와 그의 부인에게 정부가 각각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 비용은 A씨 부부가 불합리하게 시설격리 되면서 지출한 비용과 교통비, 위법한 격리조치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 판결은 우리 정부와 원고 측 모두 대법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강화된 코로나19 방역조치 과정에서 방역당국의 실수가 있었다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확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질병청, 입국시 지정병원의 음성확인서 제출 방침 정했지만 안내 안 해

A씨는 지난해 4월 28일 필리핀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뒤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 임시생활시설 격리 지침을 위반하고 자택에서 자가 격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질병관리청은 당시 A씨가 제출한 유전자증폭(PCR) 검사 확인서 발급처가 국가 지정 기관이 아니라며 그를 시설 격리 대상자로 고지했지만, 통지서에는 자택 격리로 명시했다. 이후 발송된 보건소의 문자메시지에만 A씨가 시설 격리 대상이란 내용이 담겼다.

확인 결과 질병관리청은 A씨가 출국한 국가의 재외공관이 지정한 검사기관에서 발급한 PCR 검사 확인서만 받는다는 지침을 정했지만 홈페이지에는 이같은 사실을 탑재하지 않았다.

A씨가 출국할 당시 외교부 영사콜센터 역시 A씨에게 "귀국시 72시간 내 발급된 국영문 PCR 음성확인서 제출 의무, 반드시 질병청 홈페이지 확인"이라고 안내했지만, 방역당국은 입국한 A씨에게 "재외공간 홈페이지에 지정 검사기관을 안내했다"고 알렸다.

A씨는 입국한 뒤 세종시 자택에 자가 격리하다가 이틀 뒤 임시생활시설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시설격리 대상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요구했지만 방역당국은 시설 퇴소 직전인 5월 10일에서야 해당 통지서를 발급했다.

이후 방역당국은 A씨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경찰은 방역당국의 고발 내용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검찰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A씨에 대한 입건 사실은 언론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수사기관에서는 A씨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지만, 방역당국이 '시설 격리 처분'을 철회하지 않아 징계 위기에 닥치자 A씨는 행정법원에 시설격리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 고상현 기자

"모든 국민에 대한 강제처분은 '적법절차의 원칙' 따라야"

당시 재판부는 "피고는 홈페이지에 제시한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원고가 제출한 PCR 음성확인서를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원고들에게 귀책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원고에게 시설 격리가 아닌 자택 격리 처분을 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공익이 현저히 침해됐다고도 볼 수 없다"며 "(방역당국의) 이 사건 처분의 이유 제시와 방식은 행정절차법과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중앙지법 재판부도 같은 입장을 내보였다. 서영효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 국민은 국가로부터 불가침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부득이하게 신체 구속 등 강제처분을 통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경우에도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서 부장판사는 "피고 산하 기관은 해외입국자 중 내국인에 대한 방역강화조치를 발표하면서도 필리핀에 대한 별도의 기준을 설정·공식화하지 않았으며, 질병관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이같은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이 입국할 때 외교부가 보낸 안내문자에도 해당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 판사는 "감히 국가가 국민에게 스스로 찾아 확인하고 준비하도록 별도의 의무를 부과시켜서는 안된다"면서 "사전에 미리 공표되지 않은 보건행정 기준에 의해 '시설격리'라는 중한 강제처분을 받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박탈하는 건 중대한 기본권 침해행위"라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서 판사는 A씨가 제기한 근무차질로 인한 피해와 그의 입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한 명예훼손 등도 손해배상해달라고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실질 피해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거나 외부에 공표하거나 언론에 유포한 책임기관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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