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관계 파탄" 푸틴의 경고가 가볍지 않은 이유[한반도 리뷰]
폴란드 수출도 '제3국 이전 금지' 조건…러시아, 사전 견제 나선 듯
외교 무례이지만 과잉반응 불필요…한국에 대한 '협박'은 지나친 해석
일본의 러시아 교역은 오히려 증가…"냉철한 손익계산 필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해 양국 간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오히려 북한이 러시아에 다수의 포탄을 지원한 정황을 공개한데 이어 우리 정부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푸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 尹 "사실 아니며 주권의 문제"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살상무기나 이런 것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폴란드 등 동유럽에 대한 무기 수출이 우크라이나로 흘러들어갔을 수는 있지만 정부는 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방위사업청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관련 질의에 대해 최근 이뤄진 모든 방산수출 계약에 '제3국 판매 금지' 규정이 적용됐다고 답변했다.
통상적인 방산 수출에서 수입국은 제3국에 재판매나 공여 등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게 된다. 수출국이 동의할 경우에만 제3자 이전이 허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 최근 폴란드에 K2 전차를 판매할 때도 엔진과 광학장비 등 핵심 부품의 원제작자인 독일과 미국 등 8개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는 한국이 수입국으로서 수출국들의 동의를 받은 것이다.
폴란드 수출도 '제3국 이전 금지' 조건…러시아, 사전 견제 나선 듯
따라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 오해이거나 한국에 대한 사전 견제구 성격으로 풀이된다.
폴란드는 이미 구형 전차 약 200대 등 상당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함으로써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긴 상태다.
최근 한국산 무기 '쇼핑'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단기간에 무기를 생산‧공급할 능력 면에선 한국이 미국이나 독일보다 앞서는 것이다.
어찌됐든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순서가 바뀌었을 뿐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가 계속해서 공급되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신경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한 군사소식통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향후 (우크라이나 지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라며 "푸틴이 현재 상황을 그만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교 무례이지만 과잉반응 불필요…한국에 대한 '협박'은 지나친 해석
다만 그렇다고 과잉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일각에서 푸틴의 발언을 경고 수준을 넘어 '위협'이나 '협박'으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나친 감이 있다.
크렘린궁 홈페이지의 발언록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게 됐다. 이는 한러관계를 파괴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이 (군사) 분야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겠나. 기분이 좋겠나"이다.
이 발언은 한국 측 전문가로 참석한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기후변화 관련 러시아의 대책과 대만 문제, 북핵 문제에 대한 긴 답변이 이어진 뒤 마지막 부분에 짧게 언급됐다.
일각에선 '북한과의 군사 협력 재개'를 가정한 것을 협박으로 해석하지만 맥락상 역지사지의 태도를 강조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일부 언론은 있지도 않은 '핵 분야 협력'으로 오독하기도 했다.
일본의 러시아 교역은 오히려 증가…"냉철한 손익계산 필요"
국제관계에서 기본적 사실의 과장‧왜곡은 그 자체로 외교를 망치는 요인이다. 고의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최대한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만 해도 한국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 일본과 비교해 역사적, 영토적, 국제정치적 갈등이 없고 오히려 북방 진출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국력이 쇠퇴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이다. 우리가 한미동맹과 가치외교 차원에서 대러 제재에 동참하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척을 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유동적 정세에선 생존을 위해서라도 냉정하고 전략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이는 일본이 미국과 완전 밀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와의 실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과 러시아의 교역액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오히려 13% 늘어났다. 반면 한국은 대러 교역액이 17% 줄어들며 미국의 충실한 동맹임을 묵묵히 증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중요한 석유, 가스, 원자재 생산국 중 하나인 러시아는 장기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무역 파트너 국가들을 갖고 있으며 이 관계를 중단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에너지‧식량 부족 사태와 맞물려 대러 제재 초반에 '과연 누가 누구를 제재한다는 말인가' 했던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는 좋든 싫든 러시아의 주요 파트너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병환 전 주러시아 공사는 "우리는 중국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러시아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는 결코 쉽게 볼 나라가 아니"라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냉철한 손익계산을 하여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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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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