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도 너무한 경찰 간부들의 기강 해이와 태만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현장 대응과 보고 체계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압사 4시간 전부터 위급 상황을 알린 112 신고가 묵살된 일이 알려지더니 이태원 치안을 책임진 용산 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45분 전 현장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고도 한참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또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상황실이 아닌 자기 사무실에 있다가 사고 발생 후 1시간 24분이 지나서야 첫 보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치안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 밤 11시쯤 잠이 들 때까지 사고를 전혀 몰랐다. 그는 충북 제천에서 지인들과 등산한 뒤 캠핑장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재난 대응과 보고, 지휘 체계가 아래부터 위까지 다 허물어진 것이다.
용산 경찰서장이 저녁 식사 중 “이태원 상황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고 식당을 떠난 시각은 오후 9시 30분쯤이었다. 사고는 오후 10시 15분쯤 발생했다. 그가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상황 정리에 나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오후 10시40분쯤 이태원 근처에서 차에서 내렸고, 오후 11시가 넘어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차가 많이 막혀서 도중에 내려 걸어가느라 늦었다”고 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그가 서울경찰청장에게 상황 보고를 한 것도 사고 발생 후 1시간 21분이 지난 밤 11시 36분이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더 어이가 없다. 상황실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야간 사고 신고 및 대응 조치를 총괄한다. 그런데 사고 당시 그는 자기 사무실에 있었다. 상황팀장 보고를 받고 그가 상황실로 복귀한 시각은 오후 11시 39분이었다.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은 서울경찰청장보다 더 늦게 보고를 받은 것이다. 이미 수백 명이 쓰러져 이태원 일대가 아비규환으로 변했던 시간이었다. 경찰은 8년 전 “위험에 처한 국민에겐 단 1초도 절박한 순간”이라며 112신고 총력 대응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말뿐이었다.
경찰이 이 지경이다 보니 정부 보고 체계는 거꾸로 작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46분 만에 가장 먼저 보고를 받았고, 65분 만에 행안부 장관이 상황을 파악했다. 윤 대통령은 소방청 상황실에서 온 참사 보고를 국정상황실장에게서 받고, 행안부 장관은 비서관이 전한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봤다고 한다. 그사이 제대로 일을 한 경찰 간부는 한 명도 없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대형 참사를 경찰 탓으로만 돌릴 순 없지만 이번 참사로 드러난 경찰 내부의 심각한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몇 사람 징계하거나 처벌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서울경찰청 상황실 근무도 이번만이 아니라 항상 태만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공습·경계 경보가 내린 지난 2일 울릉군의 경찰서장은 조기 퇴근해 텃밭에서 상추를 뜯었다고 한다. 우리 경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경찰의 근본적인 체질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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