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반도 비핵화’ 아닌 ‘한반도 핵 억지’가 발등의 불
한미 국방장관은 4일 핵 보복 훈련의 공동 실시, 북한의 핵 공격과 관련한 정보 공유, 보복 공격을 위한 공동 협의·실행 절차 구체화 등을 합의했다. 정부 내에선 이번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나토식 핵공유에 버금가는 핵우산 체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공동성명엔 선언적 수준의 말만 있을 뿐이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한국민으로선 안보 불안을 덜었다고 하기 힘들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북한이 핵을 쓰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이 핵을 썼다는 것은 이미 우리 국민 수십만명이 사망했다는 의미다. 북이 핵을 쓸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북이 미국 대도시를 핵 공격할 미사일 개발까지 성공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어떤 강한 말도 ‘핵 있는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열린 국방안보포럼에서 “북한의 핵 개발이 임계점을 넘었고 이제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며 “대화와 제재라는 기존 수단의 효용이 다한 만큼 완벽한 핵 억지가 최상의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핵 자산이든 독자적 수단이든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핵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 미국은 한국이 핵에 조금이라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앞으로 북핵 폐기가 불가능해지면 미국은 한국 핵을 막는 데 더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 동맹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핵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전투기에 미국 핵이 탑재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더 미룰 수 없다. 모든 핵 억지 수단과 모든 창의적 방안을 다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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