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완박’에 참사 수사 못 하는 檢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경찰의 부실 대처 및 원인 규명과 관련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무관을 본부장으로 경찰 500여 명이 투입됐다. 전례 없이 큰 규모다. 사망자가 156명에 달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국민의 애도하는 마음이 큰 만큼 이번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이 반영됐다.
경찰 입장에서는 공정성과 수사 능력이 대중에게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실무 책임자였던 용산경찰서장은 참사가 발생하고 약 한 시간 뒤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 최고 수뇌부인 경찰청장은 참사 관련 첫 보고를 받기까지 1시간 59분, 서울청장은 1시간 21분 걸렸다. 대응이 부실했고, 보고 체계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서 특별수사본부는 경찰 내부를 향해 메스를 대야 한다. 얼마나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참사가 벌어진 원인을 밝혀내는 것도 경찰 몫이다. 수사 결과를 내놓았을 때 한 치의 의문도 남아서는 안 된다. 수사 결과가 허점투성이라면 경찰 수사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것이다.
그동안 이런 유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한 적은 거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검찰은 해양경찰청과 함께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했다. 그렇게 해도 몇 년에 걸쳐 여러 기관에서 재수사와 진상 조사를 벌이는 것이 대형 참사다. 대형 참사는 수사 초기부터 사고 원인 규명, 구조, 증거 확보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사 경험이 많고 영장 청구권을 가진 검찰의 수사 참여가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이번 참사처럼 경찰 내부 문제가 사고 원인과 뒤엉켜 있을 경우 ‘셀프 수사’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 지금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과된 검수완박법이 올해 9월부터 시행되면서 검찰이 대형 참사를 수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토하는 것 뿐이다.
수사를 맡은 경찰도 부담이겠지만 사실 더 큰 부담은 국민이 지고 있다. 경찰 수사를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를 잘해달라’는 응원의 마음이 아니라 ‘경찰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마음이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앞으로는 대형 참사가 터져도 검수완박법이 통과돼 검찰이 수사를 못 하니 경찰이 대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나.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공적 책임을 정확하게 묻는 것은 유명을 달리한 젊은이들에 대한 국가적 책무다.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온 국민이 애도하는 이처럼 중요한 사건에서 검수완박으로 인한 ‘국가적 실험 상황’에 놓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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