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450만명 에너지 끊겨… 추위·암흑과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또 한번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의 발전소 등 에너지 기반 시설(인프라)을 집중 파괴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이 전력과 난방 공급 중단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는 ‘추위와 암흑’이라는 공포를 극대화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꺾겠다는 전략이고, 우크라이나는 신속한 시설 복구와 시민들의 풀뿌리 생존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올겨울을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 이번 전쟁의 판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각) 동영상 연설을 통해 “최근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집중 공격으로 키이우 등 전국 10여 곳에서 약 450만명이 에너지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 10명 중 1명 이상이 난방이나 조명이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는 “이는 러시아의 에너지 테러리즘”이라며 “전투에서 우리를 이길 수 없게 되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싸우려는 의지를 무너뜨리는 전략으로 바꾼 것”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10일쯤부터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와 변전소 등을 400차례 이상 집중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 운영사 우크레네르고는 “원전을 제외한 우크라이나 내 거의 모든 대형 발전소와 전체 변전소의 30%가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는 가스와 수도 공급 중단, 인터넷과 전화 마비까지 초래하고 있다. 수도 키이우의 경우 35만 가구의 전기와 난방이 중단되고, 약 80%의 지역에서 수도가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르키우와 자포리자 등에서는 순환 단전이 실시되고 있고, 서부 르비우도 변전소 파괴 여파로 전기와 난방 공급이 일시 중단됐다.
우크라이나는 흑해 연안 일부를 제외하고 한겨울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몰아친다. 이 때문에 “올겨울 동사자가 쏟아지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고위 인사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난방이 제대로 안 될 경우 동상과 저체온증, 폐렴, 심장마비 등이 급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신속한 복구에 총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복구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수리 인력과 자재(부품)가 크게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 석탄발전소 직원은 미 CNN 인터뷰에서 “하루 24시간 수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은 전력망 보수에 필요한 부품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스위스는 1억 스위스프랑(약 1407억원)의 지원금과 함께 부품 구매를 직접 돕겠다고 밝혔다. 민간 가정을 위한 단열재도 지원할 예정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3일 주요 7국(G7) 외무장관 회담 직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을 어둠과 추위 속에 몰아넣으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맞서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드럼통과 가스통을 이용해 간이 난로를 만들고, 나무 땔감과 석탄 등을 모으고 있다. 창문을 테이프나 종이 박스로 막기도 한다. 키이우 인디펜던트 등 현지 언론은 “과거 전기나 난방 없이도 혹독한 겨울을 난 노인 세대의 지혜가 빛을 발하고 있다”며 “그들은 ‘이번 겨울도 잘 버텨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동계 전투가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에 승기를 안겨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 보급 상황만 보면,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는 동원령으로 징집한 병사들을 제대로 된 월동 장비 없이 전장으로 내보내는 반면,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이미 여벌의 방한화와 담요를 갖추고 야전 난로와 땔감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벤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은 “이미 소진된 러시아군의 보급 체계가 조기에 회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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