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94] I honestly think that the earth is off axis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벤 하퍼는 절친했던 배우 히스 레저의 죽음을 두고 지구의 축이 틀어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혹은 한발 더 나아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질서 같은 게 흐트러진 기분(universally out of alignment with what happened)”이라고까지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I Am Heath Ledger∙2017∙사진)’는 고(故) 히스 레저를 추억하며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히스 레저의 유산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고 분노와 상실감을 넘어 사건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우리는 종종 의도적으로 현실감을 잃는다. 이건 꿈일 거라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 히스 레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열정적이고 밝던 그를 이렇게 보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그들에게 히스 레저는 거대한 사람이었다. “세상이 품기엔 너무 큰 사람도 있어요(Some people are just bigger than the world has room for).”
히스 레저는 잠이 없다시피 한 사람이었다. 꼭두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 가야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내일 이야기하자고 하면 히스는 해가 뜨자마자 현관 앞에 찾아와 있었다. 벤 하퍼는 그렇게 맹렬하게 살던 히스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기 수명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어떤 사람들에겐 그런 능력이 있죠. 히스가 그랬던 것 같아요(You always wonder if people sense their own mortality. Certain people have that power… And if anybody did, it was him).” 그를 사랑했던 많은 이에겐 그때 틀어진 지축이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질 않는다.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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