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체험관-생태공원 짓자… 의성 산골마을이 살아났다

영천·의성=박성민 기자 2022. 11.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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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전국 폐교 351곳 그대로 방치
40년간 학교 3896곳 문닫았지만, 여의도 1.7배 학교부지는 미활용
대부분 섬-산간지역 교통 불편… ‘지역소멸’ 의성군 직접 사들여
지역관광 상품으로 탈바꿈 성공… 아이들 돌아오며 마을 다시 활기
《학령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가 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활용처를 찾지 못해 방치된 폐교다. 전국 351곳에 이른다. 이런 폐교는 마을 쇠락을 가속화한다. 반면 폐교를 지역 명소로 탈바꿈시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곳들도 있다.》

방치된 폐교, 지역명소로 활용을



경북 영천시의 임고중은 2016년 폐교한 뒤 7년째 방치돼 있다. 이 학교와 평생을 함께한 동네 주민들은 “학교와 함께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게 가장 아쉽다 “고 말했다. 영천=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31일 경북 영천시에 있는 임고중학교 앞. 폐교 안내문이 걸린 학교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운동장은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들이 2층 건물을 빽빽하게 가렸고, 곳곳에 깨진 채 방치된 유리창이 을씨년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1971년 개교한 임고중은 지역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2016년 2월 문을 닫았다. 인접한 고경면의 고경중 등 4개 학교가 신설 영천별빛중으로 통합됐다. 임고중이 배출한 졸업생은 총 6080명.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운동장 구석엔 졸업생 전원의 이름을 새겨 둔 기념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영천시 임고면에만 미활용 폐교 3곳

주민들은 학교를 잃은 상실감이 크다. 학교를 세울 당시 마을 사람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논으로 쓰던 땅을 내놨다. 학교 후문 바로 앞집에 사는 김충헌 씨(64)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 학교 1회 졸업생인 김 씨는 “점심시간, 쉬는 시간마다 나와서 돌을 나르고, 운동장을 골랐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학교”라고 했다.

7년째 방치된 학교를 지켜보는 마음도 편치 않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활용 방안을 찾길 바라고 있다.

세 자녀가 모두 이 학교를 졸업한 민노미 씨(67·여)는 “시골엔 노인들이 마땅히 운동할 곳이 없다”며 “운동장도 정비하고, 간단한 운동기구라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젊은 사람이 없는 동네라 농번기엔 외국인이나 외지인이 많이 온다. 이 사람들을 위한 인력지원센터나 숙소를 만들면 마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영천시가 이 학교를 매입하기로 하면서 조만간 활용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새 주인을 찾게 된 임고중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임고면에만 방치된 폐교가 3곳, 영천시 전체로는 11개 학교가 폐교 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임고중에서 6km 거리의 임고초 금대분교도 그중 하나다. 2002년 폐교 후 생태학습장으로 잠시 임대됐을 뿐, 20년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을 주민 이화숙 씨(74·여)는 “졸업생들이 가끔씩 동문 모임을 하는데 그때 외엔 쓰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여의도 1.7배 면적 폐교가 ‘미활용’

교육부에 따르면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폐교된 공립학교는 전국 3896개교에 이른다. 이 중 2558개교가 매각됐고, 1338개교는 각 시도교육청이 보유하고 있다. 보유 중인 폐교는 야영장이나 체험관 같은 주민 소득 증대 시설이나 교육·복지·문화 시설 등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폐교의 9%인 351개교가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전남에 이런 폐교가 85개교로 가장 많고, 경남 74개교, 경북 57개교 순이다. 미활용 폐교의 건물과 대지 포함 총 재산 평가액은 약 3146억 원으로 학교 한 곳당 평균 재산 가치는 9억 원 정도다. 이는 공시지가 기준 금액이어서 실제 매각 가격은 더 높다. 방치된 351개교의 부지 면적은 약 4.9km²로 여의도 면적(2.9km²)의 1.7배에 이른다.

방치된 폐교들은 주로 도서산간 지역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전국 시군구 중 미활용 폐교가 가장 많은 여수시(15개교)와 통영시(10개교)는 섬마다 폐교가 많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전남도교육청은 폐교의 매각이 여의치 않자 올 초 여수 거문초 등 관내 폐교 8곳을 주민에게 무상 개방하기도 했다.

충남 태안군의 동작휴양소는 1999년 문을 닫은 안중초 신야분교를 서울 동작구가 매입해 구민을 위한 휴양시설로 만든곳이다. 사진 출처 동작휴양소 홈페이지

주민들이 폐교 처분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다. 교육부의 지방교육재정알리미 홈페이지에 올라온 폐교 미활용 사유를 보면 약 30개 학교는 인근 주민들이 폐교 매각이나 임대에 반대하고 있다. 전남 나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폐교 지역 주민들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 들어올 것을 염려한다”고 전했다.

미활용 폐교 중 9곳은 기존 임차인의 무단 점유로 소송 중이거나, 재산 압류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경남 창원시에선 한 초등학교 분교를 빌려 쓰던 임차인이 자신이 시설 개선에 투자한 돈을 돌려 달라며 퇴거를 거부하고 있다.
○ 폐교 잘 활용하니 주민도 늘어

폐교가 오랜 기간 방치되면 건물은 급속도로 엉망이 된다. 창문이 깨진 채 방치된 경북 영천시 임고중의 교실 모습. 영천=박성민 기자 min@donga.com
흉물이 된 폐교는 골칫거리지만 반대로 잘 활용하면 쇠퇴하는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북 의성군의 의성안전체험관은 1993년 폐교한 다인초 달제분교를 도교육청이 안전체험관으로 만든 곳이다. 인적조차 드물었던 마을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자 마을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출향민이 돌아오거나 귀농인이 유입되면서 최근 3, 4년 새 다인면 봉정리의 주민 수는 10명 늘어났다. 현재는 이 지역에 35가구, 48명이 살고 있다.

평일에 손님 보기 힘들었던 마을 식당도 운영에 숨통이 트였다. 이 마을 이장 노재경 씨(73)는 “주민 4명이 안전체험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들었던 마을에 다시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의성군은 전국에서 ‘지역 소멸’ 우려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다. 현재까지 의성군에서 발생한 폐교는 총 63개교. 이 중 미활용 폐교는 현재 3곳뿐이다. 이는 의성군이 인구 유입을 위해 폐교를 적극 사들여 활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산운 생태공원(구 산운초), 목재문화 체험장(구 춘산중) 등이 폐교를 매입해 지역 관광상품으로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다. 의성군청 손창원 기획계장은 “현재 노년층을 위한 은퇴자 마을, 청년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워케이션(Workation·일과 휴가의 병행) 센터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와 지방 소멸을 경험한 일본은 폐교 문제가 훨씬 심각했다. 2017년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2002∼2015년 6811개의 초중고교가 폐교했고, 이 중 87%를 매각하지 않고 교육 시설이나 공공 체육 시설 등으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독특한 폐교 활용 실험도 이어졌다. 2014년 폐교한 일본 지바(千葉)현의 호타초등학교는 근처에 기차역과 고속도로 분기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휴게소로 탈바꿈했다. 숙박 시설과 갤러리, 식당이 입점해 인근 지역을 여행할 때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또 공동 주거 시설이나 아동발달지원센터 등 지역 특색에 따라 폐교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 정주 여건 개선하고 주민 요구 반영해야

폐교 활용은 단순히 학교의 새로운 용도나 주인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재생을 위한 장기적 활용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교는 또다시 버려질 수밖에 없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폐교가 생겼다는 것은 젊은층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주변 환경이 나쁘다는 의미”라며 “폐교의 새 용도를 찾을 땐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폐교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유출이 많은 지방 소도시, 원도심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대도시에서도 폐교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도 최근 도봉고가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서울 지역 일반고 가운데 처음으로 폐교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권영현 충남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그동안 농산어촌의 폐교 활용이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도심의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민을 배제한 폐교 활용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추용욱 강원연구원 지역개발실장은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 노년층은 가장 원하는 시설로 목욕탕을, 젊은층은 도서관을 꼽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의 요구와 지역 특성을 세밀하게 따져 폐교 활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의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손준영 인턴기자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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