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기술, 그리고 전자음악을 다루는 여성들

기자 2022. 11.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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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울문화재단 사업 모니터링차 ‘저항하는 기술 The Resisters’라는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 여성 창작자를 대상으로 전기, 용접, 해킹 등의 기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내가 갔을 때는 볼트와 너트의 종류와 그걸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걸 몰랐던 나도 덩달아 그 작은 부품들의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됐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당시 이 프로그램은 수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부품을 소개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극장에서의 조명 사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의 주제를 가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리가 보편의 강의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참여자들은 각자가 극장에서의 경험을 나누었고, 그중 몇몇은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고, 또 몇몇은 극장 장비뿐 아니라 이를 담당하는 여러 감독과 어떤 식으로 소통해야 불편함이 없는지 등, 경험자만이 알려줄 수 있는 유용한 팁을 공유했다. 배우러 간 당사자도 아니었지만 그 정보들을 알게 되어 조금 개운했다. 내가 암묵적으로 알 것이라고 기대되지도 않고, 그 어디에서도 잘 배우지 못했던 것, 어깨 너머로 흘깃 보기만 했던 것을 탁상에 활짝 펼쳐놓고 알아가는 일은 그렇게나 산뜻한 기분이었다.

일년도 더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같은 영문이름을 가진 ‘레지스터 RE#SISTER’라는 음악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면서다. 레지스터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WORM’에서 시작된 커뮤니티로, 마리엣 그루트는 전자음악을 다루는 여성 및 논바이너리 창작자들이 모종의 이유로 WORM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자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상황을 개선해보고자 모임을 만들었다. 단순한 취지였지만, 이에 호응하며 찾아온 창작자들은 몇십명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도 이 취지를 이어가는 레지스터 코리아라는 모임이 생겼다.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없었지만 레지스터 코리아의 멤버들은 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함께 즉흥연주를 하고, 화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엔 서로 다른 제도에서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져왔던 창작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ATM 페스티벌에서는 네덜란드와 한국의 레지스터 멤버들이 함께 진행하는 몇 차례의 잼 세션을 볼 수 있었다. 잼 세션인 만큼 완성된 공연을 선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레지스터라는 모임이 만들어주는 안전한 영역 안에서 이들은 각자 사용하는 다양한 전자악기를 가져와 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반응하며, 때로는 무대와 객석 사이를 오가며 움직였다. 전자음악과 사운드라는 모호한 영역 안에서 쉽게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던 여성 음악가들이 함께 즐거이 합주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환대하고 응원하는 일의 중요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 활동’의 기쁨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의 무대를 보며 나는 그 음악이 좋았는지, 그것이 어땠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작품을 따져보려는 사고방식은 자연스레 흩어져 사라졌고, 그들의 즉흥연주를 그저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개운함이 찾아왔다.

레지스터 코리아의 소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전자음악/사운드에 관심이 있는 퀴어 혹은 여성들이 음악을 만들고 서로 도우며 함께 배우는 모임.’ 공연을 보며 나는 ‘서로 도우며 함께 배우는’이라는 단어를 찬찬히 곱씹어보았다. 수많은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 음악가들에게 어떤 마음이 남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각자가 얻는 것은 모두 다르겠지만, 아마도 레지스터의 사람들에게는 서로 돕고 배우고 환대하는 동료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이 음악활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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