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선한 마음들이 강물처럼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으로 가달라는 말에 택시 기사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뒤 이태원 콜은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멋적게 웃더군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다 내 손주 같고 자식 같아 마음이 아픈데 어느 젊은 소설가가 우리를 그런 슬픔도 모르는 꼰대들이라고 몰아세워 화가 났다”고도 했습니다.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진 참사 현장엔 핼러윈 잔해들이 남아 뒹굴고 있었습니다. 4미터는커녕 2미터도 돼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습니다. 유명 클럽들이 모여 있다는 골목 윗길엔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현수막이 색이 바랜 채 펄럭입니다. 천사의 날개와 호박등이 검은 발자국에 짓이겨진 채 남은 불빛을 깜박이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골목 곳곳에 서린 그날의 공포와 절망, 슬픔을 어루만져준 건 산처럼 쌓인 국화꽃과 편지들이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추도객들은 더욱 늘어났지요. 꽃들 사이사이 빵과 음료수, 인형을 내려놓으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마음들에 눈물이 번집니다.
편지에 적힌 문장들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미안해”였습니다. 높은 분들은 그렇게 하기 어려워했던 말을 추도객들이 대신 해주고 있더군요. 학업도 취업도 결혼도 뜻대로 되지 않아 매일이 힘겹지만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꼬깔모자 쓰고 드레스에 한껏 분장을 하고 나선 길이었겠지요. 그들은 내 아이의 친구이고 누나이고 동생이고 이모였을지도 모릅니다. 애도의 마음이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이유입니다.
이곳에 가짜 뉴스와 정치 구호, 사악한 음모론을 들고 파고든다면 고인과 유가족은 물론 추도하는 이들까지 모욕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참사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겸허하게, 서로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할일 아닐까요.
일본 젊은이들의 구루(스승)로 존경받는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을 때 “잔혹한 대지진이 우리에게 준 선물도 있다”고 했습니다. “고독사 등 사람들 사이 웃음과 대화, 정(情)이 사라져가던 일본 사회에 슬픔이라는 거대한 웅덩이가 생겨 서로를 위해 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태원 참사 또한 둘로 분열돼 서로 증오하는 한국 사회에 화해와 용서라는 거대한 물길을 내준 건 아닐까요.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일본 대지진 직후 만난 후지와라 신야의 인터뷰와 대지진 당시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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