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우주에 ‘예술 작품’ 보러 가볼까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2022. 1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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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준의 ‘안녕, 우주’]

196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공상과학(SF)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제임스 커크 선장을 연기했던 배우 윌리엄 섀트너가 지난해 10월 우주여행을 다녀온 소감을 담은 책을 최근 발간했다. 그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운영하는 블루오리진에서 제작한 로켓을 타고 10여 분간 우주를 경험했다. 책에서 그는 “사납도록 차가운 우주와 저 아래 온기를 뿜어내는 지구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나는 압도적인 슬픔에 잠겼다”고 했다. 발아래 푸른 지구를 마주하면 이런 시적인 표현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걸까. 우주인들이 우주의 광활함과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과 가치관의 변화는 흔히 ‘조망효과’(overview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로 일컬어진다.

일본 플로리스트 마코토 아즈마가 꽃꽂이 작품을 헬륨 풍선에 매달아 우주에 띄운 뒤 촬영했다. /마코토 아즈마 제공

‘조망효과’는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주에서 받은 감정을 예술적 형태로 표현한 최초의 사람은 구소련의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다. 우주인이 되기 전부터 예술적 조예가 깊었던 그는 1965년 우주선 보스호드 2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돌면서 색연필로 지구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그렸다. 색연필이 날아다니지 않도록 고무 팔찌에 각 색연필을 실로 연결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최초의 우주유영을 한 우주인으로도 유명한데, 은퇴 이후에도 우주를 테마로 한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2008년 개인 우주관광객 자격으로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한 리처드 게리엇은 우주에서 새로운 회화 기법을 창시했다. 그는 무중력 때문에 물감 방울이 둥둥 떠다니다 사방에 붙여 놓은 종이에 달라붙을 수 있는 그림 상자를 만들었다. 그 결과물은 마치 캔버스에 물감을 튀겨 추상화를 그린 잭슨 폴락의 작품 같았다. 이듬해인 200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 니콜 스토트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수채화를 처음 그렸다. 지구에서처럼 물감을 물에 쉽게 풀어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빨대가 달린 물주머니를 이용했다.

우주 공간에 조형물을 남긴 경우도 있다. 포레스트 마이어스는 1960년대 아폴로 프로그램 당시 달에 미술관을 만들어 작품을 전시하는 아이디어를 NASA에 제안했지만 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몰래 반입해 달에 남기는 일이었다. 앤디 워홀, 존 체임벌린 등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 6명의 스케치 작품을 가로 1.9cm, 세로 1.3cm 크기의 작은 세라믹판에 새긴 뒤 착륙선 제작에 참여한 공학자를 통해 착륙선에 몰래 부착했다. ‘문 뮤지엄(Moon Museum)’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1969년 11월 12일, 아폴로 12호 다리에 붙어 달에 착륙한 이후 여전히 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아폴로 15호 우주인 데이비드 스콧은 우주인을 형상화한 약 9cm 크기의 작은 조형물을 달에 남겨두고 왔는데, 우주 탐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예술 활동이었다.

우주개발 초창기부터 우주를 무대로 시도된 ‘우주 예술’은 최근까지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미국 출신 예술가 트레버 페글렌은 ‘궤도 반사경’이라는 조각 작품을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 개발 업체 스페이스X의 팰컨 로켓에 실어 지구 560km 궤도에 올렸다. 길이 30m, 폭 1.5m의 다이아몬드 형태의 위성으로 표면에 티타늄을 발라 우주에서 태양빛을 밝게 반사해 세계 곳곳에서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게 했다. 같은 해 뉴질랜드의 소형 로켓 회사 로켓랩은 자사에서 개발한 로켓에 디스코 볼을 실어 지구 저궤도에 올렸다. 휴머니티 스타(Humanity Star)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65개의 빛 반사판이 붙어있는 세탁기 크기만 한 원형 위성이었다.

이들 위성은 통신이나 영상 촬영 같은 일반적인 기능은 전혀 없고 오로지 예술 작품으로서만 기능한다. 우주를 예술 작품의 전시장으로 활용한 것이다. 지상에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예술 작품을 본 사람들이 우주의 광활함을 느끼고 인류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공유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빛 반사율이 높은 이런 위성 예술 작품들을 ‘우주 낙서(space graffiti)’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논쟁은 우주 공간 활용 권리에 대한 논쟁의 장을 열었다. 우주는 과학기술자들만의 공간인가. 예술가나 다른 누구라도 이 새로운 영역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인가. 우주 분야에서 예술은 우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우주개발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 우주 예술은 민간의 참여 확대와 상업 여행이 가시화되면서 예술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상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예술과 사회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우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주는 미래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의 예술 작업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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